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칭찬합니다

Prize Giving Day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돌아보며

by 다온

Prize Giving Day는 10월이나 11월에 열리는 보츠와나 각 학교의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로, 학교 구성원들의 한 해 성취에 대해 상을 주는 날이다. 올해 우리 학교는 10월 31일에 행사를 열어 각 과목별로 성적이 우수하거나 크게 진보한 학생에게 상장과 상품을 주었고 학급 성적이 좋은 교사, 공로가 인정되는 교직원, 학교를 지원해준 외부 인사, PTA 임원 등에게도 감사장이 수여되었다.


우리 학교는 프라이스 기빙 데이 예산을 모으기 위해 10월 말까지 한 달에 두 번 정도 펀드레이징을 했다. 나는 프라이스 기빙 데이가 도대체 얼마나 큰 규모이고 총 소요액이 얼마인지 모르다 보니 우리가 왜 이렇게 줄기차게 펀드레이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 그러다 행사가 목전에 다가오면서 학교가 손보고 구입하고 대여하고 설치하는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상황이 파악되고, 예산에 대한 부담 때문에 2년에 한 번씩만 이렇게 풀사이즈로 진행한다는 우리 학교의 사정도 이해가 됐다. 가게에서 현금 결제를 하고 거스름돈 50 테베(1 뿔라의 절반)를 받아야 할 때 점원들은 종종 주지 않았고, 왜 안주냐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듯 '동전이 없다'고 했다. 내가 현금 결제를 할 때 딱 50 테베가 부족하니 점원은 가진 만큼만 달라고 하기도 했다. 50 테베는 그만큼 가치 없게 취급받는 동전이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이 티끌 같은 액수부터 시작해 점점 태산을 만들어갔다. 우리의 펀드레이징 이벤트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1. 학교 쉬는 시간에 간식 판매 (상시) : 한 봉지에 50 테베(약 55원)

2. 교복 대신 자유복 입어도 되는 날(주기적으로 금요일마다) : 입으면 2 뿔라(약 220원)

3. 하이힐 신고 오기 이벤트(5월 10일) : 안 신으면 2 뿔라

4. 아버지의 날(6월 16일, Father's Day)에 아버지 의상 입고 오기 : 안 입으면 5 뿔라, 입으면 2 뿔라

5. 학년별 배구 대회 개최(가끔씩 방과 후에) : 관람료 2 뿔라

6. 학부모들에게 전통 음식 팔기(8월 7일) : 학부모들이 자녀의 성적표를 가지러 학교에 방문한 날, 학교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도시락 한 팩에 50 뿔라씩 판매했다.

7. 프라이스 기빙 데이 기념 티셔츠 판매(10월 마지막 주) : 50 뿔라(약 5500원)

8. 교직원 및 학생 모두 기부(가끔씩) : 50 뿔라씩

9. 디너파티(8월 30일, Prize Giving Dinner Party) : 교직원들은 최소 100 뿔라(약 11000원)인 파티 초대권을 각 5장씩 할당받고 지인들에게 팔았다. 나는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제외됐다. 음식은 학교 주방에서 교사 몇 명과 학부모 한 명이 함께 12가지를 만들었고, 파티장은 급식실에 마련되었다. 행사장 입구에는 레드카펫을, 내부에는 녹색 카펫을 깔아 파티장의 느낌을 주었고 테이블과 의자에는 흰 천을 씌워 격식과 깔끔함을 살렸다. 보츠와나 사람들은 국기에 사용된 세 가지 색상, 즉 흰색과 파란색과 검은색을 디자인에 많이 이용하는데 우리 파티장도 하얗고 푸른 보츠와나 컬러로 장식되었다. 손님들의 드레스코드는 정해진 게 없었지만 여성들은 이브닝드레스, 남성들은 나비넥타이를 한 수트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당일 포토그래퍼 역할을 맡은 나는 이런 분위기인 줄 모르고 캐주얼 차림으로 갔는데 의상만 놓고 봐도 파티를 즐기는 군중 속에 나만 일하러 나온 사람 같았다. 사진을 찍으러 계속 여기저기 돌아다녔기 때문에 일을 한 것이 맞긴 했다. 그런데 파티장에서 나처럼 캐주얼 차림으로 와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출장 나온 밴드 연주자들이다. 밴드는 아프리칸 스피릿 충만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우리의 흥을 고조시켰다.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았다. 오후 6시에 시작된 식순은 밤 9시가 되어 끝이 났고, 그제야 주방에서 대기 중이던 음식이 파티장으로 옮겨졌다. 그날은 금요일이라 사람들이 대부분 퇴근 후 집에서 단장을 하고 급히 파티에 는데, 그 시간까지 기다리느라 배가 많이 고팠을 것 같다.


