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니엔 타투가 있다

나의 단점과 마주하는 법

by 다온

왼쪽 아래 어금니가 전부터 약간씩 시리더니 이른 저녁을 먹은 후 갑자기 통증이 물밀듯 쓸려와 치과로 달려갔다. 20년 이상 다니던 치과에서 당장 진료를 볼 상황이 안 되어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서 마땅한 곳을 찾으려는데 나는 이 동네에 십 년 이상을 살고 있지만 토박이도 아니고 아는 토박이도 없어 어디가 잘한다더라, 하는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다 포털사이트의 광고에 순응했다. 가본 적은 없지만 동네를 오가며 눈에 익은 치과였다. 우리 집은 서울 변두리 역세권이고 걸어서 5분 안에 모든 종류의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데 백화점 앞 사거리에 20층 이상 되는 건물이 금세 지어지더니 거기엔 여러 사업체들이 들어섰다. 여긴 그중 하나였다. 이 빌딩과 마주 서있는 L 백화점의 광고 현수막만큼이나 이 병원의 전면 광고판이 커서, 제 아무리 광고에 현혹되지 않는 행인일지라도 여기에 시선이 스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가 진료를 막 시작하려는데 나는 위쪽 앞니 두 개 중 왼쪽 밑부분이 꺼끌거린다며 그것도 봐달라 주문했다. 살짝 매끄럽게 해 달라는 얘기였다. 작년에 강남 모 치과에 스케일링을 하러 갔을 때 의사가 간단히 다듬어줬던 게 효과가 있었던 터라 나는 그걸 상상했더랬다. 비용 청구도 없었던 걸 보면 분명 가벼운 터치였었다.

"치아가 약간 움푹 들어갈 수도 있는데, 해드려요?"

"네, 해주세요"

20초나 흘렀을까? 의사는 나에게 거울을 보라고 했고 나는 경악했다. 정말 앞니 하나가 물결치듯 대각선으로 올라가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머릿 끝까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움푹? 정확한 일직선이 안될 수도 있겠지. 그 정도야 뭐'

하아, 나의 오만이여. 어디 가면 내용도 안 보고 그 수많은 동의서에 형식상 으레 싸인을 하는 것처럼, 싸인을 안 하면 아예 일을 못보는 것처럼 나는 의사의 그 멘트도 그쯤으로 여겼었다. '전문가'가 '알아서' '적당히' 해주겠지, 하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오케이를 했던 것이다. 그 '움푹'이란 게 그렇게 티 나는 것일 줄 알았다면 당연히 안 했지. 나는 질겁했고 의사는 기계 같았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저번에 갔던 병원에서 해줬던 걸 생각했노라고 거의 울먹거리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의사는 '니가 해달라고 했잖아'하는 톤을 무심히 고수했다. 나는 책임공방보다 수습이 먼저였다. 머리카락은 다시 길기라도 하지, 이는 죽을 때까지 닳기만 하는데 이를 어쩌나. 그 이를 반듯하게 깎으면 그 옆에 있는 이와 길이 차가 더 심해져 아주 대놓고 웃겨질 상황인데 이를 어쩌지. 의사는 어떻게 손을 대든 이상하다며 그냥 가만히 두고 나중에 정 신경이 쓰이면 깎으란다. 그럼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무슨 이런 엑스 같은 경우가 다 있나. 근데 이걸 법으로 접근하자면, 어쨌든 의사는 자신의 예상을 '고지'했고 환자는 '수락'한 사안이었다. 그는 냉정했다. 이 병원 광고판에 등장하는 대표원장들은 젊고 학벌도 좋았다. 이 사람은 페이닥터 같은데, 그들에 비해 나이는 많고 스펙은 떨어졌다. 그의 스킬을 문제 삼고 싶진 않지만 본인 사업체가 아니라는 것, 내 케이스는 단돈 6500원짜리 일반 진료였다는 것이 그의 마음 자세를 그 따위로 세팅하게 했던 걸까. '의사'에게 친절을 기대한 내 순진함이 제일 큰 잘못이려나. 모처럼 일이 잘 풀려가던 한 주의 끝자락이었다. 어째 운수가 좋더라니. 찰나의 판단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닥뜨린 나는 감정의 회오리로 잠식되어 갔다.


"큰일 났다. 이거 봐봐"

"그게 뭐야!!! 완전 멍청이가 돼버렸잖아"

치과에서 돌아오자마자 동생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앞니를 보여줬더니 그녀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기겁을 했다. '그렇게 많이 티 안 나, 신경 쓰지 마'를 기대했던 나는 벼랑 끝에 간신히 디디고 있던 한쪽 발마저 균형을 잃어버렸다. 동생이 엄마한테 얘길 해 이날 우리 집 여자들은 다 잠을 못 잤다. 이것도 화목한 가정의 맹점이라면 맹점이다. 한 명만 괴로우면 될 걸 내 일처럼 싸그리 다 괴로워하니 말이다.

다음날 나름 의료계에 종사하는 지인들의 조언을 구했다.

