냉장고를 비우며 다시 쓰는 오늘의 효도
전화 한 통이 왔다.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엄마 좀 돌봤으면 해요.”
엄마와 같은 주거시설에 사시는 총무님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혈변을 보기 시작했고, 밥을 잘 못 드시고, 집안엔 벌레가 가득하다는 말. 화재경보기가 두 번이나 울렸다는 말까지.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우리 아이들을 키우시던 그 손은 언제나 부지런했고, 냉장고엔 엄마표 반찬이 늘 꽉 차 있었다. ‘엄마니까 당연한’ 장면들만 내 머릿속에 필름처럼 돌아갔다.
총무님은 미안함을 무릅쓰고 남동생에게도 연락하셨다고 했다. 돌아온 말은 이랬다.
“당신이 뭔데, 아들딸 멀쩡히 있는 우리 엄마 일에 끼어들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어르신께 그런 말을—. 분노가 목까지 차올랐지만, 그 감정에 매달리면 엄마는 더 멀어진다는 걸 알았다. 나는 분노의 방향을 바꿨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로.
다음 날, 청소도구를 들고 엄마 집 문을 열었다. 오래된 음식 냄새가 먼저 나를 맞았다. 싱크대엔 설거지 못한 그릇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바닥엔 먼지가 하얗게 내려앉아 발자국이 났다. 제일 큰 쓰레기봉투를 펼치고 냉장고부터 비우기 시작했다. 상한 국, 굳은 반찬, 유통기한이 지난 약봉지…. 짜증과 분노가 한 번에 치밀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뚝 떨어졌다. ‘엄마, 언제부터 이렇게 혼자였어.’
한 시간쯤 쓸고 닦고 환기까지 마칠 즈음, 문이 열리며 엄마가 들어오셨다. 놀라며 반가워하는 얼굴. 나는 또 바보처럼 잔소리를 쏟아냈다. “엄마, 왜 이러고 살아. 우리 집으로 가요. 당장.”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네 남동생 때문에….” 아들이 1번이던 시대를 사신 엄마는 평생 그 질서를 몸에 새기고 사셨다. 나는 한 걸음 다가서서, 아주 천천히 말했다. “엄마, 내가… 마지막 효도를 하고 싶어.”
잠시 침묵. 그리고 엄마의 얼굴에 아주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래?” 손녀들 얘기를 꺼내자 엄마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그럼 가자.” 그 한마디에 내 어깨의 돌덩이가 조금 내려앉았다. 그러나 마음 한쪽은 여전히 쓰렸다. 젊은 시절, 동네에서 가장 단정하고 우아했던 약국집 사모님. 똑똑하고 꼿꼿하던 그 약사 엄마가 이제는 상황 판단도 더딘, 가벼운 숨을 몰아쉬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엄마의 오늘이 나의 내일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빠가 돌아가시며 내게 남겼던 말이 번개처럼 스쳤다. “엄마 부탁할 자식은 너뿐이야.”
나는 왜 몰랐을까. 왜 보지 못했을까. 현장에선 실버 강사로 어르신들의 몸을 살피고 마음을 달래며 ‘잘 케어한다’ 믿었으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의 신호를 읽지 못했다. 일과 육아에 매달리던 그 시간, 엄마는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쇠약해지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속으로만 수없이 맴돌았다.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늦었다는 말로 또 늦추지 않겠다는 결심을 그날 했다.
엄마의 공간을 마지막으로 훑어보며 작은 것부터 정리했다. 복용 중인 약은 요일별로 나눠 라벨을 붙이고, 병원 예약표는 달력에 옮겨 적어 알람을 맞췄다. 화재경보기가 울렸다는 말이 자꾸 걸려, 가스 밸브에 눈에 띄는 스티커를 붙였다. 문 앞 매트는 미끄럼 방지로 바꾸고, 동선에 걸리적거리는 작은 테이블을 치웠다. 실버 강사로 배운 모든 ‘기술’을 집으로 가져오니, 돌봄은 화려한 진단이 아니라 생활의 자세라는 사실이 손에 잡혔다. 천천히 말하기, 같은 질문에 같은 온도로 답하기, 손을 5분 더 잡아주기. 그렇게 말의 높이를 낮추는 법부터 다시 배우기로 했다.
엄마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늦여름 끝자락의 바람이 스쳤다. 엄마는 조용히 물었다. “나… 잘할 수 있을까?”
나는 대답했다. “엄마는 그냥 계시면 돼요. 잘하는 건 제 몫.” 말하고 보니 그 말은 내게도 필요했다. ‘완벽’보다 ‘함께’를 지키는 것. 오늘은 죽을 끓이고, 손을 데우고, 얘기를 들어주는 날이면 충분하다는 것.
문을 열어 들어와 신발을 벗는 동안, 지난 세월의 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엄마가 나 대신 아이들을 돌보던 그 아침들, 내가 서둘러 가게 문을 열며 남기던 짧은 감사와 길었던 당연함, 전화 한 통조차 바빴다는 핑계…. 나는 속으로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밤이 내리고, 주방에는 죽 냄새가 은근히 퍼졌다. 엄마에게 손등 마사지를 해드리며 호흡을 맞췄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엄마의 손등에 얇은 힘줄이 도드라졌다. 그 위로 내 손을 천천히 굴리며,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순종하게 해 주세요. 엄마에게도, 오늘이라는 시간에게도.”
엄마는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따뜻하다.”
돌봄은 거창한 미담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냉장고를 비우고, 약 봉투에 날짜를 적고, 같은 말을 다시 들어주는 인내에서 시작한다. 내 분노는 증거로 남기지 않고, 엄마 곁의 시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내일은 병원에 모시고 가서 필요한 검사를 다 받을 것이다. 그다음엔 산책로를 함께 걸으며 벤치에 앉아 해를 보자. 손녀들의 웃음소리를 들려드리고, 사진을 인화해 방 안에 붙여 드리자. 우리가 살 건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이니까.
이제 나는 다짐한다. 전문가의 언어를 내려놓고, 딸의 목소리로 돌보겠다고. 엄마의 남은 날들을 숫자로 세지 않고, 표정으로 기록하겠다고. 사랑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방법으로—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천천히 말하겠다고.
늦었지만 지금부터. 어제의 후회로 멈추지 말고, 오늘 가능한 효도로 걸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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