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달리는 덩치 큰 내 자동차 붕붕
보츠와나는 해외에서 중고차를 많이 수입하여 국내 중고차 시장이 크다. 그래서 현지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치안과 이동 편의상 거의 다 차를 산다. 반면, 국경 너머 남아공은 특별히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해외 중고차 수입을 금지하고 있어 차 구입부담이 여기보다 높다. 그래서 남아공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보츠와나에 사는 지인의 명의를 빌려 여기서 구입과 등록을 마친 후 본국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나는 귀국이 두 달쯤 남았을 때부터 내 차의 새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차 값을 일시불로 받는 게 깔끔하지만 여기선 개인끼리의 중고거래라도 계약금을 받은 뒤 할부처럼 몇 달에 거쳐 나눠 받는 게 형편상 흔했고, 판매자는 둘 중 어떤 지급방식이라도 구입자가 돈을 마련할 시간을 확보해주는 차원에서 기간을 길게 잡고 홍보를 하는 편이 나았다. 그러다 직장 일로 남아공에 막 오신 한국분이 차가 급히 필요한 상황에서 때마침 내가 차를 판다는 소식을 건네 듣고 연락을 주셨는데, 나는 고민을 하다 결국 팔지 않았다. 그분 입장에서도 차를 보츠와나에서 사와야 가격이 싸고 한국인이 타던 차여야 상태가 좋고 보츠와나인 명의자도 구해놓은 상태라 일을 빨리 진행시키고자 했고, 내 입장에서도 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고 한국인에게 한화 일시불로 받으면 환전수수료도 아낄 수 있고 돈 떼일 염려도 없으니 좋은 거래가 될 뻔했지만 아직 귀국까지 두 달 더 남은 상황이라 너무 일렀다. 귀국 즈음, 내 차는 카니에 교육청 교통과(Transport) 직원의 품에 안겼다. 항상 웃는 얼굴의 20대 청년이었는데, 좋은 가격이라 그도 만족하고 좋은 사람에게 주게 되어 나도 만족한 거래였다.
나는 보츠와나에서 생애 첫 차를 샀다. 비록 소유 기간은 일 년도 안 되지만 차주가 된 게 처음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내 차는 2006년형 도요타 어벤시스(AVENSIS)로, 14만 km를 탄 상태 좋은 2000cc 중고차였다. 일본 자이카(JICA) 단원 중 도요타 딜러였다는 친구가 ‘이건 일본에서 중년 아저씨들이 많이 타는 차인데 왜 샀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런 배경이 있는 줄 알았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이었을 거다. 중고차의 위험부담을 줄이고자 믿을만한 한국인이 타던 차를 넘겨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거래하기 쉬운 차가 경차인 도요타 비츠(VITZ)와 혼다 핏(FIT)인데 동료들이 이것을 중고차 시장에서 200만 원대 중후반에 산 것에 비해 나는 할인받아 300만원에 산거라 가격도 괜찮았다. 보츠와나 교통이 영국식이라 우리와 차선이 반대인데, 걱정과는 달리 주행 연습 세 번 만에 감이 왔다. 원래 몸에 밴 것을 바꾸는 게 더 어려운 거라 한국에서 운전을 많이 안 했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된 듯 했다. 그리고 보츠와나는 땅이 넓어서인지 어디나 주차비가 없고, 주차 공간이 넉넉했다. 주차와 후진에 약한 나 같은 초보운전자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내 어벤시스의 주요 행선지는 1시간 반 거리인 가보로네, 10분 거리인 동네 마트, 20분 거리인 카니에 교육청이었다. 그 외에는 차가 붙박이처럼 우리 집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이것도 동네 이야깃거리인지, 우리 집 앞에서 마주친 어떤 모르는 아저씨는 ‘차를 타지도 않는데 왜 세워만 두냐, 나에게 싸게 팔아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보츠와나에서 어떤 것을 보고 한국을 연상할 일은 거의 없지만, 출퇴근 러시아워와 주말 낮 동안 가보로네 도로에서 끝없는 자동차 행렬을 볼 때면 서울이 절로 그려졌다. 하지만 수도를 벗어나면 내가 원하던 꿈의 드라이빙이 가능했다. 우리 동네에서 수도 진입 전까지는 파란 하늘과 360도 평지의 시원함을 만끽하며 양방향 곧게 뻗은 한가한 2차선 도로를 쌩쌩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내겐 정말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내가 보츠와나에서 가장 만족했던 두 가지가 바로 뻥 뚫린 파란 하늘과 지평선을 향해 쭉 뻗은 도로였는데,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아 이렇게 긴 직진 길도 없고 한밤중이 아니고서야 도로에 항상 다른 차량이 있고 무인 단속 카메라가 많아 속도도 못 낸다는 점에서 나는 느리지 않은 속도로 쉼 없이 질주가 가능한 보츠와나 운전생활에 무척 흥미를 느꼈다.
