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확장

각자의 오늘은 다 연결되어 있다

by 다온

8살이 된 조카가 갑자기 물었다.
- 고모 결혼했어?
/ 아니.

- 빨리 결혼해.

/ 왜?
- 그래야 가족이 늘어나지.


이 아이에겐 고모가 한 명 더 있고 그 고모가 결혼을 함과 동시에 본인에게 '고모부'라는 존재가 생긴 터였다. 얼마 전엔 거기서 아기도 태어났다. '남'이던 어떤 사람이 '우리'의 테두리로 들어왔고, 심지어 세상에 없던 생명체가 탄생한 것이다. 혼자 곰곰이 무슨 생각을 하다 내가 떠올랐던 걸까. 아마도 가족을 세어보다 어떻게 하면 늘어날까 궁리하게 됐고 그 여지가 나에게서 발견됐던가보다. 왜 저 고모는 혼자인 것인가, 하는 의문에서 가능성이 보였나 보다. 내가 사회 통념상의 그 '나이'를 넘어선 이후 웬만한 주변인들은 예의상 함구하는 주제인데 아이에겐 내가 몇 살인지 뭘 하며 사는지가 인식 밖의 일이고 그저 자신의 아빠와 남매이며 할머니 집에 가면 종종 만날 수 있는 사람일 뿐인지라 자신의 절실함만 안고 대뜸 말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특권이리라. 어쨌거나 나는 아이가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가족'이라는 단어를 꺼냈다는 것에 놀랐다. 이 아이도 나처럼 가족이 선사하는 온도에 충분히 따스함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

며칠 뒤, 조카는 또 물었다.
- 고모 결혼 안 했지?

/ 안 했잖아.
- 빨리해.

/ 왜 또.

- 결혼을 해야 아기를 낳지.

/ 결혼해도 애는 안 낳을 건데?

- 왜?

/ 힘들잖아.

- 낳아야지!

/ 왜?

- 그래야 우리가 사총사가 된단 말이야.


실제 비출산 수긍이 가는 입장이지만 아이의 반응이 궁금해서 일부러 딱 잘라 말던 건데 우리 집 장손은 결사반대를 했다. 애를 안 낳는다고? 제 엄마가 둘, 다른 고모가 하나, 이젠 내가 최소 하나는 세상에 내놓을 거라 예상했는데 나의 뜬금없는 선언 흠칫 당황한 듯 보였다. 어쨌든 아이는 '결혼'을 통해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고 그 결과 우리 공동체가 더 강해진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았다. 앞으로 그가 성장하며 겪어나갈 많은 일들에 대한 노파심이 벌써부터 내 마음에 자리하지만 그 심장에 이미 가정이라는 정서적 안전망이 확보된 이상 잘 헤쳐나갈 것이다. 거친 비바람과 이리떼를 만날지라도 돌아갈 품이 있다는 건 회복, 그리고 다음 라운드에 대한 단련을 가능케한다는 걸 나 자신이 매일 입증하기 때문이다. 내 삶의 원천은 부모, 형제의 사랑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금수저 친구나 우리보다 더 화기애애해 보이는 가정들이 눈에 안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나의 홈은 내게 과분하게 스윗하다. 그럴듯한 성공이 아니어도, 인맥이랄 것도 없는 단출한 인간관계에도 내가 자유롭고 당당한 건 그들이 탄탄하게 내 정신 근육을 붙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이 갓생이면 좋으련만 보통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혐생은 시작된다. 집을 나서서 학생은 학교, 직장인은 회사를 가고 하루의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 어디든 그 누구든 내가 인생에서 부딪치는 것들이 내 집과 내 가족이 주는 감정과 비슷하기라도 한다면 '혐'까진 안 가지 않을까 싶은데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서 그런지 아무리 공간을 아름답고 편리하게 바꾸고 구성원들이 서로 매너가 있다 해도 흔쾌히 '호'를 기대하긴 힘든 것 같다. 심지어 어설픈 시도로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는데, 악명 높던 지난 상사분은 젊은 직원들에게 '내 딸 같아서 그러는 거야'라고 종종 말했고 그 표현은 더 큰 반감을 불러왔다. 딸한테 이렇게 한다고? 우리 엄마는 안 그러는데? '엄마'가 가진 그 어떤 긍정적인 이미지도 그녀에게선 발견할 수 없었기에 그 단어에 대한 모욕으로 들렸던 게 아니었을까. 오히려 '우리 엄마/시어머니가 아니라 다행이다'는 엉뚱한 안도감만 안겨줬었다. 한편, 시대를 탓해야 하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속성인 건지 '가족 같은 회사'란 직장에 대한 희망고문과도 같은 무책임한 클리셰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터에 대한 호감을 위해 누군가 저 표현을 만들었을 때 굳이 패밀리쉽을 차용했던 건 아마 '가족'에 대한 우호적 반응이 인간에겐 무조건반사임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내가 3명에게 손을 뻗으면 그들 각자는 또 다른 세 명에게, 각자는 또 다른 3명과 연결되어 결국엔 나의 선함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개인이 탄생하고, 홈 스윗 홈의 마법은 사회 곳곳을 유연하게 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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