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데

쓰레기 테러범 이해하기

by 다온

'무서워서 동물을 안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사람이 무섭지 동물이 뭐가 무섭냐’고 말했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험한 일들이 제법 벌어지는 세상이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게 얼마나 긴장과 갈등의 연속인지 사회생활 연차가 늘어갈수록 그 말을 체감하기 때문에 그 속뜻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에게 동물은 여전히 머나먼 당신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시골로 온 이상,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동물들과 어우러져 살게 되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펜스 게이트가 활짝 열린 채로 땅에 깊이 파묻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동물들의 출입을 반기고 있는 형편이었다. 내 구역만 침범하지 않으면 우린 잘 공존할 수 있다고, 제발 각자의 영역에서 살자고 속으로만 외칠 뿐, 나는 제 집 드나들 듯 우리 집에 머물다 가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동물들은 집에서 혼자 노는 나를 매일 돌아가며 찾아와 주었다. 이 정도면 이웃사촌이라 해도 된다. 생각해보면 구역 침범은 내가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여긴 원래 그들의 땅이었는데 인간들이 하나둘 모여 집을 짓고 살더니, 급기야 나 같은 남의 나라 사람까지 와서 내 집이다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아프리카에 사니까 친구들은 '동물들 많이 봐서 좋겠다'고 했지만, 우리 동네는 그냥 옛 시골 느낌이라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사파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보츠와나는 코끼리 개체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이고, 초베(Chobe) 국립공원이 있는 북부의 카사네 지역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아프리카 동물들을 동네에서 쉽게 본다. 나도 카사네에 갔을 때 라이언킹에 나오는 품바를 마트 앞에서 보고 얼마나 신기해하며 좋아했던지. 우리 동네는 그런 카사네와 동물 체험의 스케일이 달랐다. 코끼리 등 야생동물이 출몰하기 때문에 밖을 걸어다니거나 운전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그 동네에 비해, 내 주변 애들은 오고 또 오는 질리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쫓으면 당장은 돌아가는 시늉이라도 하는 순진형이라 적어도 '무섭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다만, 각각의 이유들로 나의 분노를 유발하는 존재가 여럿 있었을뿐. 그중 압권은 원숭이와 소였고, 그 중심엔 쓰레기가 있었다.


먼저 바분, 우리말로 개코원숭이다. 개체수는 우리 마을에 사람만큼이나 많았던 것 같다. 먹이를 찾아 산에서 도심까지 내려온 멧돼지 출연 소식이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들리는데, 보츠와나의 원숭이들도 그랬다. 어디에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매일 인기척이 없는 때에 맞춰 민가를 찾았고, 조용하고 침착하게 쓰레기통을 샅샅이 뒤져 먹을 것을 찾아냈다. 관사 사람들이 거의 공무원이라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오후 퇴근 시간이 되어야 돌아오기 때문에 마을은 낮동안 적막했고, 원숭이들에게는 이 때가 마트를 쇼핑하는 시간이었다. 그 중 학생들이 아직 학교에 있는 오전 시간대가 최적이었다. 그 일대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거나 하나 둘이기 때문에 원숭이들은 거침없이 자유롭게 활보했다. 하루는 학교에 있다 오전 중에 집에 잠깐 들렀는데 경악을 했다. 유아기 바분 20마리 이상이 어린이집 소풍을 나온 듯 동네를 점령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 집 저 집 쓰레기통에 몇 마리씩 올라서서 그 안에 버려진 봉지들을 하나씩 일일이 열어 확인을 하고 있었고, 몇 마리는 내달리며 놀고 있었다. 나는 정지 상태로 멀찍이 서서 한참동안 그들의 뷔페 타임을 바라보았다.


원숭이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물이 들어있는 봉지를 발견하면 밖으로 끄집어내서 마치 도시락을 까먹듯 한쪽에 앉아 차분히 먹었다. 그걸 보면 다윈의 진화론이 맞겠다 싶기도 했다. 내 허리 높이만 한 키의 육중한 원숭이들은 사람과 정말 흡사했는데, 우리 집 근처에 사는 학생들은 바분이 집에 들어와 냉장고도 털어간다고 했다. 냉장고에 음식이 있음을 아는 것, 손으로 문을 여는 것, 원하는 것을 들고 도망가는 것 등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단지 '동물의 행위'로만 보기엔 정교하지 않은가.


한편, 오후에 사람들이 빠져나간 학교는 바분들의 세상이었다. 지붕을 포함한 학교 전 구역을 뛰어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오고 자기들끼리 놀았다. 정말 동물의 왕국에 내가 침입한 게 맞았다. 어느 날 오후에 학교 운동장을 걷다가 원숭이 한 마리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나도 놀라고 저도 놀라 둘 다 순간 얼음이 됐다. 그러다 상대쪽은 황급히 건물 뒤로 사라졌다.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되는지 바분들은 사람을 보기만 해도 도망을 갔다.