때론 그 기쁨이 과하여 엑셀에 있는 힘껏 밟아도 보고, 텅 빈 도로에서 멍하게 가다 나도 모르게 오른쪽 차선으로 역주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츠와나 도로에는 차가 없더라도 난데없이 도로에 등장하는 불청객들이 있으니 주위 사방에 움직이는 무언가가 전혀 안보여도 늘 긴장은 유지해야했다. 과속방지턱 얘기부터 해보자면, 보츠와나에는 전방에 방지턱이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없다. 그리고 턱의 폭과 높이가 극단적으로 좁고 높은 게 많아 속도가 거의 0이 되어야 차체의 흔들림이 덜했다. 도로의 포트홀(Pot Hole)도 예기치 않게 나타났는데, 부실공사 때문인지 뜨거운 날씨 때문인지 아스팔트가 깨진 곳들이 많아 자칫 모르고 움푹 빠졌다 나오면 내 허리에도 충격을 가해졌다. 구멍을 피하려고 옆 차선이나 갓길로 잠깐 넘어 간다는 게 그만 사람이나 챠량과의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따금씩 출현하는 경찰과 동물엔 더 주의가 필요했다. 마침 내가 이들에 관한 사고도 겪었으니, 한 번 들어보시라.
하나, 경찰 단속. 우리 집에서 출발하여 수도에 도착하기 30분 전에 검문소가 하나 있는데 경찰은 랜덤으로 운전자를 세워 면허증을 검사하고 타이어, 비상등, 깜빡이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했다. 안전벨트 미착용은 벌금이 300뿔라(약 33000원)인데 이를 안 지키는 사람은 본 적이 없고, 면허증이 없으면 벌금 1000뿔라(약 11만 원)에 면허증을 가져올 때까지 차를 가져갈 수 없다는 얘기에 나는 차에 항상 국제면허증과 한국면허증을 싣고 다녔다. 그런데 음주 운전 단속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의문이었다. 교육청 관용차 기사님은 내가 운전을 시작한 날부터 ‘밤 운전 금지, 금요일 밤에는 절대 금지’를 강조하셨다. 메인 도로 외에는 가로등이 없어서 해가 지면 칠흑 같은 어둠을 오직 자동차 라이트에 의지해야했다. 그리고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부터는 음주 운전자들이 많기 때문에 도로는 무법천지였다. 토요일 아침에 수도로 가다 보면 도로에 사고 차량이나 차에 치인 동물이 최소 한 건씩은 있었고, 대낮에 맥주병을 들고 운전하고 있는 상대 차선의 운전자를 보고 오싹했던 적도 있다.