"상식이라는 게 있잖아. 앞니를 이래 놨다고?"

하지만 예상대로, 도의적 책임 외엔 강제할 의무가 없단다. 소비자보호원의 법률자문 역시 합의뿐이란다.

니가 그래도 의사냐고 진상을 부려보기엔 내가 너무 '교양인'이고, 의료과실로 사람을 죽여도 의사면허가 유지되는 개떡 같은 한국 의료법상 이건 싸울 여지도 없는 게임이기에 나는 그냥 수긍했다. 내 미국인 동료가 '네가 말하기 전엔 몰랐다, 근데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말해줘서 '미의 기준이 이렇게 다른 건가?' 싶었지만 마음은 좀 다독여졌다. 사실, 다음날 그 치과에 다시 찾아가 공손하고 근심에 가득 찬 어조로 상담을 했는데 의사는 어제보단 좀 친절하게 본인은 어쩔 수 없었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그래, 그만하자 그만해.

나는 일주일 정도 거울 앞에서 입을 열지 않았다. 쳐다보면 하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치아교정 후 흠잡을 데 없이 가지런해진 내 이가 나에겐 자부심이었기에 그 타격은 어마무시했다. 그런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안 보니 잊어졌다. 그리고 한참만에 다시 거울 앞에서 '이~'를 해봤다. 처음보다 좀 나아 보이는 것 같았다. 동생은 바보 같아 보인다며 하하 웃었지만 엄마가 '그 정도면 괜찮아' 하시니 거의 단념이 됐다. 최소 올해까진 마스크가 날 가려줄 테니 노력하면 무심해질 수 있을 거다.

문신이라 하면, 옛날엔 무서운 아저씨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패션의 위치에 올라섰다. 타투는 사람에 따라 단순히 예뻐서도 하지만 많은 이들은 고통을 참아가며 자신의 신체에 특별한 의지나 의미를 담는다. 여행 중에 독일 남자 오른팔에 강(强)이 한자로 새겨졌길래 아는 척을 했더니 중국에서 했단다. 어떤 뜻으로 했냐니까 말을 안 하길래 혹시 잊어버렸나 해서 나는 "Oh, Strong"이라며 엄지척을 해줬다. 나는 앞니 사건 이후 웬만해선 이를 쳐다보지 않는데 웃는 얼굴로 찍은 셀카에선 이 대각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괴롭다. 요즘은 기술상 문신도 지울 수 있는 것처럼 나도 앞니 두 개를 같은 길이로 나란히 갈면 적어도 '멍청한' 캐릭터처럼은 안 보일 수 있다, 생 이를 손상시키는 모험만 감수한다면야. 그런데 이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내가 기피하는 그 문신이라는 걸 내가 이에다 한 느낌이었다. 인위적으로 모양을 만들지 않는 게 치아건강에도 좋지만, 사다리꼴이 되어버린 앞니만 보면 내 어리석음이 보이기에 나는 이걸 훈장처럼 남기기로 했다.

내 이에 새겨진 의미는 뭘까. 먼저, 성악설에 확신을 갖고 있지만 마음 한편에 여전히 성선설이 자리하는지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한 마디로, 사람 볼 줄을 모른다. 남들도 다 내 맘 같은 줄 아는 데다 무릇 인간이라면, 무릇 어떠한 타이틀을 가졌다면 그에 마땅한 성품과 책임감을 지니는 게 순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내 상처와 고정관념은 여기서 파생된 것 같다. 물론 실제 그런 사람들이 많았고 감사한 일도 많았다. 그러나 일상의 사람들은 내 판타지 속 이상적 존재들이 아닌 각자 자신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인임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별 거 아닌 것엔 세세히 신경 쓰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홱 지나쳐버리는 오 나의 우매함이여. 서류의 사족엔 몇 시간을 고민하면서 어떻게 내 이를 갈아버리는 것엔 0.1초의 숙고도 안 한 건지.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 순간 뭐에 홀렸던 것 같다. 뭐든 미루질 못하고 뚝딱뚝딱 해치우는 성격도 손을 봐야 하는데, 좋게 말하면 '부지런'이지만 조급함의 지분도 커서 큰일이다. 시린 이 치료하러 갔으면 그거나 하고 오지, 큰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닌데 앞니는 도대체 왜!


나중에 더 견딜 수 없이 이가 꼴 보기 싫어지면 어떤 조치를 취하긴 할 것이다. 부디 내 부족한 점들이 조금이나마 개선된 후에 그 시기가 오길 바랄 뿐이다. 뭐라도 긍정적인 게 남아야지, 안 그러면 자책감이 너무 클 것 같아서다. 나는 창의적인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서 영감을 얻을 수 있길 늘 소망하는데, 남들이 글자나 그림으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데 비해 나는 의외의 곳에 의외의 방법으로 이를 실현시킨 셈이 됐으니 나름 성과이지 않나 싶다. 힛. 이 자조 섞인 피식 웃음으로 나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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