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시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서비스의 질이 좋은 순서대로 집단을 나열한다고 할 때, ‘공무원’이 빨리 호명될 가능성은 아직도 낮은 것 같다. 요즘은 엄청난 경쟁률에다 젊은 인재들도 많이 몰리고 조직 문화와 서비스가 개선되고 있다지만, 우리 집 앞 주민센터만 가봐도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공무원을 어렵지 않게 부딪칠 수 있는 걸 보면 아쉬울 뿐이다. 만약 학교에서 '고객'을 저렇게 응대한다면 뉴스에 날 각오는 해야 하는 세상이라, 나는 '철밥통'이라고 같이 욕먹는 입장에서 그런 사람들이 더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보츠와나 관공서에서 한 번이라도 일을 처리해본 한국인이라면 우리나라 공무원 수준이 높은 것이었구나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팝콘보다 더 격렬하게 속이 터지는 경험을 하게 되니 말이다. 교민들이나 기존의 파견 교사들로부터 익히 들어는 왔지만 내가 직접 교통국, 경찰서, 이민국을 겪어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정점은 이민국이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한 달이면 나오는 거주 비자(Residence Permit)를 아무 결격 사유도 없이 5개월이나 걸려 겨우 받았다. 그래서 90일 무비자 기간이 끝난 후에, 거주 연장을 허가하는 웨이버(Waiver)를 한 달짜리로 두 번을 받게 되었다. 그 긴 기간 동안 우리 동네 이민국은 왜 내 퍼밋이 지연되고 있는지 본부에 전화 한 통이면 확인할 수 있을 텐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른다고만 했고, 운전하고 한 시간을 가야 하는 옆 동네 로밧체(Lobatse) 이민국까지 헛걸음을 시키질 않나, 일관되게 불친절했다. 내가 이런 거나 겪으려고 아프리카 이 시골까지 날아왔나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다.
내가 보아온 보츠와나 사람들은 우리처럼 시간에 쫓기거나 효율성을 따지거나 진행 상황을 주시하거나 결과에 낙담하지 않았다. 우리같이 늘 속도 전쟁에 시달리고 목표 달성에 예민하고 일과 쉼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들은, 항상 ‘No Problem’을 달고 사는 그들로부터 긍정적이고 여유 있는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비즈니스 현장에서조차 내내 그렇기만 한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었고, 이는 아프리칸 타임과 업무 능력 저하라는 불명예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물론 모든 보츠와나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우리 교장선생님 Mr. Leatso이시고, 이 분은 보츠와나의 그 어떤 사람들, 그중에 공무원, 그중에 교육자 가운데서도 남다르셨다. 교민들이 현지인 누군가를 가리켜 '그 사람 한국스타일이야'라고 한다는 건 '일이 빠르고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한국인들이 다 성실하고 믿을만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신뢰할 수 있는 보츠와나 사람이라는 의미였고 그런 면에서 우리 교장선생님은 지극히 한국 사람이셨다. 실력과 인격을 겸비하신 것으로 볼 때, 사실은 한국에서도 찾기 힘든 스타일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내가 보츠와나에서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내 노력 한 스푼을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그분의 리더십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는 올해 인터넷도 안 들어오고 종종 유선전화마저 끊겼다. 그런데 관공서는 해결해주지 않았고, 이 상황은 일 년을 갔다. 원래부터 혜택밖에 존재했다면 당연히 그에 적응했겠지만, 원인이 한낱 기기 고장 또는 통신비 조달 둘 중 하나인 이 문제가 그대로 방치되다니 나는 업무 당사자가 아닌데도 속이 터졌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우리는 인터넷이 없으면 일이 안 되는 시스템이지만 여기는 수기 장부가 기본이고 서류도 사람이 직접 배송하는 문화라서, 비록 처리에 시간이 더 걸리고 교장선생님의 개인 휴대폰으로 업무상 통화나 공문 확인을 해야 했지만 업무가 마비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어떤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신다는 게 우리 교장선생님의 스타일이었다. 이것은 일을 미루거나 질질 끄는 걸 싫어하는 내 성격과도 딱 맞아 같이 일하는 재미가 있었다. 말이 잘 통해 한국 사람과 한국말을 하는 기분도 들었다. 자국 공무원들의 나태함에 대해서도 날서게 비판하시는 등 이 분의 유연한 사고 덕분에 나는 학교 일이든, 개인적인 일이든, 사회 일반적인 일이든 서슴없이 대화의 주제로 꺼내 놓을 수 있었고 실제로 내가 보츠와나에서 가장 편안하게 많은 대화를 나눈 상대가 바로 이 분이셨다.
