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니까요

보츠와나 초등학교 시험들을 거치며

by 다온

보츠와나에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듯 우리나라에도 값나가는 지하자원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케이프타운의 테이블 마운틴이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모으듯 우리도 그만한 자연 발생적인 관광자원이 있었다면 나라의 경제력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럼 공부 아니면 안 되는 줄만 아는 문화가 이렇게까지 견고해질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가진 것은 인적 자원뿐이라 오직 공부에 매달리고 밤낮없이 일하면서 기술력과 성실성으로 우리는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속도로 발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백년지대계인 교육마저 주입식, 서열식으로 흐르게 되어 우리는 배우고 가르침에 대해 넓고 길게 볼 여유를 잃어버렸다. 학생들은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공부를 좇아 달려가고, 학교는 성적에 따라 이들을 순서 매기며, 사회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누가 어떻게 섰는지에 집중했다. 급기야 학교는 왜 다니고 공부는 왜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게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한국 교육에 대해 극찬을 한 바가 있지만 우리 국민은 그 속사정을 안다. 비록 우리 학생들이 국제 수학올림피아드는 휩쓸지언정 내면의 행복감은 한없이 초라하다는 것을.


예전엔 수능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이 학업의 압박 선상에 있었다면 그 부담을 접하는 시기가 중학교, 초등학교로 점점 빨라졌고 영어유치원이냐 아니냐에서부터 교육의 성패가 갈린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입시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제도권 교육의 어떠한 노력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도 다양한 교육적 시도를 꾀하고 있다는 것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낼 필요는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까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공감해온 문제들에 대한 변화의 움직임들은 진작부터 있어왔고, 9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옛날 사람'인 내가 느끼기엔 학교의 많은 부분들이 실제 바뀐 상태다.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시험제도만 해도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우리는 '지필 평가 지양, 과정 평가 지향’으로 이미 노선을 갈아탔고 초등학교의 경우, 시험 자체가 최소화되고 일제고사가 사라졌으며 완벽한 수행평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평가 도구와 방법이 더욱 개발되어야 한다는 과제는 있다.


보츠와나 초등학교의 시험은 지난날의 우리와 같이 일제고사가 있고 평가 방법은 지필 시험뿐이며 성적이 매우 중시되었다. 시험은 크게 월말 평가(End Of Month Exam), 학기말 평가(End Of Term Exam), 연말 평가(End of Year Exam)가 있고, 중요한 국가 고사로 4학년 기초학력평가(Standard 4 Attainment test : 과목은 영어, 수학, 세츠와나)와 7학년 졸업 시험(PSLE : 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이 있었다. 학교 행사가 줄을 잇고 담임교사들이 각종 사유로 학기 중에도 부재하는 경우가 많아 공부는 도대체 언제 하나 싶었지만, 시험은 항상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특히 시험 전 주는 모든 학년의 수업이 시험 준비(revising)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학교 차원의 집중과 관심이 느껴졌다.


성적은 학생 본인뿐만 아니라 담임교사들에게도 아주 중요했다. 시험이 끝나면 학생들의 성적은 기준에 따라 A~E로 분류되고, 각 반 학생들이 AB, ABC, DE에 각각 몇 % 씩 해당하는지 통계를 내어 각 담임교사 이름으로 공표되었다. 이는 학교의 공식 자료로 문서화되어 교직원 회의 때 항목별로 일일이 숫자를 함께 확인하기 때문에 교사로서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학교 내부적 공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역 사회에도 알려지는 것이었다.


1월 21일, 나는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PTA 대표, 교사 한 분과 함께 코틀라(Kgotla, 전통적인 마을 조직)에 갔다. 그 네 분은 작년 학교 성적을 보고 하러 가시는 것이고, 나는 이 마을에 새로 온 사람이라 코시(Kgozi, 전통적인 마을 대표)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코틀라를 방문할 때 여자들은 치마에 숄을 두르는 게 전통이라 나도 의상을 갖추고 따라나섰다. 보츠와나는 민주주의와 현대 문화가 이미 자리 잡았지만 이렇게 부족 문화도 살아있었다. 코시를 비롯한 코틀라 구성원들이 착석하자 우리는 준비해온 보고서를 배부했고 교장 선생님은 보고서에 적힌 모든 결과치를 하나하나 읽으셨다. 그 후 코시의 격려 말씀이 이어졌다. 우리 학교의 학업 성취도는 지역의 100여 개 초등학교 중 상위에 속했다.

