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큐티, 10월 1일
10월 1일(화) 아하스의 배교
열왕기하 16장 1~20절
유다 왕 아하스의 죄 1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십칠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2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3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4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하는 아하스 5이 때에 아람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6당시에 아람의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주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7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8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9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점령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성전을 개조하고 더럽히는 아하스 10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12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15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 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16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17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그것을 두며 18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19아하스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묵상하기
1. 북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이 남 유다를 공격하자, 아하스 왕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5~9절)
2. 다메섹에서 앗수르 왕을 만난 아하스 왕은 무엇을 지시하고 행했는가? (10~18절)
3. 국가적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 왕을 아버지라 부르며 애걸하는 아하스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고난이나 역경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의지하고 바라보는가? 지금 당신이 직면한 문제들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길잡이
요담의 아들 아하스는 20살에 남 유다의 왕이 되어 16년 동안 다스렸다. 아하스는 남 유다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북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어간 길로 행했다. 그는 므낫세와 더불어 남 유다 역사상 최악의 왕이었다. 이 두 사람은 유다의 왕들 중에 유일하게 자기 자식을 몰렉에게 번제로 받쳤다(인간 번제는 이방 신을 섬기는 나라에서 큰 국가적 위기를 모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다의 왕들 중 처음으로 산당에서 우상에게 경배한 왕이기도 했다(1~4절).
북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이 남 유다를 공격해 왔는데, 아하스는 이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당시 북 이스라엘과 아람은 앗수르를 반역했는데, 남 유다가 반역에 동참하지 않자 공격한 것이었다. 그러자 아하사는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의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금과 은을 모두 꺼내어 선물을 보내며,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 왕을 자신의 왕이며 아버지라고 부르며 애걸했다. 아하스의 요청을 받은 앗수르 왕의 입장에서는 일거이득이었다. 반역한 아람과 북 이스라엘을 공격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다가 자신들을 도와달라는 명분까지 세워주며 많은 재물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앗수르 군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을 함락시키고 주민들을 포로로 잡아 갔고 아람 왕을 죽였다(5~9절).
비록 아하스는 눈 앞에 위기에서는 모면했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이었다. 아하스는 앗수르의 왕을 아버지라 부르며 도움을 청했지만, 훗날 앗수르는 아하스와 유다 백성들에게 큰 수치와 수모를 안기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아하스에게 보내 하나님이 구원해 줄 것이라는 예언을 주셨지만, 아하스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앗수르 왕을 의지하고 따랐다. 물론 하나님은 유다를 구원하셨지만, 이는 아하스 왕 때문이 아니라 유다 백성을 긍휼히 여기고 다윗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하스의 우상숭배 행위는 그가 앗수르 왕을 만나러 다메섹에 방문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그는 그곳에서 앗수르 사람들의 신의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형과 도본을 그려서 예루살렘에 있는 우리야 제사장에게 보냈다. 우리야는 왕이 보내온 도본대로 제단을 만들었고, 아하스는 다메섹에서 돌아온 후 이 제단에서 직접 제물들을 바쳤다. 그는 여호와의 제단을 우상을 위한 제단으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제사장 역할을 자처한 것이었다. 앗수르의 승리를 보고, 그들이 섬기는 신을 왕수르 왕처럼 섬기기로 한 것이다. 또한 아하스 왕은 여호와의 놋 제단은 버리지 않고 보관하게 했고, “주께 여쭐 일에만” 놋 제단을 쓰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묻겠다는 것이 아니라, 점을 칠 때만 사용하겠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하스는 종교 예식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도구들을 없애기도 하고 개조하기도 했다. 그는 철저한 다신주의자였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경외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주의 백성을 다스려야 할 왕이 이처럼 여호와를 떠났으니, 백성들의 영적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나라의 미래도 먹구름이 끼였다. 아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는데, 히스기야는 어떻게 영적으로 부패하고 정치사회적으로 몰락해가는 유다를 바로 세울지를 앞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10~20절).
국가적 위기 앞에서 아하스는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 왕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 앞에서 무엇을 의지하고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는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볼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
인생의 고난과 역경 앞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할 줄 아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맛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삶 속으로
2015년 제작되어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한 <암살>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친일파 암살 작전을 소재로 삼은 영화다. 이는 1932년 3월에 실제로 있었던, 조선 총독인 일본 육군 대장 우가키 가즈시게 장군의 암살작전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에는 당시를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이정재씨가 연기했던 염석진이라는 인물이다.
극중 인물인 염석진은 청년시절부터 독립운동을 해 왔던 사람이었고, 대한민국 경무국 대장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염석진은 중간에 변절하고 자기 동료들을 배신한다. 앞에서는 독립운동가인 것처럼 활동하지만 뒤로는 일본에 독립운동가의 작전과 명단을 넘기는 일본의 밀정 노릇을 한 것이다. 그로 인해 독립군의 작전은 차질을 빚게 되고, 많은 희생을 겪어야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염석진은 여주인공인 전지현 씨가 맡았던 독립운동가 안옥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 때 안옥윤은 염석진에게 "왜 동료들을 팔았냐?"고 묻는다. 한 때 나라를 위해 함께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이였기에 안타까움에, 그리고 죽어간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원망스러움에 이 질문을 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염석진은 짧게, 하지만 정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갈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