프라이스 기빙 데이는 목요일이었고, 본격적인 행사 준비는 월요일에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학교 안팎의 구성원들은 물심양면 힘을 모았다. 학생들은 대청소로, 학부모는 음식 준비로, 지역사회는 물품 지원 등으로 행사의 성공을 빌었으며 교직원들은 요리, 청소, 상장 준비, 상품 구입, 의자 세팅, 천막 설치, 시상 준비 등으로 업무를 분담하여 바쁜 날들을 보냈다. 행사 배너 제작은 내 몫이었다. 나는 배너에 넣을 글씨를 워드 작업해서 노트북 화면에 띄워놓고 이것을 OHP 필름에 본뜬 다음, 이 필름을 흰색 천에 놓고 다시 본을 떴다. 그리고 이틀에 걸쳐 7시간 동안 파우더 물감으로 색칠을 했다. 우리나라에선 기계로 쉽게 하는 일인데 여기서는 나 말고는 할 사람도 없고, 학교 프린터도 고장 난 상태에다 붓도 진작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상태였다. 근처에 인쇄를 부탁할 곳이라도, 새 붓을 파는 곳이라도 있었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무슨 용기였던지 맨 땅에 헤딩하듯 학교에 있는 재료 그대로 작업하느라 시간이 과하게 들고 눈과 허리가 아팠다. 그래도 결과물에 대해 나와 사람들 모두 만족스러워하니 보람은 있었다. 기계와 도구의 사용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을 나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드디어 행사 당일, 학생들은 빨강, 주황, 보라색의 단체 티셔츠를 입어 행사장을 알록달록 물들였고 많은 학부모들과 내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오전 9시, 내빈들의 입장으로 식은 시작되었다. 본식에 앞서 유치원 졸업식이 열렸고 오전 내내 내빈 소개, 축사, 연설 등이 이어졌다. 언제나처럼 그날도 역시 땡볕이었지만 천막 아래에 앉아있느라 긴 시간 동안 더위에 지치지는 않았다. 보츠와나의 행사 식순에는 대개 'Motivational Speech'가 포함되는데, 오늘의 연설가는 보츠와나에서 패션과 교육 사업으로 매우 유명하신 분이었다. 우리 지역 출신인 이 분을 섭외하기 위해 교장선생님께서는 몇 달 전부터 공을 들이셨다고 했다. '자녀 사랑'에 대한 그의 열성적인 연설에 학부모들은 경청으로 화답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상장과 상품 수여는 오후 1시쯤 시작되었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상을 받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했다. 일하다가 잠깐 들렀다는 3학년 학생의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그녀는 사는 게 바빠 잘 챙겨주지 못했음에도 아들이 상을 받게 되어 정말 고맙고 기쁘다고 했다. 삶이 아무리 고되도 살아가는 원동력은 자식이고, 가장 큰 보상 또한 자식에게서 온다는 것을 이 젊은 엄마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상장과 상품을 내밀며 만면에 웃음을 띈 채 사진을 찍었고, 그 모습에 나도 흐뭇해졌다. 상품은 이불, 양동이, 소쿠리, 바구니, 삽, 냄비, 갈퀴 등 완벽한 생활 밀착형 도구들이었다. 사람들은 이것들을 가정에서 내내 사용하며 이 날의 환희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이다. 행사는 오후 2시쯤 행사는 종료되었다. 이후 내빈들은 회의실에서 점심식사를 했고 학부모들은 점심 도시락을 한 팩씩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의 노력으로 거행된 우리 학교 최대의 행사는 이렇게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어떤 직원은 이제 방학을 하는 11월 말까지 학교가 재미없을 거라고도 했다. 손님들이 빠져나간 텅 빈 학교는 고요함을 되찾았고, 몰두하던 일이 종료되자 뿌듯함과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뇌리를 스친 질문 한 가지. 과연 프라이스 기빙 데이의 교육적 효과는 그동안 우리 모두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합보다 월등히 큰 것일까. 보츠와나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있는 이 행사의 목적은 분명 훌륭하다. 각 문화에 따라 학생들의 동기를 자극하는 요인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인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현지의 정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사의 의도를 실현하는 방법에 변화를 준다면 취지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싶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는, 우리 학교에서 올해 열린 다양한 활동들이 거의 펀드레이징을 겨냥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한 해의 상당 부분이 프라이스 기빙에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는 곧, 학교 교육의 주객전도를 우려케했다. 그리고 보통 수학 잘하는 아이가 과학도 잘하는 등 학업 우수자들은 몇 명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큰 행사가 소수만을 위한 날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학생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더라도 긴 준비의 여정을 함께 걸어온 만큼 각자가 의미 한 가지씩은 찾을 수 있도록 뭔가가 기획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실제 그날 어떤 학생은 상을 다섯 개나 받아 엄마와 함께 상품을 짊어지고 가느라 행복한 고생을 했지만, 절대다수의 학생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상 따위에 관심은커녕 광장을 뛰어다니며 놀기에 바빴다.


'상'이 주는 성취감과 도전 의식은 크지만, 혹시 스포트라이트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거나 다수의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면 접근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칭찬과 격려를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지에 대해 교육자들의 숙고와 성찰이 더욱 필요하겠다.

2019.10.31. 천막은 3개가 설치되었어요. 중앙은 내빈과 상을 받을 학생들이 앉았어요
2019.10.31. 왼쪽은 학부모, 오른쪽은 학생들을 위한 천막입니다
2019.10.31. 상장과 선물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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