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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 무엇이 먼저든

부모의 조건

by 다온

내가 처음 출근했을 때부터 말벗이 되어 주던 28세 유치원 교사가 4월에 출산을 하고 3개월의 출산 휴가를 마친 뒤 7월에 복직을 했다. 아침 조회가 끝날 무렵 내가 이 친구에게 질문을 했던 게 얘기가 길어져 우리는 학생들이 아침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2학년 여학생 한 명이 다가와 그 교사에게 안기는 것이었다. '선생님을 되게 좋아하나 보다'하고 쳐다보는데, 그녀는 자기 딸이라며 본인과 닮았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눈이 닮았었다. 이 아이가 큰 딸이고 이번에 낳은 딸이 둘째란다.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같은지 물었다. 사생활이라 무례한 질문일 수 있으나 보츠와나에선 그런 가족 구성이 흔하기도 하고, 이 친구와 그런 얘기를 나눌 정도의 사이는 됐기 때문에 나는 궁금한 걸 굳이 참지 않았다. 두 아이의 아빠는 달랐다. 큰 딸은 Form 5(우리의 고3)때 출산했는데 그 '어린' 아빠는 보츠와나의 많은 남자들처럼 무책임하게 떠나버렸고, 원래 알고 지내던 동네 친구가 아이 키우는데 도움을 주었는데 그와의 사이에서 둘째 딸이 태어났다고 했다. 그는 지금 수도에서 일하고 있고, 아이를 보러 가끔씩 집에도 오고 생활비도 준다고 했다. 결혼한 사이는 아니었다.


보츠와나는 법적인 부부의 비율이 낮다. 이혼율이 높다고 하는데, 우선 결혼율부터 낮다. 결혼을 통해 정식부부가 되지 못하는 주원인 중 하나로 지금도 남아프리카에서 이어지고 있는 신부값(Bride Price)을 지불하는 전통, 즉 로볼라(Lobola)를 들 수 있다. 부담액은 부족마다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소 8마리가 최저이고 현금으로는 최소 25000뿔라(약 270만원)이며, 로볼라 협상(Lobola Negotiation)시 신부의 직업 등도 고려대상이 된다. 보츠와나의 2017/2018 최저 임금 시급이 각 분야별로 3.21 ~ 5.79뿔라(약 400원~600원)임을 고려할 때, 이것이 일반 사람들에게 얼마나 엄청난 금액인지 알 수 있는데 실업률도 높은 이 나라에서 젊은 사람들이 그만한 돈을 모은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한인교회 목사님은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한 청년의 로볼라 비용을 대신 지불하여 몇 년 전에 부부 한 쌍을 탄생시키셨단다. 부모가 로볼라를 지불하지 않으면 당연히 자식에게도 영향이 가고, 자식이 돈을 벌어 부모의 로볼라를 대신 지불하기도 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결혼의 목적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가 나는 매우 궁금해졌다. 사실 한국문화에도 결혼 시 양가에 오가는 물질적 절차가 아직 살아있으므로 우리도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 같다. 사람들은 몇 십 년을 함께 열심히 돈을 모아서 결혼식을 하거나, 형편 때문에 평생 결혼식을 못하고 같이 살기도 하는데 내 주변 사람들 중 가장 단란한 가족이라 생각되는 제이콥 선생님, 교장선생님 두 분 모두 본인의 큰 아들이 스무살 됐을 때 결혼식을 올리셔서 각각 1년과 3년 전에 결혼식을 올리셨단다.


보츠와나는 모계사회이고, 아이는 기본적으로 엄마에게 권리가 있다. 법적으로 기혼이든 미혼이든, 남자와 같이 살든 안 살든, 그 남자가 아이 아빠든 아니든 성인 여성들은 거의 다 두 명이상의 아이가 있는데 아이만 만들고 떠나버리는 남자가 흔해서 미혼모 비율이 높고 그 자녀들은 이부형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보츠와나 사람들이 외국인인 우리에게 하는 첫 질문도 결혼 여부가 아니라 자녀의 수였다.


