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나지 않을 그만큼까지만

베풂에 대하여

by 다온

9월 9일 오전, 나는 미국에서 기부받은 책을 가지러 교장선생님과 다른 한 분의 선생님과 함께 교육청에 갔다. 이동은 교장선생님 차로 했는데, 차가 없는 직원이 근무 시간 내에 출장을 가야 할 때도 직접 태워다 주시는 등 우리 학교의 공적인 출타는 거의 다 교장선생님 차로 했다. 우리 교장선생님은 항상 바쁘시고 종종 사비로 학교 물건도 구입하시는데, 판공비가 없냐고 여쭤보니 고등학교 교장은 비서도 있고 학교에 관용차도 있지만 초등학교 교장에게는 아무것도 지원되지 않아 실제로 기름값을 많이 지출한다고 하셨다. 보츠와나는 학교급이 아래로 내려올수록 학교의 수가 많아지고 시설이나 비품의 구비 상황이 열악해지는데 이것은 사회구조적인 부분이라 우선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 많은 책들도 다 미국에서 온 것인데 30년 전에 발행된 것도 책의 상태가 아주 좋았다. 망망대해를 건너 이번엔 어떤 책들이 왔을까. 교육청 창고에 들어가니 초, 중, 고등학교 이름들이 각각 벽에 붙어있었고, 각 학교가 가져갈 박스들이 이름 아래에 쌓여있었다. 박스의 주소를 보니 '보내는 사람'에는 미국 전역의 주소가, 받는 사람에는 African Library Project라고 적혀있었다. 우리는 전달받은 책을 싣고 학교로 돌아와 도서관 서가를 더욱 풍성히 채웠다. 교육청은 기부해준 기관에 대한 보답으로 각 학교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서 장학사에게 보내라고 했고, 우리 학교는 그로부터 3일 뒤인 9월 12일 아침 조회 때 이를 위한 작은 이벤트를 열었다. 교사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출근을 했고, 유치원 학생들은 기부받은 책을 즐겁게 읽고 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어떤 행사든 기획하고 운영하는 게 타고난 것 같다. 별로 준비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임팩트가 있다. 우리 학교는 이미 2월 8일에 기부와 관련한 큰 기념식을 치른 바가 있는데 Gapane라는 회사가 우리 학교에 3000 뿔라(한화 약 33만 원) 상당의 스테인리스 그릇을 기부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신문과 라디오에도 보도가 됐는데, 나는 이 기부액이 보츠와나에서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몰라 이게 정말 기념식을 열고 매스컴에 오를 정도인가를 의아해했다. 그런데 금액적으로도 큰 가치이기도 하고, 보츠와나는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아 기부 자체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에 뜻깊은 행사였던 것이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 받은 도움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따뜻한 기브 앤 테이크를 나는 우리 학교에서 두 번 경험하게 됐다.

2019.9.9. 카니에 교육청에 미국에서 온 책이 도착했어요
2019.9.9. 미국 각지에서 기부받은 책이에요
2019.9.12. 도서 기부에 대한 감사 이벤트 중입니다
2019.2.8. Gapane에서 우리 학교에 기부를 해주셨어요

미국의 기부 문화는 원래 유명하지만 이렇게 아프리카 개별 국가의 시골 학교에까지 직접 혜택이 전해지는 걸 보니 그들의 영향력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정부와 NGO도 개발도상국 지원 사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어려운 우리 국민들도 많은데 왜 해외에 돈을 쓰냐는 의견도 있지만, 직접 해외에 나와 그 사업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보니 국제 원조 사업은 인류애적 봉사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실리적으로 공여국의 위상 승격과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체감하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봉사단체'하면 현지인들은 Peace Corps를 떠올린다. 누가 나에게 '보츠와나에 여행 온 거냐'고 묻길래 봉사하러 왔다고 하니 '너 미국인이야?'라고 물었다. 아시아인은 다 중국인인 줄 아는 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내가 미국인이냐는 소리를 듣다니. 미국은 이렇게 아프리카의 촌부들에게도 봉사(Volunteer)로 알려진 국가였다. 우리의 KOICA도 세계 곳곳에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고 이들을 통해 한국의 이름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편, 중국은 미래의 개발 수요와 자원 확보를 목표로 일찍이 아프리카에 진출해 자본을 투자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오고 있고, 현재 100만 명 이상의 중국인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중국이 아프리카를 돈으로만 본다는 반중 정서가 현지인들에게 팽배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원이 필요하고 중국은 자국의 목표가 있으니 당장은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개도국에 진입하기 위해 ODA를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기조가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어떤 시각과 방법으로 제3국에 접근할지 잘 따져봐야 하겠다.


