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의 하루 일과는 아침 조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아침 7시 10분이면 6학년 학생이 작은 종을 흔들어 조회 시작을 알리고, 각 반별로 남녀 한 줄씩 교실 앞에서 대기 중이던 학생들은 조회가 열리는 중앙광장으로 걸어와 유치원반부터 7학년까지 차례로 조회 대형을 완성했다. 조회 순서는 ‘가스펠 제창, 대표기도, 국가 제창, 공지 알림, 행진곡 부르며 퇴장’으로 항상 같고, 매주 수요일에는 모든 교직원이 학생들을 위해 가스펠 합창을 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가끔씩 댁에서 건반과 스피커, 앰프를 챙겨 오셔서 반주도 해주시고, 직접 작곡한 노래도 연주하며 불러 주셨는데 재능 기부이자 음악의 감동을 나누는 그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교사들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일주일씩 조회를 주관했고, 고학년 학생 서너 명도 팀을 이루어 교사와 함께 단상에 올랐다. 가스펠이나 행진곡은 정해진 것이 없고 학생 중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곡으로 선창을 하면 나머지가 따라 부르는 식인데, 누가 무엇을 부를지 미리 짜 놓은 게 아닌데도 늘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리드로 노래가 울려 퍼졌다. 나는 이들의 한결같은 능동적인 참여가 좋았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고학년들은 행사시 애국가와 교가 제창은 물론, 음악 가창 시간에도 억지로 시켜야 겨우 입을 떼는데, 보츠와나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이른 아침인데도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율동도 했다. 이렇게 자유롭게 선곡이 이루어지는데 일 년 동안 내가 들은 노래는 다 합쳐도 열 가지가 안 됐다. 덕분에 가사가 현지어라 뜻은 몰라도 같은 노래들을 계속 반복해서 듣다 보니 나도 거의 모든 곡을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애국가 4절 완창은 헷갈려도 보츠와나 국가 2절 완창은 소프라노와 알토를 구분해서도 가능하다. 보츠와나 사람들은 국가를 부를 때 부동자세를 유지하는데, 지각생들은 막 뛰어오다가도 일단 국가 제창이 시작되면 그 자리에 차렷하고 섰다.
조회는 15분에서 30분까지 소요됐다. 10분 안에 끝내자고 교직원 회의시간에 여러 번 말은 오갔지만 실제로 시간은 항상 길었다. 조회가 끝난 후, 1학기 때는 학생들이 바로 교실로 돌아갔고 2학기부터는 아침 급식이 실시되어 식당으로 향했다. 단, 금요일 아침 스케줄은 달랐다. 우리 학교는 매주 금요일을 스포츠데이(Sports Day)라고 하여 조회가 끝나면 체육을 했다. 학년별로 축구, 농구, 티볼, 트램펄린, 게임 등을 했는데, 다른 일정 때문에 체육을 안 하더라도 금요일에는 항상 운동복을 입고 학교에 왔다. 학생들은 흰 체육복, 교사들은 캐주얼 차림이었다.
매일 아침 7시 10분에 아침 조회가 열려요
매주 수요일 조회 때는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위해 가스펠을 불러요
조회를 담당할 교사와 학생들의 순서가 게시판에 안내되어 있어요
금요일은 체육의 날이에요
아침 조회가 끝나면 나는 내 전담 교실로 돌아와 8시 30분 첫 수업을 준비했다. 수업 준비물을 책상에 세팅해놓고 학생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평화로웠다. 내 교실은 학교의 메인 건물 뒤편에 있는 독립된 건물로, 학교 울타리가 바로 옆에 있어 교실 창문으로는 풀과 바위만 보였고 가끔씩 소들이 지나다녔다. 텅 빈 교실에 있으면 새소리, 바람소리, 워낭소리만 들렸고 교실이 덥긴 했지만 나는 그 고요한 공간이 좋았다.
학생들도 내 교실에 오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외국인인 나에 대한 호기심, 낯선 수업 자료에 대한 설렘, 생전 처음 조작해보는 전자 기기에 대한 흥미 등이 학생들의 마음에서 하모니를 이루었던 것 같다. 1교시에 내 수업이 있는 학생들은 아침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교실로 뛰어들어와 내가 벽에 게시해놓은 것들을 보고 또 보며 수업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수업 후엔 자기 반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교실을 빙글빙글 맴돌며 시간을 끌었고, 그럼 나는 담임선생님이 기다리시니 빨리 교실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보츠와나 학교에는 쉬는 시간이 없다. 1교시 후 바로 2교시가 이어지는 구조다.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후에도 안 나가고 미적대고 있다는 것은, 담임선생님과의 다음 시간 수업을 땡땡이치고 있는 것이 되었다. 나는 학생들의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한 번에 두 시간씩 연강을 했다. 즉, 각 반은 일주일에 한 번 내 교실로 와서 두 시간을 공부하다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해선 수업 중에 화장실에 보내지 않는데, 여기서는 이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내 교실로 달려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업 중 볼 일이 급하다는 학생들을 안 보내줄 수가 없었다.
저는 독립된 건물에서 수업을 해요
보츠와나에 파견된 초등 교사들은 수학 수업을 주로 했다. 영어로 수업을 하기에 수학이 수월해서 파견자들도 선호하고 학교 측도 한국인이 수학에 능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나는 1학기 때 수학 수업을 했고 2학기와 3학기에는 태블릿 PC수업을 했다. 2학기부터는 수학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좋아하는 담임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 그래도 다룰 것이 많은데 일주일에 총 8시간인 수학 수업 중 내가 2시간을 가져가게 되면서 가르칠 시간이 부족해졌다고 했었다.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는 교사들의 반은 처음부터 수업에서 제외시키고 싶었지만, 파견 활동이 한국에서 경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소 15시간 이상의 수업 시수를 확보해야 했고 학교 측에서 이미 지정해준 학년과 과목이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할 입장은 아니었다. 한편, 컴퓨터에 소질은 없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내가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고 학생들은 태블릿 PC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으니 수업자로서는 보람이 컸다. 컴퓨터가 교과목이 아니라서 시험이 없다는 게 우리 모두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다. 7월 방학 중에 수도에서 열린 보츠와나 초등학교 교장단 워크숍에 참석하셨던 교장선생님께서는 ICT가 교육부 최고 중점 사업으로 떠올랐다고 하시며 나에게 많은 도움을 부탁한다고 하셨고, 이에 나도 뭔가 기여하고픈 포부가 생겼다.
나는 보츠와나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어려움을 동시에 느꼈는데, 굳이 크기를 따지자면 긍정적인 부분이 더 크다. 보츠와나 학생들은 내가 건네는 모든 것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반응했고, 덕분에 나는 수업을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더라도 '괜히 했다' 싶지 않았다. 비록 설명을 여러 번 해줘야 하고 다음 시간이 되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고 구구단 암기는 끝까지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항상 내 교실과 수업을 좋아해 주는 학생들의 태도 자체가 교사의 사기를 올린다는 말이다. 공부할 것과 공부할 곳,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이 주변에 넘쳐나는 우리나라 학생들에 비해, 이들의 학문적 배움은 오직 학교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교사에 대한 신뢰가 더 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만큼 교사들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뜻이고, 이에 나는 학생들과의 수업에 소홀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