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을 질주하는 너에게

지역 육상대회를 치르며

by 다온

3월 27일, 우리 지역 유일의 고등학교인 세파피쵸 시니어 세컨더리 스쿨 (Seepapitso S.S.S.)에서 카니에 교육청이 주최한 초등학교 육상대회가 열렸다. 장거리, 단거리, 멀리뛰기, 높이뛰기, 투포환 던지기 등 주요 종목들이 다 포함된 이번 대회에는 관내 11개 초등학교가 참가했고, 우리 학교는 종합 3위를 차지했다. 선수 개인에게 수여되는 상은 따로 없었다. 우리는 대회 이틀 전에 선수를 선발하고 대회 바로 전 날 바톤 터치 등 실전 연습을 한 게 전부였는데, 학생들은 우수한 개인 기량으로 학교에 트로피를 안겨줬고 그 덕분에 사들도 대외 행사 하나를 수월하게 마무리하게 됐다.


그늘에 앉아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인데 제대로 먹는 것도 없이 온 힘을 다해 땡볕을 질주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했다. 우리 학교는 명색이 학교 대표인 이 선수들에게 물이나 간식도 지원하지 않았는데, 아침도 시원찮게 먹었거나 굶고 왔을 게 뻔한 학생 본인들도 아무것도 챙겨 오지 않아 대회를 치르는 오전 내내 공복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노점상 한 두 개가 와 있어서 돈이 있는 학생들은 사탕이나 한 줌씩 포장된 스낵을 사 먹기도 했다. 교육청은 큰 행사이니만큼 소를 한 마리 잡아 모든 선수들을 위해 점심을 준비했다. 에너지를 한껏 쏟아낸 학생들게 이것은 최소한의 격려이자 든든한 한 끼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만약 점심이 제공되지 않았더라면 우리 학생들은 도보 30분 이상인 학교로 돌아가 식사를 하고 다시 대회장으로 돌아와 오후 일정을 소화해야 했으니, 펄펄 끓는 대낮에 왕복 도보를 하다 힘을 다 소진해버렸을 것이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라 해도 자연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날도 경기중 쓰러지거나 근육 경련이 온 학생들이 제법 있었, 메디컬팀은 부상자가 천막 아래로 이송되면 상태를 확인한 후 심호흡을 시키거나 해당 부위에 젤을 발라 마사지를 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폭염, 미세먼지 등의 상태에 따라 야외 활동 여부를 결정하고, 민원에서 자유롭기 위해 보건실은 과잉진료를 해주는 게 보통데, 보츠와나에 오니 온도가 매일 40도 근처라 날씨가 덥다고 학교 스케줄이 달라지는 일이 없고, 학생이 넘어져서 다쳐도 개별 학교에 구급상자가 없으니 소독 조차 못해주는 형편이었다. 두 나라 사이의 괴리감 이토록 컸다.


대회장의 선수들은 종목에 상관없이 모두 맨발로 경기를 뛰었다. 그것은 내 눈길을 끌었고, 돌조각이라도 밟아서 다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불러왔다. 그런데 운동장 모래를 직접 만져보니 보기보다 아주 곱고 부드러웠다. 학생들은 깔창도 없는 딱딱한 신발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맨발에 닿는 땅의 쿠션감이 훨씬 좋을게 분명했고 부상의 위험이 따를 리도 없었다. 보다 더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운동장 트랙을 그리는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라인기를 가볍게 밀고 가면 안에서 흰 석회가루가 나오면서 트랙이 쉽게 표시되지만, 그런 도구가 없는 이 곳에서는 학생들이 단단한 나뭇가지를 구해와서 손으로 땅에 직접 굵고 깊게 선을 그렸다. 대회 전 날 우리 학교 학생들이 수작업한 경기장 트랙은 멀리서도 선의 구분이 명확히 보이고 비뚤어진 부분도 없었다. 나는 그 완벽한 결과물에 감탄했고, 학생들이 손과 팔에 얼마나 힘을 주었을지도 느껴졌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맞게 지혜를 발휘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이렇게 나는 또 배웠다.

