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흥겨웠고 나는 노여웠다

이웃과의 소음에 대하여

by 다온

보츠와나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혼자만의 다독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답답한 일들도 생겼다. 그럴 때면 가까운 파견 교사들에게 하소연을 하면서 동병상련을 나누었고, 교민들께 열변을 토하고 나면 대부분 '여기는 우리의 60년대 모습이니 참고 넘어가야 한다'는 조언이 돌아왔다. 나는 그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었던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지금껏 상식이고 매너라고 생각하는 것들과 간극이 너무나 큰 현실들을 마주할 때면 허공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중 소음 문제가 가장 컸다.


내 방에서 열 걸음도 채 안 되는 곳에 뒷집과 분리되는 펜스가 있고 거기에 닭장이 있었다. 그러니까 거리상으로 보면 닭장 바로 옆에 내가 텐트를 치고 자는 느낌이었다. 나는 닭이라 하면 새벽을 깨우는 고마운 동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뒷집의 수탉 다섯 마리는 낮에 계속 울다가 초저녁엔 쉬고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계속 울었다.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닭이 울어봐야 얼마나 하겠냐' 하겠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고 상상도 못 해본 그 길고 높은 피치의 소리는 내 귀에 그대로 꽂혀 날카롭게 뇌를 자극했다. 원래 잠귀가 밝기도 하지만 이들이 주는 수면장애는 말도 못 했다. 이불을 뒤집어써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도, 베개로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이 현상은 온도가 떨어지는 겨울에 더 심했고, 이사도 고려해봤지만 마땅한 집이 없어서 포기했다. 마트에서는 더 비싼 가격에 팔릴 자연 방사 치킨 일지는 몰라도 나에겐 그저, 낮에 깨끗한 우리 집 현관에 와서 똥을 싸고 밤에 내 귓전에다 악을 쓰는 민폐 집단일 뿐이었다. 닭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나라서 그 소리는 나에게 가장 직격탄이 되지만 그래도 소리가 안 들리지는 않을 테니 바로 옆 집 사람들에게 ‘닭 소음이 괜찮냐’고 물어보았고 , 다소 좌절스럽게도 '시끄럽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소리라 익숙해서 괜찮다'는 대답을 듣게 됐다. 공동주택에서 가축을 자연 방사로 기른다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이렇게 소음이 발생하는데도 이웃에서 불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심한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닭 주인은 우리 학교 원로 교사셨는데 내가 이 문제를 얘기한다고 해서 닭을 없앨 것도 아니고 이웃들 중 어느 누구도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이 없으니 아무리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낸다 해도 '예민한' 외국인으로밖에 인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동네에서 이 문제를 입밖에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무뎌지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한계치에 다다르면 금요일 퇴근을 하자마자 수도로 내달리는 방법으로 살 길을 택했다. 다른 지역에 사는 파견 교사는 새벽마다 울어대는 옆집 개 때문에 괴롭다고 하는데,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심리 일진 몰라도 내 생각엔 신경을 자극하는 끼이익 닭소리보다 우렁찬 개소리가 나을 것 같았다. 왜 우리 동네엔 그 흔한 개 한 마리도 없었을까.

20190830_074440.jpg 좌측의 내 방, 우측의 닭장. 이들은 창문 아래에서도 울었다

어쨌든 방금 말한 소음의 주체는 동물이라 소통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 '익숙함'을 장착하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치자. 그런데 그 소리의 주체가 사람이라면 시각이 달라진다. 그들은 왜 낮이든 밤이든 앰프를 켜고 온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게 노래를 듣는 것인가. 이것은 주말이면 특히 심했고 수도에서 머물 때 목사님 댁에서도, 동료분 댁에서도 이미 여러 번 겪었는데 내 집에서도 일어나다니. 자정이 넘어도 동네 전체가 진동할만한 음악 소리가 끝날 줄 몰라 동료분이 경찰을 불렀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인근 소란죄가 백번 적용될 일이나 신고를 받고 느지막이 출동한 경찰은 도움은커녕 화만 돋우고 갔다고 하니 그 사실을 진작에 들은 나는 소음 문제가 발생할 경우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길 바랐었는데, 앰프와의 전쟁은 두 번 일어나게 되었다.


뒷집에 사는 우리 학교 선생님 스무 살 막내아들은 뒷마당에서 집안일을 할 때 평소에 앰프를 켜고 노래를 들으면서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했다. 일할 때는 노동요가 필요하고 낮이니까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해진 후에도 끄지 않는다면? 여름의 경우 해가 늦게 지는데 그렇다고 밤 10시가 되도록 이 일대를 아프리카 음악으로 채우는 건 아니지 않나. 바로 뒷 집이긴 해도 밤이라 집 밖에 나가기도, 남의 집에 찾아가기도 곤란해서 창문을 계속 쳐다보며 집으로 들어간 그가 뒷마당에 나오길 기다렸고 마침내 그가 나오자 나는 '익스큐즈미'하고 외치며 '나 지금 자야 되는데 음악 좀 줄여줄 수 있냐'고 최대한 차분히 말했고, 그는 웃으며 '오케이'하더니 잠시 후에 껐다. 이웃집 앰프와의 첫 전쟁은 이렇게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윗집 남자와의 마찰이었다. 그는 우리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 혼자 살았고, 매주말마다 친구들이 찾아와 불금과 불토를 보냈다. 그러다 어느 금요일 오후, 윗집에서 앰프를 연결한 음악 소리가 났는데 방에서 계속 진동까지 느껴졌다. 낮이라 소음 따위는 문제 삼고 싶지 않고 어색한 이웃이 되기 싫어 망설이다가 도저히 집안의 진동을 견딜 수가 없어서 두세 시간 만에 결국 윗집으로 올라갔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층간소음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을 공감하지 못했었는데, 그게 중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엄청난 스트레스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 지금 저희 집에 진동이 너무 많이 느껴져서 집안에 있기가 힘드니 앰프 좀 낮춰주세요.