늘 가장 먼저 출근하시고 가장 늦게 퇴근을 하시는데, 학교에 아무도 없을 다섯 시 정도에 마실을 가도 주차장에는 교장선생님의 차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교장실에 가보면 여전히 업무 중이셨고, 시간이 남아도는 나는 학교를 왔다 갔다 걸어 다니거나 시원한 실내에 앉아 고요함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퇴근하시는 교장선생님을 자주 배웅하게 됐다. 그렇게 하루 종일 바쁘셨어도 항상 가방 가득 서류를 챙겨가셨는데, 새벽 세 시쯤 일어나 일을 마무리하신다고 했다. 이 분의 얼굴에 피곤함이 유난히 짙게 비치는 날이면 나는 자동으로 '보츠와나에서 초등학교 교장을 하면 힘들 것 같다, 한국의 초등학교 교장은 직업 만족도가 1위다, 우리나라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고생 너무 많으시다'라는 말을 절로 하게 됐다. 속뜻은 위로였는데 그렇게 잘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늘 마지막까지 주차되어 있던 차는 교장선생님의 차였죠윗사람이 뛰어나면 아랫사람이 피곤한 법이거늘, 우리 조직의 최고 직급이신 이 분은 자신의 근면 성실함을 직원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셨다. 매사에 묵묵히 솔선수범하시고 대접받으려는 마음이 전혀 없으실뿐더러,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으셨다. 담임교사가 갑자기 결근한 반에 직접 보결 수업을 들어가시거나, 나 하나를 위해 학부모 참여 행사까지 전부다 무조건 영어 사용을 원칙으로 하시는 모습이 구체적인 예가 되겠다. '우리는 Global Citizen이고 Professional이며, South Korean이 함께 있기 때문에 영어로만 진행함을 양해해달라'는 멘트에 내가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50대 중반의 청소를 담당하시는 아주머니께서는 '30년 넘게 여러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런 교장은 없었다'고 평가하셨다. 구성원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조직의 대표를 향한 안티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진정 실화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있었다. 나와 교장선생님은 학교 행사 때마다 노트북, 프로젝터, 스피커, 마이크 등 장비를 세팅하고 해체하느라 행사장에 가장 오래 머무른 반면, 교사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손님들과 같은 시각에 등장했다가 손님들과 같이 퇴장을 했다. 왜 교사들이 돕지 않는 건지 오히려 내가 하소연하듯 말하니, Mr. Leatso는 웃으시며 스스로 거들지 않는 한 부탁하는 게 쉽지 않고 그냥 본인이 하는 게 편하다고 하셨다. 사실 나에게도 한 번도 도움을 요청하신 일이 없다. 혼자 하시길래 도와드리고 싶어서 내가 그냥 한 것이었다. 교장이 학교의 구체적인 실무에 직접 참여하는 자체를 우리나라에선 본 적이 없는데, 보츠와나 우리 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이 실무를 도맡아 하셨고 나는 그에 많이 놀랐다.
행사나 조회 때 종종 반주를 해주시는 Mr. Leatso언젠가 교장선생님께 승진에 대한 뜻이 있으시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이 자그만 시골의 단위 학교가 아니라 더 높은 위치에서 귀감이 되어 주실 만한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충분히 좋다'라고 하시며 '승진을 한다면 카니에 교육청의 교육감이나 그 하위 5개 지역교육청의 교육장 자리인데,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50대라서 이미 늦었다'고 하셨다.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 인생이라는 걸, 서른이 훨씬 넘어보니 나도 이제 알겠다. 그만큼 만족은 어려운 것이고 내 평생의 숙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목적지를 향해 갈 때 길잡이가 되는 높은 산을 따라 움직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내 눈높이에 있는 이정표를 보고 때마다 내 위치를 확인하며 나아갈 길을 정할 때가 많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이렇게 숨은 보석 같은 분들이 가까이서 주변을 밝히고 계시기에 우리 사회가 지켜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평교사로서 한국에서 이런 교장선생님을 또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뵙게 된다면 그건 정말 행운일 것이다. 나는 다만, 그분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내면화하여 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내 교실에 있는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지도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존경스러운 선생님 또는 아버지 같았던 Mr. Leatso의 아름다운 앞날을 정말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