2019.3.25. 교내 대표 선발전
2019.3.26. 대회 전 날, 바톤 터치를 연습 중이에요
2019.3.27. 지역대회 본선
2019.3.26. 이토록 선명한 수작업 트랙을 우리는 만들 수 있을까요

나는 원래 조깅을 하며 기분 전환을 하는 편인데 보츠와나에서는 운동이 내 삶에서 빠져있었다. 처음에는 '못'했고 나중에는 '안'했다. 나는 발령지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동네 유일의 헬스장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좁은 공간에 근력 운동을 할 수 있는 기구 일곱 개가 서로 가까이 배치되어 있었고 남자 몇 명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시골에 등장한 웬 동양인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모두 나만 쳐다봐서 부담이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런닝머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걷고 뛸 수 있는 실내가 필요해서 온 건데, 여긴 근육을 키우기 위한 남자들을 위한 곳 같았다. 그래서 나는 운동장소를 다시 고민해야 했고 그 결과 우리 학교를 택하게 됐다. 오후 4시경부터는 학교에 수위 직원 한 명만 있고, 그때는 햇살의 기세가 살짝 꺾이는 시간대라 야외 운동을 시도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고요함을 만끽하며, 때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기대어 걷고 뛰고 쉬며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운동한다는 내 소식이 직원들에게 알려졌는지 직원들은 일과 중에 내가 학교 내에서 이동하는 것만 봐도 "Are you exercising?"이라고 물었다. 부정적인 의도는 아니겠지만 사람들이 계속 이런 얘기를 하니 신경이 쓰여 점차 학교로 운동을 가지 않게 됐다. 동네에서 나만 빼고 내 일거수일투족이 공유되는 듯한 분위기가 진작부터 불편했었는데 이 점에서도 부딪친 것이다.


동네를 혼자 돌아다니기엔 위험하고, 이제 홈트레이닝 밖에 없는 건가. 그래서 집에서 요가도 하고 이방 저방 뛰어도 다니고 제자리 운동도 하며 나름의 활동량을 채워보기로 했다. 러다 점점 의지 바닥나고, 결국 문자 그대로 숨쉬기 운동만 하며 수많은 날들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럴듯한 핑계를 하나 더 대자면,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땀이 나면 샤워를 해야 하고 그럼 밖에 가서 또 물을 길어 와야 하니, 물 긷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땀이 안 날 정도까지만 몸을 움직이려는 패턴도 무시 못했다. 나도 수도에 살았다면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며 필라테스와 수영도 하고, 가격이 매우 싸서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다는 골프도 분명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현실은 그 문명의 혜택 한참 너머에 있었다. 수혜 지역에 파견된 사람들을 나는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래도 내 몫의 만족은 어디에나 있을 테니 낙담하진 않았다.


보츠와나 생활이 익숙해지고 평소처럼 동네에서 쳇바퀴 돌며 살던 어느 날, 나는 우리 동네 헬스장에 왜 런닝머신이 없고 왜 내 주변에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에 대한 답을 알 것 같았다. 운동에 대한 의식도 거론할 수 있겠지만, 본은 사람들이 운동에 쓸 돈도 시간도 에너지도 없는 현실이 아닐까 싶었다. 한 달 벌어 한 달, 하루 벌어 하루를 살고, 눈 떠서 잠들 때까지의 생활이 유산소 운동의 연속이라 돈 내고 런닝머신 위를 달리거나 꽉 찬 하루 일과 후에 체력 단련을 위해 무언가를 더할 여유가 없으며, 근육 단련보다는 당장 허기를 달래줄 탄수화물 공급이 더 간절한 게 우리 동네 시골 사람들, 즉 보츠와나 서민의 삶이었다.


내가 한가한 2차선 도로를 시속 120km로 운전하며 바쁘게 지나갈 때에도, 차편이 없는 사람들은 이글이글 타는 태양 아래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학교 바로 앞에 집이 있는 나와는 달리, 우리 학교 많은 사람들은 편도 한 시간 정도 도보로 학교에 왔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일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 적응하고 그에 알맞은 체력도 갖춰나가게 될 것이다. 그 덕분인지 대회장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앙상한 체격에다 육상 대회를 겨냥한 별도의 연습도 없었지만 날쌔고 힘 모습으로 자신의 역량을 자랑했다. 든 아이들이 탄탄한 신체만큼이나 마음도 강건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진심으로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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