- 애는 몇 명이야?

/ 나 결혼 안 했어.

- 나도 결혼 안 했어. 애는 몇 명이야?

/ 나 결혼 안 했다니까. 당연히 애는 없지.

- 애가 없다고? 왜?

/ 결혼을 안 했으니까!!


우리가 보기엔 보츠와나가 너무 자유롭고, 상대방에겐 우리가 너무 꽉 막혀 보일 것이다. 이럴 땐, 뿌리 깊은 문화차이를 설명하거나 설득하려고 하기 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는 선에서 넘어가는 게 현명한 것 같다.


결혼에 대한 보츠와나 남자들의 입장을 들었던 기회가 나에게 두 번 있었는데, 앞선 것은 우리 집 위층에 사는 미스터 오뚜낄레(Otukile)와의 대화였다. 사람들은 줄여서 ‘오티’라고 불렀다. 10월 공휴일 기간의 마지막 날, 처음 보는 여자어린이가 그와 함께 마당에 서 있길래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기 딸이라고 했다. 딸은 여기서 7시간 이상 걸리는 간지(Ghanzi)에서 엄마와 살고 있고 이번에 쉬는 날이 길어서 아빠 집에 놀러왔다 오늘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티의 이전 발령지도 거기였고, 아이의 엄마도 초등학교 교사라고 했다. 결혼한 사이는 아니었다. 결혼은 언제 할 계획이냐고 물으니, 그는 모른다고 했다. 멀리 사는 아이 엄마가 거기서 누굴 만나고 다니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하는 걸보니 앞으로도 이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우리 학교에 기간제로 온 28세 남교사와도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여기서 북쪽으로 500km 떨어진 보츠와나 제2의 도시 프란시스타운 (Francistown) 출신으로 전국 어디든 기간제 자리가 나면 가서 한다고 했다. 보츠와나 교사 발령에서 시작된 대화는 그가 지금 다운로드 받아서 보고 있다는 한국 드라마로 주제가 옮겨졌다. 현재 보츠와나 TV에는 ‘꽃보다 남자(2009)’가 성황리에 방영 중이고,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높았다. 2014년에 르완다에서 대장금(2003)이 방영됐는데, 나온지 대략 10년쯤 된 작품들이 아프리카에 공급되는 모양이다. 미스터 본뜰레(Mr. Bontle)는 드라마를 보다가 궁금한 게 있었는데 한국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라며 나에게 질문을 했다.


- 한국 사람들은 결혼 전까지 혼전순결을 지키는 게 사실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 (이 외국인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할까?) 예전에는 그게 당연했지만 요즘 세대는 달라요. 혼전임신이 많아졌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결혼 후에 임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 내 주변에 여자들밖에 없어서 그러는데 나도 질문하나 할게요. 보츠와나는 왜 결혼 비율이 낮고, 많은 남자들은 왜 자신의 아이를 책임지지 않고 떠나버리나요?

/ 남자는 이 여자가 아이의 엄마로서 역할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먼저 지켜봐요. 그리고나서 결혼을 할지 말지 결정하죠.

- 네? 애를 낳은 후에 판단한다고요??


물론 그의 개인적인 의견이겠지만 소위 지식인인 교사의 인식이 이렇다고 생각하면 다소 충격이었다. 부부, 부모, 자녀를 ‘가족’이 아닌 각각 낱개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 나는 다음 말을 어떻게 이어갈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대화 주제를 바꿨다.


가족의 의미와 형태, 결혼과 출산의 우선순위는 각자의 배경에 따라 다른 견해를 보이겠지만 부모 될 자세를 갖춘 사람만이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본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자녀에게 줄 수 있는 물질적 풍요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자녀 양육의 기본이자 본질은 부모의 사랑이므로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삶은 그런 따뜻한 가정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알차게 영글고 있다.


2019.8.12. 집 앞에서 만난 동네 사람이 갑자기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어요. 생후 3주 된 딸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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