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공부를 해보자

나의 보츠와나 수업 이야기

by 다온

내 수학 수업 최대 목표는 전 학년 학생들의 구구단 암기였다. 수업의 시작과 끝을 구구단 문제나 구구단 노래로 하고 반별로 구구단 대회를 여는 등 나는 여기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1학기는 교육과정상 전 학년이 연산을 다루는 시기라 학생들의 기초 학습 상태가 금방 파악되었는데, 초등 수학에서 연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에 비해 학생들의 학습 수준은 현저히 떨어졌다. 학년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일이 그림을 그리거나 손가락을 사용하여 사칙 연산을 했다. 가로셈과 세로셈을 가르쳐준 직후라도 내가 옆에 서서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평소에 해왔던 대로 '54-12'를 푸는데 54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후에 12개를 X표 쳐서 나머지를 셌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건 그래도 답을 틀린다는 것이었다. 수를 셀 때 손가락 열 개를 넘어가면 손가락을 입술과 턱, 이마에 하나씩 대며 계속 수 세기를 이어갔다. 아무리 쳐다봐도 어떤 체계인지 이해는 안 됐지만 기발해 보이긴 했다.


이렇게 덧셈과 뺄셈의 토대도 단단하지 않은 상태인데 그 위에 곱셈과 나눗셈을 쌓기란 당장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나는 매 수업마다 학생들에게 집에서 풀 연습 문제지를 최소 2장씩 숙제로 내주었다. 수업 중에 충분히 연습할 시간도 없고 학교 밖에서 공부를 할리도 없고 문제집이 있는 것도 아니라 나는 억지로라도 공부할 계기를 마련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외국인 선생님과 재밌게 놀면서 공부할 것을 예상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점에 있어서는 나도 내적 갈등이 없지 않았다. 더 느긋하게 수업하며 학생들과 추억이 될만한 일을 하나 더 하고 싶다가도, 일주일에 한 번 내 교실에 오는 각 반의 학생들에게 나는 알려주고 확인하고 전달할 게 항상 많았다. 주어진 기간 동안 여기서 내가 뭔가를 크게 바꿀 수도 없고 그럴듯한 영향을 미칠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지만 잠깐의 이벤트로 친절과 웃음만 남기고 떠나는 외국인이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르쳐야 한다’는 직업병은 학생들의 심각한 학습 수준을 마주할 때마다 내 마음을 바쁘게 만들었다. 내가 시도했던 방법들이 다 옳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와 공부했던 것들이 학생들에게 일부나마 흡수되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1학기에만 수학을 다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이후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학생들의 노력에 가느다란 보상은 있어주길 기대해본다.


보츠와나는 예산 문제로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한 권씩 배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에서 교과서를 빌려 쓰고 매 수업의 절반을 교과서 필사에 할애했다. 나는 교과서를 베끼는데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교과서를 직접 편집해서 매시간 수업 자료를 배부했다. 이것은 내가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고 시간이 여유로워서 가능한 것이지, 현지 교사들에게 실제적인 본보기가 되지는 못할 것이었다. 나는 자료 준비를 위해 매일 한 시간 이상을 복사기 앞에서 보냈는데 위치가 교장실 입구라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내 수학 자료를 한 번씩 훑어봤으나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고, 두 세장마다 용지가 걸리는 탓에 나는 복사하면서 날마다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쳤었다. 내가 떠난 후, 학생들의 머릿속에 나라는 존재 말고 구구단만 제대로 남아도 나는 만족할 것 같다. 학생들이 연산에 손가락 사용하는 횟수가 부디 빨리 줄어들면 좋겠다.

학생들에게 배부될 자료를 매일 준비해요
손가락으로 연산을 해요

2학기 들어 시작한 태블릿 PC 수업은 나와 학생들에게 재미를 더해 주었다. 보츠와나 교육부는 한국으로부터 삼성 갤럭시 노트탭 A5를 지원받아 각 학교에 지급하였고, 우리 학교에는 35개가 있었다. 인터넷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학습 컨텐츠는 무궁무진하기에, ICT 활용 수업이라 하면 알맞은 내용을 선별해내는 작업에 주의를 기울일 일이었다. 하지만 예년과 달리 올해는 우리 학교에 인터넷이 지원되지 않아 수업에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과연 오프라인 상태인 노트탭으로 어떤 수업이 가능할까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고등학교 컴퓨터 교사로 파견 오신 분의 조언으로 감을 잡게 되었고, 학생들은 태블릿을 처음 보거나 기존에 사용해본 적은 있어도 방법을 다 잊어버린 상태라 전원을 켜고 끄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기기 자체의 기능들을 수업 주제로 뽑아내고, 기존에 깔려있던 앱 한 두 개를 병행하기로 하니 생각보다 빨리 몇 달치의 수업계획이 완성되었다.


학생들은 환경 설정(Setting)에 들어가서 벨소리, 배경화면, 언어, 시간, 화면 밝기, 아이콘 배열 등을 모두 바꿔보는 작업을 했다. 여기다 내가 집에서 가져온 스피커로 블루투스 기능을, 내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핫스팟과 테더링도 경험했다. 그리고 사진과 동영상 촬영, 녹음, 달력, 알람, 삼성 노트 등 갤럭시 노트탭이 가지고 있는 기본 기능들을 다 사용해 보게 됐다. 이미 다운로드가 되어있던 타자연습, 컬러링, 연산 학습용 앱도 아주 유용하게 이용했다. 그중 나는 삼성 노트의 기능을 가장 많이 활용했는데, 단위 수업 내에 타자, 사진, 녹음, 그리기, 색칠하기, 선과 색의 질감 학습 등 다양한 주제를 동시에 노출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다. 예를 들어 학교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빌려와 책의 한 페이지를 선택하게 한 뒤, 글은 타자로 치고 삽화는 S펜으로 그려 카피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고 친구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과목으로 치면 국어, 미술, 컴퓨터를 접목시키는 방식이었다.


학생들은 태블릿 PC를 이용한 활동들을 이해하고 실행하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반복을 필요로 했고, 나는 당초 계획했던 한 시간 분량의 수업 내용을 전부 줄이고 수업 진행 속도를 늦춰야 했다. '도대체 무엇이 가능할까'하고 고민하며 시작했던 수업이었는데, 마지막에는 리스트에서 오른 수업 주제들 중 다뤄보지도 못한 게 수두룩했다. 내 수업이 최종회를 맞는 날까지도 전원을 켜고 끄는 데 어려움을 겪는 3학년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 아이들의 열 살 인생 통틀어 가장 신기한 기기를 만져봤던 시간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수업의 목표는 달성됐다고 생각한다. 이 짧은 경험이 그들의 인생에 반짝이는 영감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교사들이 스마트폰은 다 갖고 있지만 태블릿을 사용해 본 사람은 한 둘이고, 그마저도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라 내가 떠난 후에 학교에서 과연 누가 어떻게 태블릿을 학습에 이용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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