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앞에, 내가 살아온 시간이 가로막을 때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

by 조각 위의 다온

이력서를 쓸 때마다

손이 자꾸 머뭇거린다.


경험을 정리하려다 보면

뭘 적고, 뭘 빼야 하지.

이건 넣어도 되나, 이건 말하면 마이너스일까.


내가 살아낸 시간들을 하나씩 펼쳐 보이기보다,

어디까지 감춰야 덜 불리할까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어떤 경험은 '자격증이 없으니까',

어떤 일은 '너무 짧으니까',

어떤 시기는 '방향이 다르니까'.


그렇게 하나둘 빠져나간다.


마치 없었던 시간처럼.



그런데 나는,

그 시간 안에서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일만 하며 버텨야 했다.


원래는 이런 방향이 아니었는데,

처음부터 내가 원하던 길은 아니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버린 시절이 있었다.


그건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길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살아남기 위해 연결된 시간들이었다.


원하는 삶을 살기보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견디는 삶을 택해야 했던 날들.


그걸 '선택'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누군가는 그걸

흩어진 경력이라 말했지만,


나에겐 모두

살아남기 위한 일상이었다.


방법은 달랐지만

늘 최선을 다했고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후회도, 아쉬움도 남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는 는 것.

길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

그 상황에서 나름의 최선을 선택하고 있었다는 것.



"왜 이렇게 직무가 일정하지 않죠?"

"이건 왜 오래 하지 않으셨어요?"

"이쪽 계열이 처음이신가요?"


그들은 내가 어디까지 참고 버텼는지보다는

왜 그만뒀는지를 먼저 궁금해했다.


그럴수록 나는

자꾸 작아진다.


그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어쩌면 꼭 그 일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었는데

그건 설명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내 시간의 진심을 감춰야 하는 사람이 된다.


갈피 없는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목적지 없이도

걸어가야만 했던 날들이었다.



요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왜 이걸 설명해야 하지?

왜 내 이야기는

늘 설득처럼 들려야 하지?



누군가는 그것들을

갈피 없는 경력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생존의 기록이었다.


멈추지 않았고,

도망친 적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매 순간을 감당했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그건 실패가 아니었다.

나는 그 시간을

충분히 살아냈다.



그러니까 지금,

조금 늦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다시 방향을 틀어보려는 거였다.


그런데―


그 길 앞에서

또다시 내가 감당해 온 것들이

걸림돌처럼 작용할 때,


나는 문득

내가 어디쯤 와 있는 건지

다시 흔들린다.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또다시,

나는 멈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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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용기는 없어서, 사는 중>
의 한 페이지가 될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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