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2] 감정이 터진 자리에서

쓰러지기 전부터, 이미 어딘가 금이 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by 조각 위의 다온

감정이 무너진 건, 단지 취업 탈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며칠 전,

오래전 트라우마가 우연히 다시 열렸고

나는 그걸 또 꺼내지 않고 덮어두기만 했다.


이미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무너졌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눈이 퉁퉁 부어 통증이 하루 넘게 이어질 정도였지만

나는 그걸 또 묻고,

억지로 자소서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다 탈락 통보 한 통을 받았다.

아주 큰 기대를 걸었던 것도 아니었고,

이 정도에 이렇게 반응하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머리 한가운데가 조여 오고,

양치하다가 머리를 숙인 채

일어나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스트레스를 정말 심하게 받았을 때만 올라오던 통증이었다.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번 자극은, 사실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멍하게 만들었다.


내가 어느 지점까지 무너져 있었는지,

그제야 조금씩 실감이 났다.

나는 알았다.

내 안의 경고등이 또 켜졌다는 걸.


'이 정도 일에도 이렇게 무너지다니.'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 맴돌았다.


내가 너무 약한 건 아닐까,

이럴 거면 차라리 한 번에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무심하게 스쳐갔다.


그 순간, 알게 됐다.

아무렇지 않게 지내온 줄 알았지만

내 안의 감정들은

단 한 번도 제대로 풀린 적이 없었다.

나는 그걸,

지금까지도 무심히 껴안은 채 살아왔던 거였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쓰러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나는,

그 말처럼 조용히 쓰러져버린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아주 큰 충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너졌다는 건,

아마 그전부터 마음 어딘가에

천천히 금이 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오래도록.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


그러다 작은 충격하나에도

마음이 조용히, 완전히 내려앉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이 무너진 자리에

나는 잠시 멈춰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시간 속에서야

비로소 내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을

하나씩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무너진 마음 사이로

오래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 감정들은

너무 조용해서,

그동안 내가 듣지 못했던 목소리들이었고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이제는 나도 잊은 줄 알았던 마음들이었다.


나는 그제야,

아주 천천히,

그 마음들을 글로 꺼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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