/ 지금 제일 작게 해 놓은 거예요. 앰프를 아예 끄라는 말인가요?

- 앰프 볼륨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아래층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보시고 조치 좀 취해 주세요.

/ 이게 제일 낮은 단계예요. 내가 이걸 끄길 원하나요?

- 제가 지금 끄라고 할 수 없고, 우선 저희 집에 가서 그 진동을 느껴보세요. 그 후에 판단하시면 되겠네요.

/ 왜 내 자유를 방해하죠? 주말이 아니면 언제 내가 이렇게 쉴 수 있나요? 주말에 집에서 책을 읽는 게 당신네 문화인가 본데 우리는 아니에요. 주말에는 편하게 쉬어야죠.

그는 언성이 높아졌고 나도 그에 지지 않았다.

- 당신이 집에서 무엇을 하든 나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당신의 자유를 침범할 권리도, 그럴 생각도 없어요. 그런데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죠. 그리고 독서는 개인의 취미이지 주말 문화가 아니에요. 나처럼 찾아오는 이웃이 그동안 없었겠지만 정말 시끄럽다고 여기지 않아서였을까요?


입장차만 확인한 채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앞집에 사는 우리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하소연을 했다. 이 분은 윗집 남자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갈등 해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선생님은 바로 앞집에 살기 때문에 본인도 내가 말한 모든 상황에 대해 알고 있고 공감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전에 살던 사람은 더 시끄럽고 맨날 술을 마셔서 정말 괴로웠는데 이사를 가서 좋다고 했다. 내가 '왜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냐'고 하니 '얘기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참는다'고 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간 뒤, 선생님은 윗집에 찾아갔고 세츠와나로 얘기가 오가는 게 우리 집에서 들렸다. 그리고는 음악이 꺼졌다.


보츠와나 사람들은 싫어도 겉으로는 좋다 해주고 아무리 불편해도 타인에게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우악스럽게 따지는 것도 흉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속앓이 하는 것도 병이다. 내가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것도 후자의 성향 때문인데, 전반적인 보츠와나인도 그렇다고 하니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남을 최대한 이해하고 내가 최대한 양보하면서 사는 게 분명 미덕이나, 나 자신이 괴로움을 느낄 때까지 가만히 참는 건 어리석은데 말이다. 잠깐 살다 떠날 나조차도 엄청난 고민 끝에 말을 꺼낸 거라 심정은 충분히 알겠지만, 그 불편함을 몇 년 동안 담아두기만 하는 것은 건강한 이웃 관계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교장선생님도 학교 일과 중에 들리는 우리 뒷집 아들내미의 앰프 소리가 문제라고 하시면서도 한 번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하셨다. 어쨌든 '당당히' 문제 제기를 한 내가 드세거나 용감하다고 소문이 다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어김없이 한 무리의 남자들이 불금을 즐기러 찾아왔고 밤늦게까지 떠드는 소리가 났다. 이번 주는 수도에 갈 계획이 없었는데, 나는 토요일 날이 밝자마자 당장 수도로 떠났다. 그 시각까지 마당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고, 이 난관을 타개하는데 도움을 주실 분은 교장선생님뿐이라고 판단되어 나는 이 사태를 자세히 알렸다. 월요일에 앞집 라롱아비 선생님으로부터 부가적인 설명을 들으신 교장선생님은 그날 오후에 윗집 남자를 우리 학교로 부르셨다. 교장선생님 앞에 그와 나는 나란히 앉았다. 여기서 나는 우리 교장선생님의 현명함에 감탄했다.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그에게 부담스러운 분위기일 수 있는데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그동안 미스킴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들었다, 문화 차이도 있을 것이고 의사소통에도 오해가 생기기 쉽다' 등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시는 중재의 언어 속에 우리는 각자 자신의 입장과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서로 전했다. 그 이후로는 주말마다 우리 집 마당을 가득 채우던 승용차들도 더 이상 그만큼 오지 않았고 소음도 없었다.


그 때 나는 정말 그의 '자유'를 건드렸던 것일까. 그후 그와 마주치는 시간이 더 적어졌지만 윗집에서 인기척이 날 때 가끔씩은 이 질문이 뇌리를 스쳤다.


처음엔 '아프리카 사람들은 흥이 많고 춤과 음악을 좋아하니 어쩔 수 없다, 데시벨에 대한 민감성 자체가 다른 건가'하며 이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세계시민의식을 갖춘 사람들까지 오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문화 차이'라며 넘기는 것들 중에는 사실 지극히도 개인의 매너 문제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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