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츠와나는 총 3학기제이고 우리 학교는 학기별로 한 번, 1년에 총 세 번의 학부모 총회(General PTA)가 열린다. 나는 1학기(1월 30일)와 2학기(5월 22일)에는 참석했으나 3학기(9월 4일)에는 수도에서 열린 파견 교사들의 업무 발표회와 겹쳐서 참석하지 못했다. 학생들의 가족 구성원을 보면, 양친과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비율이 높지 않고 엄마와 사는 한부모 가정이 많으며 부모가 없어 조부모, 이모, 삼촌 등과 사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래서 회의에 온 학부모들이 학생들과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편의상 부모라고 할 때, 참석자의 대부분이 젊은 엄마들이었고 젊은 아빠들이 일부,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몇 분씩 계셨다. 보츠와나 사람들이 첫 아이를 20대 초반에 낳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젊은 학부모들 중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지는 않을 것 같았다. 외적으로 봐서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나는 우리 학교 전체 학부모들을 처음 보게 됐던 1월 학부모 총회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평소에 내가 동네에서 접하는 사람들은 우리 학교 직원들과 학생들, 관사에 사는 이웃 몇 명, 교육청 직원 몇 명이 전부였기 때문에, 그동안 가까이서 만나볼 기회가 없던 보츠와나의 평범한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고 그들이 학교로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는 날이니 나에게 좋은 이벤트가 되어주었다. 학생들은 점심 급식 후에 모두 하교했고, 교장선생님과 나는 회의가 열리는 급식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노트북, 빔프로젝터, 스피커, 마이크를 세팅했다. 테이블 배열까지 점검을 마친 후, 나는 의자에 앉아 출입문을 멀뚱히 바라보며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회의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조용한 회의장 안으로 학부모들이 하나 둘 입장했다. 그런데 젊은 여성들이 한 명씩 등장할 때마다 공간의 채도가 높아지며 나는 여기가 패션쇼장인가 했다. 짙고 각이 뚜렷한 눈썹, 새빨갛거나 새파란 립스틱, 매끄럽게 파운데이션을 바른 피부, 인조 속눈썹 등 비비드한 풀메이크업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어깨가 드러나는 상의, 배꼽티, 딱 달라붙는 원피스 등 과감한 의상도 줄을 이었다. 내가 보츠와나의 트렌드는 전혀 모르지만 아마 이런 것들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학부모든 교사든 가급적 튀지 않는 의상으로 교문을 지나는데 여기는 분위기가 이렇게 다르구나.
회의장 투명 유리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허허벌판 시골 한복판인데 내부 공간은 그와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할머니들이 입고 오신 전통의상들과 보츠와나 사람들이 흔히 입는 작업복 차림이 회의장에 더 많이 있었다면 나는 ‘그래, 이게 아프리카지'라고 했을까. 아프리카 사람들이 화려한 패턴과 컬러, 돋보이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여기는 시골이고 ‘학교’라는 단어가 주는 공적이고 약간은 경직된 느낌에 어울릴만한 단정함과 수수함이 풍기는 복장만 머릿속에 그렸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거기서 나만 딱 그런 모습이었다. 이런 분위기인 줄 미리 알았더라도 똑같이 입고 왔겠지만, 명색이 ‘외국인’인데 너무 초라한가 싶기도 했다. 내가 출국 짐을 쌀 때 어떤 옷을 챙겨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아프리카에서 이미 살아본 내 동생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화려한 거 좋아하니까 그런 옷 하나 챙겨가”라고 했었는데, 나의 쇼핑 스타일은 항상 ‘학교에 입고 출근할 수 있을만한' 것으로 최대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옷장을 뒤져도 그들에게 견줄만한 옷은 없었다. 결국 그런 옷을 준비해오지 못했다는 말이다.
급식실을 가득 메운 학부모들은 대체로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외모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왠지 내 기억 속에 거친 이미지로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목소리 큰 엄마들을 떠오르게 했다. 보츠와나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권위가 살아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소문과 다른 건가. 나는 과연 어떤 분위기로 행사가 진행될까 궁금해졌다. 회의가 시작되었고, 우리 학교에 새로 온 나에 대한 소개도 초반에 이루어졌다. 소개를 받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잠깐이지만 가만히 서있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손을 흔드는 것도 이상해서 그냥 우리 식으로 가볍게 목례를 했다. 미리 준비한 인사말을 없었지만 마이크를 건네받아 학부모들 앞에 섰다. 미소 띤 사람이 하나도 없고 다들 나를 뚫어지게 쳐다만 봤다. 무슨 말을 할까. '나는 한국에서 왔고 이름이 무엇이고 우리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고 만나서 반갑고' 등 예상되는 멘트까지는 별 반응이 없다가 '보츠와나에 오게 되어 기쁘다, 물이 안 나와서 살기 힘들지만 매일 파란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학교에서 일하게 되어 기쁘다, 수업시간에 학생들 공부 많이 시키고 있다, 부모님들은 아무 걱정 말고 아이들 학교에 보내시면 된다, 나 잘 가르치는 사람이고, 어려 보이겠지만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다'며 편하게 웃으며 말하니 웃음소리도 많이 들리면서 분위기가 유해지고 '몇 살이냐'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나이를 말해도 사람들이 안 믿기 때문에 말하지 않겠다, 초등학교 선생님 한지 10년이 넘었으니 대충 계산해보시라'하는 등 나는 사람들과 기분 좋게 말을 더 주고받게 됐다. '헬로, 아임 블라블라'만 하고 끝낼 줄 알았는데 내 말이 길어지자 그 날의 사회자였던 PTA 회장님은 인사는 거기까지 하자고 신호를 줬다.
학교에서 공지사항들을 다 전달한 후, 식순의 마지막으로 질의응답 및 토의가 이어졌는데 지금껏 계속 영어로 진행하다가 여기서부터는 세츠와나를 썼다. 아무래도 심도 있게 논의하기에는 모국어가 편하기 때문이었고 교장선생님은 나에게 양해를 구하셨다. 더 이상 회의에서 오가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흘러가는 상황은 여전히 서로 호의적이고 부드러웠다. 내가 가졌던 학부모들의 첫인상은 외모 임팩트로 인한 전적인 판단 미스였다. 이래서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 되는 거다.
회의는 정말 길었다. 퇴근 시간이 원래 3시 반인데 회의는 6시가 되어 끝났다. 학부모들도 중간에 먼저 가는 사람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학교 학부모 총회는 형식적인 미팅이 아니라 이렇게 교사와 학부모들이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진지하게 많은 얘기를 나누는 자리었다. 각 가정이 어떤 형태인지, 어떤 분위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날 느껴지는 보츠와나 우리 학교 학부모들의 열의는 강남 엄마들 못지않았다. 파견 동료의 집에서 일하는 짐바브웨인 친구도 중학교 1학년인 딸을 혼자 키우는데, 딸은 현재 본국에 있는 사립 기숙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학비가 자신의 월급보다 비싸서 친정 엄마가 보태주신다고 하는데, 왜 무리해서 비싼 학교에 보내느냐고 물으니 딸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밖에 길이 없고 당연히 대학교까지 보낼 거라고 했다. 그녀는 짐바브웨의 경제가 파탄 나기는 했지만 교육만큼은 보츠와나보다 훨씬 우위이고 공립학교들의 수준도 괜찮다고 했다.
부모에게 자녀 교육이 최대의 관심사라는 것을 나는 이렇게 아프리카 한복판 보통사람들에게서도 생생히 확인했다. 자녀가 잘되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 교육이 중요하다는 신념은 인류 공통의 자산인가 보다. 부모의 교육열은 대륙을 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