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잘 있어요

장례식에 다녀와서

by 다온

엄마의 몸에서 엄마의 혼이 떠났을 때, 나는 그 싸늘한 몸을 보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다.
'아아, 엄마는 이걸 타고 여행을 했던 거야.'
그래서 나 역시 내 몸을, 자동차를 꼼꼼히 정비하듯 소중히 다루게 되었다..(중간 생략).. 연비가 떨어지는 음식은 무엇이고 어떤 부담을 주는지. 내 몸을 자동차라고 생각하자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리고 나는 예전보다 오히려 건강해졌다.


요시모토 바나나 장편소설 '아르헨티나 할머니'의 한 구절이다.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갇히지 않으려 '삶은 여행'이라고 되뇌며 살지만 감정 소비는 끝날 줄 모르고, 죽음은 세상의 순리이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처럼 담담히 삶과 죽음과 여행을 연결해 표현한 것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와 나는 오래전에 블로그에 적어 뒀었다.


보츠와나는 옛날의 우리나라처럼 결혼식과 장례식을 마을의 공동 행사처럼 사람들이 서로 도와 함께 치르고, 하객 또는 조문객들은 그 당사자와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기꺼이 참석하여 축하와 애도를 함께 한다. 우리나라에서 '조세호 씨는 왜 안 왔어요?',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가 대유행이었던 것이 여기서는 안 통한다는 얘기다. 나는 안타깝게도 결혼식은 직접 가보지 못했고, 3년 전에 있었던 우리 교장선생님의 결혼식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설명만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2월 9일, 나는 앞집에 사시는 우리 학교 선생님 두 분과 조문을 가게 되었다. 문화 체험이니 당연히 가보고 싶었지만 혹시 민폐가 될까 봐 '누구신지도 모르는데 제가 가도 되느냐'고 조심스레 물으니, 이 선생님들도 '우리도 지인의 지인쯤 되는 관계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기뻐할 일에 같이 기뻐해 주고, 슬퍼할 일에 같이 슬퍼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인데 그 일들에 '나도 같이 해도 될까'하며 망설인다는 게 이상한 것 같기도 했다. 이건 우리의 축의금, 조의금 문화에 대한 부담감이 만든 사고방식이 아닐까도 싶었다. 물론 여기서도 가까운 사이끼리는 결혼과 장례 때 성의 표시를 한다. 그러나 맨 몸으로 와서 음식만 먹고 가도 눈치 보이거나 서운해하는 게 아니다 보니 편안한 마음으로 다들 참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3, 5, 10만 원으로 상대방과의 관계를 돌이켜볼 일도 없고, 청첩장이 고지서로 전락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고인이 평일에 숨을 거뒀더라도 장례식은 항상 토요일에 열리는데 이는 멀리 사는 사람들도 조문을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추도식은 토요일 아침 일찍 시작되는데, 우리는 그 날 집에서 6시쯤 출발해서 6시 반이 되기 전에 도착했더니 이미 식이 시작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있었다. 보츠와나의 각 마을 중심부에는 둥그렇게 울타리가 쳐지고 앉을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누가 봐도 마을 회의가 열릴 법한 공간이었다. 추도식을 위한 자리 배열도 그 부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마을의 원로로 보이는 분들이 울타리 앞에 빙 둘러앉아 계시고, 관이 그 앞에 놓여 있고 조문객들은 그 반대쪽으로 주욱 앉아있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주위에 서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목사님, 고인의 초등학생 아들, 지인 등 여러 사람의 추도사와 기도가 이어졌다. 우리의 장례식에서는 아무리 호상이라도 '아이고, 아이고'하는 곡소리를 듣게 되지만, 여기서는 모든 과정마다 고인이 다니던 교회에서 나온 찬양대가 신나고 경쾌하게 찬양을 했다. 노래 가사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망각한다면 어디 파티장에 와있다 해도 될 만큼 밝은 분위기였다. 험난한 이생을 마치고 이제 천국으로 가는 그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듯했고, 종교를 떠나서 이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다.

긴 추도식이 끝나면 운구차에 관을 싣고 매장지로 향한다. 여기서 나는 또 크게 놀랐다. 이미 오전 9시가 넘어 햇살이 엄청나게 따가운데도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차를 타고 운구차를 따라 이동했다. 중간에 이탈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차량들이 개미떼처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떠나는 고인은 그동안 값지게 인생을 살아왔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떠나는 중인 그 순간에도 참 행복했으리라.


매장지로 향하는 길은 사막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평소에 큰 도로만 따라다니다 보니 이전에도 와 본일이 없고 앞으로도 다시 올 일없는 우리 지역의 어떤 부분이었다. 햇살의 뜨거움은 절정을 향했고 성가대의 흥겨운 찬양은 쉬지 않았으며 사람들도 모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장례식 중에 카메라를 꺼낸다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냥 가만히 서 있으니, 나와 같이 온 선생님들은 나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잘 찍어서 한국에 보츠와나의 문화를 알려달라며 나를 앞으로 데려다주셨다. 덕분에 자료를 남길 수 있었지만 민망해서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했다.


오전 11시쯤 , 매장 의식이 끝나고 사람들은 고인의 집으로 향했다. 천막이 쳐있고 그 아래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건물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매우 분주했다. 나는 아침도 못 먹고 나왔고 오전 내내 땡볕에 서있느라 진작부터 극심하게 배가 고프고 현기증이 왔다. 12시가 다 되는데도 음식이 서빙되지 않고, 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 속에 내 차례가 도대체 언제 돌아올지도 알 수 없어서, 나는 길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먼저 돌아왔다. 허겁지겁 점심을 챙겨 먹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우리에겐 자녀의 결혼식이 부모의 인맥을, 부모의 장례식이 자녀의 인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는 경우가 많고,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미명하에 피곤을 무릅쓰고 주말이면 품앗이 애경사를 다녀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새 길을 떠나는 누군가에게 아무 이해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인사를 전하는 사람들이 따뜻해 보였고, 또 그 인사를 받고 이 여행의 종지부를 찍는 누군가의 마음도 홀가분할 것 같았다. 보츠와나에는 아직 옛 전통대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많다. 기술문명의 발전에는 속도를 더 낼지언정, 사람 사이의 훈훈함만은 변치 않거나 아주 느리게 식기를 바란다.

동네에서 추도식을 하고 있어요
모두가 함께 매장지로 이동해 애도합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고인의 집에서 마련한 음식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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