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
2022년 11월 30일 무료 베타버전으로 출시된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는 단 두 달 만에 사용자가 1억 명에 도달하면서 '역사상 가장 빠르게 보급된 기술'이 되었다(페이스북이 3년 2개월, 유튜브는 2년 10개월이 걸렸다). <네이처>는 '2023년 과학계 최고의 인물 10명' 중 1명(?)으로 챗GPT를 꼽을 정도로 챗GPT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기대와 두려움
기술혁신은 항상 기대와 두려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가져다 준다. 발전된 기술이 가져올 유익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변화에 도태되진 않을까? 자신이 쓸모 없어지진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다. 한쪽에서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직업군들을 나열하고 있다.
인공지능(AI)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무엇일까? 인공지능이란 하나의 기술일 수도 있고, 특정 능력일 수도 있고, 보다 넓은 분야일 수도 있다. 인공지능에 대해 단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 보다는,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구현하고자 하는 지에 따라 AI를 정의할 수 있다.
1. 인간처럼 행동하는 능력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인간의 행동 양식을 충실히 구현하는 것을 중시한다. (예, 인간의 운전행동을 모방한 자율주행차, 인간의 청소행동을 모방한 가정용 로봇, 이제 식당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서빙로봇 등)
2. 인간처럼 사고하는 능력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 인간의 인지 과정을 모방하여 고객의 질문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챗봇 등)
3. 인간을 뛰어넘어 사고하는 능력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 인공지능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사고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 고급 데이터 분석 및 예측 시스템, 금융 시장 분석 및 투자 전략 수립 등) 수학적 알고리즘을 통해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인공지능 시스템 (체스, 바둑 등의 게임에서 최적의 전략을 수립하는 인공지능, 알파고 등)
4. 인간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능력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인공지능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 산업용 로봇과 고속 무인 드론 등)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인간만큼, 혹은 더 뛰어나게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그 목표를 얼마나 구현할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머지않아 인간에 가까운, 때로는 인간을 넘어선 인공지능이 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인공지능이 실제로 사고를 하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며, 과학자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을 능가할 존재가 될 것인가?
인공지능을 소재한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보육과 가사를 위한 인공지능 로봇이 나온다. 이 로봇은 단순히 청소를 하거나 음식을 하는 것을 너머, 아이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상담까지 하게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족들이 엄마보다 인공지능 로봇을 더 좋아하게 된다. 비록 드라마의 설정이기는 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궁극적인 의구심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인간보다 나은 존재가 도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지능(AI), '인간다움'을 묻다.
누군가 챗GPT에게 "좌절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대답은 예상한 대로다. 챗GPT가 제공하는 지식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사랑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상처를 얼마나 아픈지 알지 못할 것이고, 상처 입은 사람을 묵묵히 안아주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진정한 치유는 침묵 속에 전해지는 진심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인공지능은 때로는 인간보다 더 설명을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경험한) 하나님, 오늘 내 삶 가운데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인공지능은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하는 일을 많은 부분을 대체하겠지만, 오늘 내가 살아가는 경험만큼은 대체하지 못할 것이고, 이 경험들이 모여 인간다움을 구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왜 인공지능의 도래에 당혹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인간다움을 상실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이 그만큼 기계화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무엇을 잘 하느냐, 즉 기능과 외적 능력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오늘날 스펙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기능과 능력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다 보니,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난 인공지능의 등장이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인가를 얼마나 빨리 효율적으로 수행했는지에 있다면,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분명 나은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의 가치는 그가 가진 온기와 향기, 마음 씀씀이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염려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라질 직업들이 아니라, 잃어버리고 있는 "인간다움"이 아닐까 한다.
신앙은 어떨까?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되어지는 신앙이 아니라, 지적이고 피상적인 신앙에서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분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맛보길 소망해 본다.
"현미경을 통해 사랑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들 사이에서 매일 일어나는, 사람들이 주고 받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행동들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_ 리디안 브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