지정 검문소 외에도 경찰들은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사방에 차도 사람도 동물도 없을 때는 나도 다른 차량들처럼 60, 80, 120의 제한 속도를 무시하고 달렸다. 현지인들은 경찰이 주로 어디에서 단속을 하는지 알기 때문에 강약을 조절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날따라 느리게 가는 앞차가 답답해서 추월하다 결국 과속 티켓을 끊게 됐다. 알고 보니 사람들은 저 멀리 간이 버스정류장에 삼각대가 있는 걸 보고 서행을 한 것이었다. 어떤 아저씨가 도로에서 내 차로 달려 들길래 ‘저런 사람 또 있네’하면서 짜증을 가득 담아 경적을 빵하고 울렸는데, 그는 경찰이었다. 도로에 차가 다녀도 불쑥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당연히 그들 중 하나인줄 알았다. 경찰은 화를 내며 당장 신용카드를 갖고 내리라고 했다. 따라가 보니 여자 경찰이 한 명 더 있었다. 경찰 행세를 하는 사기꾼이 많다는 게 떠올라 나는 그들의 소속을 물었고, 남자 경찰은 자신의 명찰을 보여주며 우리 옆 동네인 모슈파(Moshupa) 경찰서에서 나왔다고 했다. 삼각대에 있는 비디오카메라 녹화 자료를 확인하고 싶다고 하니 그는 내 차가 제한속도 60인 길을 104로 달리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과속임은 확인이 됐고, 이제 남은 건 벌금 협상이었다. 나는 경찰이 요구한 고액을 어떻게든 깎아야했고, 사정사정해서 6분의 1로 낮췄다. 경찰이 이동식 카드단말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즉시 수금을 한다는 게 특이했는데, 현장 납부가 불가한 경우에는 경찰서로 직접 납부하러 가야한다. 카드 결제를 하고 돌아서는데 보츠와나에서 교통범칙금을 결국 한 번은 내고 가는구나, 하며 돈도 아까웠고 돈 때문에 갖가지 이유를 대며 누군가에게 애원했던 것도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둘, 동물의 로드킬. 도로에 동물들이 난입하면 양방향 차량들은 모두 비상등을 켜고 이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동물들은 늘 유유자적했다. 내가 도로에서 본 동물은 소, 당나귀, 염소 세 종류였는데 카사네에서는 코끼리가 단골이라 했다. 로드킬(Roadkill)이 발생하면 법적 책임자는 가축 관리에 소홀한 주인이지만, 주인 대부분이 시골 사는 가난한 노인들이라 보상이 한없이 지체되거나 아예 불가능해 일반적으로 운전자 본인이 보험 처리를 하게 된단다. 그런데 보츠와나 운전자들의 자동차 보험 가입률은 매우 낮다. 물론 돈 때문이다. 나도 동물때문에 후방추돌을 당한 적이 있다. 갑자기 도로에 뛰어든 소 때문에 앞차와 나는 속도를 줄였지만, 내 뒤차는 과속이 심했는지 급브레이크를 밟았어도 결국 내 차를 박은 것이다. 계속 백미러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정말 쿵하고 받쳤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교통사고였다. 과속 티켓을 끊었던 바로 다음 주에 일어난 일이었다. 왜 불운은 연이어 찾아오는가. 드라마대로라면 뒷목이라도 잡고 내렸어야했는데,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얼얼한 상태로 나와서 곧장 차 뒤쪽을 살폈다. 다행히 내 몸엔 이상이 없고, 차 범퍼만 손상을 입었다. 나는 보험이 있고 그 사람은 없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내 보험 회사가 처리를 한 다음 가해 운전자에게 청구를 한다. 물어보니 상대편 젊은 남성 운전자는 우리 동네 카니에 사람이었고, 차 상태만 봐도 그 사람이 경제적 여력이 없다는 걸 알 만했다. 보험 처리를 하려면 경찰 확인서가 필요한데 그 리포트를 받는 데만 천 뿔라이고, 피해자 보상비용과는 별개로 가해자에게 큰 벌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경찰이 개입된다면 이 남자에게 큰 타격이었다. 그는 경찰이 ‘아무 이유 없이’ 벌금을 많이 매길 거라며 제발 부르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나도 보츠와나의 복잡한 절차를 거치기 싫고 그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싫어, 수리비로 천 뿔라만 받고 끝냈다. 오늘은 우리 둘 다에게 비운의 날일 테니 그냥 이렇게 빨리 마무리하는 걸로 하자.
보츠와나에서 차의 기동성을 실감하고 나니 나는 서울에 가자마자 차를 사야겠노라 진작부터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귀국을 한 달 앞두고 2주 연속 도로에서 해프닝을 겪게 되자, 차주가 되고픈 바람이 싹 사라졌다. 처음 일은 내 과오에다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였지만, 다음 일은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남에 의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겁이 났던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우선은 다시 뚜벅이가 되어 그리도 간절했던 산책(Walk)도 원 없이 하고, 출도착 시간이 정확한 지하철(Metro)과 도시 구석구석을 잇는 버스(Bus)를 타고 여행을 할 것이다. 나의 BMW 시대, 그 재개막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