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1-3] 마음은 남고, 말은 사라졌다

현실이 마음을 밀어냈다

by 조각 위의 다온

땀이 맺히는 더운 공기 속을 지나

상담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선생님이 반갑게 인사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다온 씨."


나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저번에 뵌 게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선생님은 달력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거의 20일 만이에요."


그제야 알았다.

상담을 받지 않은 지,

그리고 집 밖을 나서지 않은 지

벌써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걸.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익숙한 질문이었지만,

그 순간 눈물이 흘렀다.

말문이 막히는 것도 잠시,

나는 겨우 목소리를 꺼냈다.


트라우마가 다시 올라왔고,

취업 준비도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며칠 전,

새벽까지 울다 지쳐 잠들고

자소서를 붙잡아 보려 했지만

몸도 마음도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겨우 다시 시작했던 날,

불합격 메일이 돌아왔고

그 순간, 머리를 조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나는 지금,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걸.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다온 씨를 제일 힘들게 하는 건 뭐예요?"


하지만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무엇 하나로 좁히기엔,

마음속에 쌓인 게 너무 많았다.


게다가 상담은 이제 두 번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 꺼내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그 감정들을 글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글을 써보니까 어때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좋아요. 재미있기도 하고요.

흐릿했던 기억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느낌이에요."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지만

그 시간을 지나오며

아주 조금은 나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사실... 오늘 상담받는 날까지만 쓰자고

혼자 기한을 정해뒀었어요."


현실적인 취업 걱정이 자꾸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지금 글 쓰는 게 도움이 된다면,

그 시간을 더 가져도 괜찮아요."


하지만 나는 또 이성적인 말로 답했다.

"그래도... 현실이 불안해서요."


그 순간, 깨달았다.

지금 이 상담 안에서

나는 '이성'이었고,

선생님은 '감정'이었다.


감정이가 조심스럽게 마음을 꺼내면,

이성이가 그 위에 현실을 덮었다.

그렇게 나는 또, 감정을 밀어냈다.




상담을 마치며, 선생님은 조용히 말했다.


"8월까지 취업이 안 되더라도,

잠시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도 괜찮아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다시 원하던 길로 가면 돼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내 마음 한구석엔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벌써 서른인데...

지금도 신입으로 전환하기 어렵다는데...

내년으로 미뤄도 괜찮을까?'


나는 여전히,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붙잡고 있던 건 몸이었을까, 마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