2학기 학기말고사 시간표
2019.1.21. 코틀라에 방문했어요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에 성적표라는 개념이 사실상 없다. 일 년에 두 번 배부되는 생활 통지표에는 출결 상황을 비롯한 객관적인 학교 활동 , 학생 행동 발달에 대한 담임교사의 평가, 각 학기의 수행평가 결과가 담긴다. 수행평가는 절대평가로 '매우 잘함, 잘함, 보통' 등으로 기록되고, 담임교사의 관찰을 토대로 기록되는 행동발달에는 일반적으로 학생의 장점만 골라 쓰고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매우 분명할 때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최대한 없도록 에둘러서 표현을 한다. 이것은 학생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도 있고, 학부모 민원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교사 개인에 따라 더 엄격하고 솔직한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보통은 후한 기준으로 피드백을 주는 편이다. 반면 보츠와나 우리 학교의 경우 2학기 중 하루를 성적표 배부일(Report Collection Day)로 정해 학부모가 직접 학교로 찾아왔다. 담임교사는 학생의 지필 시험 성적표를 토대로 학부모와 상담을 하는데, 시험 점수나 생활 태도에 대해 돌려 말할 필요 없이 생각하는 그대로를 말하면 된다고 했다. 두 나라는 평가 목표와 방법뿐만 아니라 이렇게 평가 결과에 대한 자세까지도 달랐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험은 10월 9일부터 10월 16일까지 일주일간 치러진 7학년 졸업시험이었다. 이것은 중학교 입학시험의 성격으로 P/F제이지만 보츠와나는 10년의 의무교육(Basic Education)이므로 실제로는 기준을 못 넘어도 진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다만, 중학교 원서를 쓸 때 이 결과가 첨부되기 때문에 해당 학교에서 학생지도 시 참고하게 되는 부분이라고. 우리 학교는 시험기간 내내 7학년 학생 모두가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모든 학생들이 참가비처럼 일정 금액을 냈고, 학부모 몇 명이 학교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셨다. 여름이라 밤에 교실에서 자는 게 춥진 않겠고,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하는 느낌이라 그 재미로 교실 시멘트 바닥의 딱딱함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학교에는 영어를 못해서 'slow learner'로 분류된 학생들이 2명 있었다. 학교는 특별실 두 개를 만들어 학생을 각각 배치하고 각 교실에 감독관을 두 명씩 배치했다. 감독관 A가 시험문제를 읽어주면 학생은 구두로 답하고 감독관 A는 그 답을 기록했다. 그리고 감독관 B는 이 과정을 점검하는 구조였다. 모든 과정은 녹음되었고, 녹음 파일은 시험을 주관하는 수도의 중앙 기구로 보내졌다. 시험 중에는 아무도 출입할 수 없었지만, 녹음 장치 설정을 돕느라 나만 예외로 두 교실을 왔다 갔다 했다. 영어가 공용어인데 이대로 중학교에 가면 앞으로 어떻게 학업을 이어나갈지 걱정된다고 고등학교로 파견된 동료에게 말했더니, 고등학교에도 영어를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했다. 졸업 시험이 끝난 다음날부터 7학년은 학교에 오지 않았는데, 보츠와나는 공식적인 졸업식이 유치원(Reception Class)과 대학교에만 있기 때문에, 졸업식이 없는 초등학교 7학년은 졸업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초등학교와 영영 안녕이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시험을 어떻게 준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험기간에는 평소보다 일찍 등교를 했다. 7시까지 등교라 보통 6시면 아이들의 등교가 시작되는데, 시험 때는 5시 반에도 많은 학생들이 우리 집 앞을 지나 학교로 갔다. 새벽을 깨우는 그들의 발걸음에 늘 배움의 기쁨과 행운이 깃들기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를 향한 타는 목마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