다음은 우리 집 쓰레기 테러의 주범인 소다. 소는 다이아몬드 광산과 함께 보츠와나의 핵심 산업이며, 한우에 비해 덩치도 1.5배는 크다. 그런데 우리 동네 소들은 체격만 크지 살이 없고 뼈에 가죽만 붙어 있는 형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동물들이라고 별 수 있나. 그래서인지 보츠와나에서 몇 번 사먹어본 소고기는 질기고 맛이 없었다. 수도에는 좋은 고기도 팔고 고급 레스토랑들도 많지만, 적어도 내 생활 반경에는 그런 게 없으니 보츠와나의 소고기를 누려보진 못했다. 바베큐를 아프리칸스어(Afrikaans : 네덜란드 식민자들의 언어가 남아공에서 독자적으로 변화된 것)로 브라이(Braai)라고 하는데, 한국분 댁에 초대받아 브라이를 즐기며 소고기 맛을 제대로 느껴본 적은 있었다. 아무튼 내가 육류를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그리움의 대상에 고기까지 포함되었을 것이다.


외양간에서 양질의 사료를 먹고 자라는 한우에 비해 보츠와나의 소는 자연 방목이라 더 건강한 조건인 것 같지만, 사실 우리 동네 애들은 바분처럼 매일 민가를 찾아와 쓰레기통을 뒤졌다. 남의 쓰레기를 만지는 것은 똑같지만 이 둘에 대한 나의 감정은 전혀 달랐다. 간단히 말해, 바분에 대해서는 관조적이었고 소를 향해서는 울분이 치밀었다. 바분들은 쓰레기통을 가볍게 타고 올라가 쓰레기 봉지를 손으로 들어 하나씩 확인한 다음, 별 볼일 없으면 통 안에 다시 넣고 건질 게 있으면 해당 봉지를 들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소는 손이 없기 때문에 머리 전체를 쓰레기통으로 쑥 집어 입으로 쓰레기 봉지를 통째로 들어 올리거나, 쓰레기통을 아예 넘어뜨린 후에 앞발로 쓰레기를 통에서 다 꺼내 헤집어놓았다. 나는 소가 영리하다는 것을 그걸 보고 알았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는 것도. 그러니까 바분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유감이 없지만, 소는 항상 내 마당을 쓰레기 천지로 만들어서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소가 쓰러뜨린 그 무거운 철제 드럼통을 출근할 때 힘겹게 세워 놓고 가면, 퇴근할 때 또 엎어져있는 걸 보게 됐다. 옛날에 소를 농사에 어떻게 이용한 건지 짐작이 갔다. 소는 쟁기와 수레를 끌고 갈 만큼 몸집도 크고 힘이 장사였던 것이다. 이게 계속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쓰레기통이 쓰러져있거나 말거나, 마당에 쓰레기가 굴러다니거나 말거나 신경을 안 쓰게 됐다. 안 그러면 나만 피곤해진다는 것을 힘을 많이 쓴 뒤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쓰레기 수거함은 윗집과 아랫집이 공동으로 쓰는데 그러고 보니 윗집 사람은 한 번도 쓰레기에 대해 신경을 쓴 적도 없고, 넘어진 통을 세운 적도 없었다. 항상 나 혼자 쓰레기를 줍고 통을 세우면서 '저 사람은 왜 저리 무관심할까'했는데 소한테 계속 당해와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기로 했다.


나는 소가 우리 집 마당을 쓰레기로 난장판을 만드는 과정을 멀리서 여러 번 지켜봤다. 덩치가 크니 함부로 다가서지는 못하고 '나가라'고 소리만 빽빽 질렀는데, 소들은 당연히 나를 개의치 않고 하던 '짓'을 계속했다. 소와 눈이 마주쳐 본 적이 있는가. 사람에게 덤비거나 다가오지는 않지만 뭔가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섬뜩했다. 절대로 눈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는 그들의 표정을 나는 자주 목격했다. 그들은 종이도 먹고 비닐봉지도 먹었다. 내가 동영상을 찍어서 보여주기 전까지는 사람들도 소에 관한 이 에피소드들을 믿지 않았다.다. 가끔씩은 자정에도 마당에서 워낭소리가 들렸다. 이미 낮에 다른 애들이 다 쓸고 가서 건질 게 없을 텐데도 일부는 그 시각에 나타나 열심히 부스럭거렸다. '얼마나 먹을 것이 없으면 저럴까' 싶어 소들이 불쌍하기도 했지만, 허구한 날 내 집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대상에 대해 초연해질만큼은 아니었다.

쓰레기 수거차 오는 날이 정해져있다면 그 때 맞춰 쓰레기를 내오면 되겠지만, 수거는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냥 집안에 보관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드럼통에 꽉 맞는 뚜껑이 달려 있었다면 아무리 엎어져 굴러다닌들 쓰레기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테지. 하기야 마당의 수도 파이프도 다 파버리는 소들의 괴력을 생각하면 그 뚜껑도 무용지물이 될 게 뻔했다. 애초에 뚜껑이 없던 것도 그 때문일지도.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지 않는 보츠와나의 시스템은 인간에게 위생상 좋을리 없지만, 먹이를 찾는 동물들에게는 이렇게 살 길이 되어주었다. 내가 살았던 보츠와나의 시골 마을은 훼손되지 않은 대자연(Mother Nature) 속에서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었다. 크게 보면 이 쓰레기 '재활용' 과정도 공존의 한 단면이겠지. '콩 한 쪽도 나눠먹는다는데 쓰레기 공유쯤이야'하는 너스레도 떨어본다. 비록 나는 동물들의 존재와 그들이 주는 영향을 내 주변 사람들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혹시 더 긴 세월을 함께 한다면 그런 불편한 감정들이 희미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익숙함이란 대단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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