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이유

by 양승언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고, 나는 하나님을 보아야만 믿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믿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공원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공원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말하지, 공원에 나무 한 그루가 있는 것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즉 믿는다는 표현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둘째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공기가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그럼 공기가 보이는가?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공기가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날 핸드폰을 삶의 필수품이 되었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은 전파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즉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저명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실증주의자가 아니다. 실증주의는 인간이 관찰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개념은 과학의 옹호를 받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관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정당한 방법으로 확증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분명 틀린 말이다." _ 아인슈타인


삶의 소중한 것들을 떠올려보라. 사랑, 우정, 명예 등 우리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오히려 보이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가장 불쌍한 자일지 모른다.


셋째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실존인물이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시면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다.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앉은뱅이를 고치시고,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 명을 먹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스스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그런 다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자신이 행한 행동을 보고 믿으라고 하셨다.

이에 대해 문학가인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 불과한 한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면, 그는 위대한 성인으로서의 인격을 갖춘 자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삶은 달걀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은 수준의 미치광이거나 혹은 마귀일 것입니다. 당신은 선택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미치광이, 혹은 더 나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를 미친 사람 정도로 치부하거나, 마귀라고 부르며 침을 뱉거나, 그 발 앞에 엎드려 주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성인이라고 선심 쓰는 듯한 어리석은 생각은 접어 두십시오. 그는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왜 나타나지 않냐"고 "하나님이 눈 앞에 나타나면 믿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이 땅에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다. 하나님을 실제로 보았지만, 믿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보지 않고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못해서 보지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믿고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_ 요한복음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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