그렇다면 개인으로서 나는, 보츠와나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한국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순전히 봉사라 하기엔 과하지만 생활환경을 고려하면 봉사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나는 학교에 교사로 파견된 사람이라 잘 가르치는 것이 목표지만, 한국에서 유니세프에 기부한 정도로만 매달 직접 주변에 쓴다 해도 소소하게 해 볼 만한 게 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현지 생활을 시작한 나는 그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이 없는 동네인 데다 내가 학교 바로 앞에 사니 여기가 우리 집이라는 게 다 알려져서 사람들은 나에게만 물, 사탕, 일자리, 돈을 얻으러 왔다. 해가 져도 찾아와 문을 노크했다. 이것은 관사 게이트가 활짝 열린 채로 고정되어 있다 보니 아무나 현관문 앞까지 도달할 수 있어서 생긴 방범 문제이기도 했다. 특히, 나도 쓸 물이 없는데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떼를 지어 찾아올 때는 무섭기까지 했다. 물이 없는 것도, 가난한 것도 온 동네가 마찬가지라 나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기 집을 찾아온 꼬마 한 명에게 2 뿔라(약 220원) 짜리 동전 하나를 줬더니 20명의 꼬마들이 몰려왔다는 동료의 경험이 생각나서 누구에게 쉽게 손길을 내밀지 못했던 점도 있다. 나에게 무엇을 얻으러 온 동네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낼 때는 마음이 좋지 않지만, 나는 단기 봉사 대원도 아니고 구호단체도 아니며 장장 일 년을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개인'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부자고 우리에게 뭐든지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를 내가 정말 감당할 수 있는가에 냉정해져야 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람들의 부탁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게 되었고, 필요시에는 비밀을 약속받고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사람들도 그에 익숙해져서 처음처럼 나에게 무작정 찾아오진 않았다. 서로가 보이지 않는 간격을 인지하고 공존의 타협점을 찾아갔던 것 같다.


그러다 학교를 떠나던 마지막 날, 나는 다시 오랜만에 불편한 상황에 부딪쳤다. 평소에 나에게 관심도 없던 교사 몇 명이 "나한테 아무것도 안 주고 그냥 갈 거야?" 하며 불만을 표시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선물 요구에 황당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그동안 나를 뭘로 생각했던 걸까. 나한테 기대했던 것이 그런 것이었을까. 나는 학교에 기부할 것들을 이미 교장실에 전달하고, 환경이 어려운 이웃 몇 명에게 내 살림살이의 상당 부분을 넘기고, 감사했던 분들에게 개인적으로 성의 표시를 한 상태였다. 그간 전혀 왕래가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기념품을 돌릴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그들의 바람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유종의 미'는 그저 클리셰가 아니었다. 그런 일로 시간과 감정 낭비를 한 탓에 ‘헤어진다고 눈물이 나진 않을까, 어떤 인사말을 남길까’ 하던 고민이 비집고 나올 새도 없었고 정작 학생들과는 아침 조회 때 공식적인 인사만 하고 헤어지게 됐다. 마지막 순간에 이런 일이 생겨서 학교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에 얼룩이 졌지만, 나는 일 년 동안 쌓아온 좋은 기억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짐들을 챙겨 교문을 막 나설 때 근처에 서 있던 몇 명의 학생들이 "바이, 미스킴"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던 모습에 괜히 짠했다.


해외에 봉사를 가는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머무는 동안 본업뿐만 아니라 기부와 친교까지 삼박자를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고 각자 바라는 게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역량껏 충실하면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부담이 느껴지면 자연히 마음에서 멀어지고 만다. 나는 앞으로도 어디서든 생색나지 않을 범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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