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는 웬만하면 애국자가 된다

아프리카에서 대한민국을 생각하다

by 다온

1885년에 영국의 보호령이 된 베추아날란드(The Bechuanaland Protectorate)는 1966년 9월 30일에 독립을 하면서 보츠와나(Republic Of Botswana)가 되었다. 보츠와나는 9월 30일(Independence Day)과 다음날인 10월 1일(Public Holiday)을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한다. 올해의 독립기념일은 월요일이었다. 그 전 주 금요일인 9월 27일 아침 조회 도중에 교장선생님께서 갑자기 나를 앞으로 부르시더니 “보츠와나 독립기념일에 대해 학생들에게 해 줄 말이 있냐 ”고 물으셨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불려 나오기도 했고 독립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몰라서 나는 할 말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보츠와나 독립기념일을 축하합니다’라고 한 마디하고 들어갈 일도 아니었다. "준비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니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신 교장선생님은 "한국의 인디펜던스 데이는 어떻냐"고 물으셨고 나는 “우리도 이 날을 공휴일로 기념하고 대통령의 공식 행사가 있다”라고 말했다. 솔직히 그 짧은 설명이 그 순간에 떠오른 우리 광복절에 대한 생각의 전부였다. 나라의 독립은 엄청난 일이지만 그로부터 몇십 년 뒤에 태어난 나는 그 감동을 다 알지 못한다. 1905년 을사조약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우리 슬픈 역사의 흐름을 나는 학창 시절 국사시간 때 이미 달달 외웠고 최근에 한국사 검정능력시험 1급도 통과한 터라 각 시대별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자세히 말할 수 있다. 일제 시대의 상황들이 영화로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어서 그 역사가 우리에게 낯설지도 않다. 그러나 심적으로 얼마나 가까운지는 다른 문제다. 지식과 공감은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시대의 우리 국민 누구라도 '광복절에 대해 설명하시오' 또는 '한국 사람들은 그 날을 어떻게 기념하나요?'라고 갑자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8월에 있는 유일한 공휴일이라는 것 외에, 역사적인 정의도 머릿속에 준비되어 있을까.


독립기념일 전날에 교장선생님은 나에게 “Happy Independence Eve” 라며 축하 이모티콘이 잔뜩 들어간 메시지를 보내셨다. 일반 가게들에서도 관련된 이벤트를 했다. 단지 공휴일이라 그런 건지, 정말 독립에 대한 환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크게 축하했다. 우리 광복절에 대한 뜨뜻미지근한 나의 태도를 반성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나는 늦게나마 ‘2019년 광복절’이라고 검색해봤고, 올해는 광복 74주년으로 15년 만에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정부 경축행사가 열렸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역사의식이 투철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애국심'하면 어디 가서 빠지는 나라도 아니다. 독립운동, 금 모으기 운동 등 국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 드러나는 사람들의 단결력이나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각종 국제 경기가 열릴 때 하나 되어 응원하는 모습만 봐도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한껏 느끼게 된다. 내가 만난 교민들 중 보츠와나에 가장 오래 거주하신 분은 40년이 됐다고 하셨다.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보츠와나로의 한인 이주역사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주 1세대인 교민들은 거의 모두 사업을 하고 계시고 20~30대인 그 자녀들은 현지의 명문 국제 학교를 나와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게 보통이었고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수월하게 했다. 부모는 사업체 때문에 보츠와나에 남아있고 자녀는 성인이 된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 정착한 경우도 많았다. 교민들의 모임에는 한인회, 한인교회뿐만 아니라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을 받는 한글학교도 있다. 수업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숫자이긴 했지만,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한인교회에 모여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에 대해 배우며 또래 한국인과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는 작지 않아 보였다. 나는 올해 설날과 삼일절을 교민들과 함께 기념하게 됐다. 2월 2일 열린 한인회 설날 행사는 재외동포신문에도 소개되었고, 한인교회에서 열린 3월 9일 민주평통 삼일절 100주년 기념식에는 주남아공 대사님과 대사관 직원들, 남부 아프리카 민주평통 대표도 참석하셔서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애국가를 불렀다. 두 행사 모두 한국 사람들에 둘러싸여 한식을 풍성하게 먹는 시간이어서 나는 여기가 한국인지 아프리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2019.2.2. 한인회 설날 행사
2019.3.9. 삼일절 기념식

5월 13일, 아침 조회가 끝나고 부장 선생님이 나에게 오시더니 오후에 교육부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 도서관을 시찰하러 오신다고 도서관 입구 자투리 공간에 한국 소개 코너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 컬러 인쇄와 인터넷은 당장 불가능했고 내가 가진 건 노트북, 흑백 프린터, 크레용, 검은색 매직뿐이었다. 나는 우선 학교 비품실에서 큰 종이를 가져다가 펼쳐놓고 우리나라의 상징을 떠올려봤다. 태극기, 애국가, 한글, 4계절, 무궁화, 한복, 김치, 설날과 추석 등을 나열할 수 있었고 여기에 우리나라가 보츠와나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인지 위치를 표시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한글 문서의 클립아트에서 쓸만한 이미지를 찾아 인쇄해 크레용으로 색칠했더니 시각적으로도 좀 더 살아났다. 훌륭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오전 내내 집중해서 만들었으니 나는 이 결과물이 유용하게 쓰이기만을 바랐다. 도서관을 지나가던 교사들이 나에게 잘 만들어졌다고 하길래 뿌듯했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이 게시물을 보고 나에게 와서 불명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한국에 대해 아는 척을 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교실 입구에도 한국어 인사말을 적어서 태극기와 함께 붙여 놨는데, 한 번도 시킨 적이 없지만 수업 후에 많은 학생들은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갔다. 나의 한국이 그대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한 번이라도 스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겠다.

2019.5.10. 도서관에 한국 소개 코너를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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