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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폴리 아 되, 나는 누구인가?

영화 <조커: 폴리 아 되>를 통해 본 기독교적 인간관

by 양승언

<조커: 폴리 아 되>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전작인 <조커>는 뛰어난 코미디언을 꿈꾸던 착하고 소심한 아서 플렉이 어떻게 희대의 악당인 조커가 되는지를 다루었다면, 후편인 <조커: 폴리 아 되>는 아서 플렉과 조커 중 누가 진정한 자아인지를 다룬다.


조커가 수감된 수용소의 관리자인 재키는 아서를 추악한 범죄자로 본다. 그에게 아서는 조커 자체이며 죄인일 뿐이며 경멸의 대상이다. 변호사 매리언은 또다른 인격인 조커가 범죄를 일으킨 주체라고 본다. 즉 조커는 학대를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 낸 가상의 자아이며, 아서만이 진정한 자아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매리언에게 아서는 불쌍한 존재다. 반면 리 퀸젤은 조카가 본모습이며 아서가 그림자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이자 강한 영감을 주는 존재이며 어떠한 격식도 질서도 무시한 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존재인 조커가 진정한 자아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리 퀸젤에게 아서는 무한한 존경과 추종을 받는 존재다. 그럼 아서 플렉은 자신을 어떤 존재로 볼까? 그에게는 착하고 소심한 아서라는 자아도, 희당의 악당인 조커라는 자아도 모두 자신임을 인정한다. 다만 아서 플렉으로도, 조커로도 살아갈 수 없는 현실과 한계에 직면해 있을 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안에는 조커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악당인 조커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커가 본모습이라고 하기엔 아서라는 자아도 분명 존재한다. 리처드 할러데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내 딜레마다. 나는 먼지이자 재이고, 연약하고 제멋대로이며, 예정된 반응을 보이는 행동의 집합체이다. 두려움으로 가득 하고 욕구로 둘러싸여 있고, 먼지의 전형이며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 또 다른 것이 있다. 나는 먼지일지 모르나 걱정하는 먼지이며, 꿈꾸는 먼지이며, 변모와 예비된 영광, 준비된 운명, 언젠가 내 것이 될 유산에 대한 이상한 예감을 가지고 있는 먼지이다. 이렇게 나의 삶은 재와 영광, 나약함과 변모의 고통스러운 변증법으로 펼쳐져 있다. 나는 내 자신에게도 수수께끼이며, 짜증나는 불가사의다. 먼지와 영광이라고 하는 이 이상한 이중성을 가진 존재이다.”


성경은 인간이 창조와 타락의 산물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따라서 인간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선이 존재한다. 다만 인간은 죄를 짓고 타락했다. 그 결과 인간 내면에 악이 들어오게 되었다. 즉 인간 내면에는 창조의 산물인 선과 타락의 산물인 악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아픈 자를 위해 병원을 고안하고 지혜를 얻기 위해 대학을 설립하고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세우면서도, 동시에 고문실과 포로수용소와 핵 무기고를 발명하는 것이다. 고결하면서 동시에 저열하고, 합리적인 동시에 비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동시에 비도덕적이며, 창조적이며 동시에 파괴적이며, 사랑하는 동시에 이기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자기긍정과 자기부정을 위해 부름 받았다. 우리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함을 인정하고, 우리 안에 있는 창조의 산물에 대해선 자기 긍정하며 타락의 산물에 대해선 자기 부정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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