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큐티, 10월 17일
10월 17일(목) 아, 예루살렘
예레미야애가 1장 1~11절
전의 영광과 지금의 비참함 1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2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끌려간 백성과 빈 성읍 3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4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읍 5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 7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죄 고백, 고통 토로, 구원 호소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9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0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묵상하기
1. 예레미야는 “슬프다”라는 말로 노래를 시작한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슬픔에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 (1~7절)
2. 슬픔에 빠져 있던 예레미야는 소망을 발견한다. 그가 발견한 소망은 무엇이며,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8~11절)
3. 큰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기도의 자리는 우리의 슬픔을 소망으로 바꾼다. 당신은 어려움 가운데 기도함으로 소망을 발견한 경험이 있는가? 그 때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이었는가?
길잡이
예레미야는 “슬프다”라는 말로 노래를 시작한다. 그럼 무엇이 그를 이토록 슬프게 만들었는가? 열방 중의 으뜸이었고 나라들 중 여왕이었던 예루살렘이 과부가 되었고(과부는 외로움과 취약함의 상징이다), 종의 신분으로 몰락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밤에 슬피 울고 있는데(밤은 하루 중 가장 슬픈 시간이다) 위로할 사람도 없고 친구들도 다 떠나 버렸다(1~2절).
남자들은 전쟁에서 희생되었고 살아남은 자들도 포로로 잡혀갔다. 이제 예루살렘 성전은 텅 비었으며, 성전을 찾는 순례자들의 발길로 이제 끊겼다. 예배의 기쁨을 잃어버렸고, 더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로 인해 마음에는 슬픔만이 가득하다(3~4절).
예루살렘의 대적들과 원수들은 번성하고 있으며, 예루살렘을 누려야 할 평안을 오히려 그들이 누리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예루살렘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기 때문이었다.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처럼 예루살렘은 큰 슬픔에 빠졌으며, 도망치는 사슴처럼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도망가고 말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예루살렘의 영광이 사라지고 이제 대적들의 조롱만이 들려오고 있었다(5~7절).
그럼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 슬픔에 빠진 예레미야는 기도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에게 임한 환란을 살펴보시고 원수들의 교만을 보시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는 대적들을 판단해 달라고 요청한다. 다시 한번 자신의 비참함을 돌봐 달라고 간청함으로 기도를 마무리 짓는다(8~11절).
기도의 자리는 우리의 슬픔을 소망으로 바꾼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슬픔이 변해 소망이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이었는가?
기도
어떤 형편 중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아는, 그래서 슬픔 중에도 소망을 발견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삶 속으로
강영우 박사는 경기도에서 태어나 13세에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아 실명을 하게 되었고, 같은 해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자 남동생은 철물점에, 아홉 살 난 여동생은 고아원에, 그리고 본인은 맹인재활센터에 보내졌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고 믿음 가운데 소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진학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정상인도 쉽지 않은 미국 유학 길에 올라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 중에서는 미국 연방정부의 최고위직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까지 발탁되어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의 실명을 통해 하나님은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역사들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전쟁이 휩쓸고 가 폐허가 된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두 눈도 부모도 누나 없어 고아가 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분입니다. 실명으로 인해 공부 외에는 달리 길이 없어 열심히 공부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보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실명으로 인해 책을 쓸 수 있었고, 이 책으로 수많은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너무나 만남의 축복을 누렸고, 이를 통해 봉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격려하는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두 눈을 잃고 저는 한 평생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장애임에도'라는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저는 장애임에도가 아니라 장해를 통해서, 장애 덕분에라고 말합니다"
실명으로 인해 눈물과 슬픔의 날들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바라볼 수 있었고, 그 선하신 계획을 신뢰함으로 남다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슬픔 중에도 소망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