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승언 Dec 09. 2019

기독교는 비과학적이예요

이 글은 기독교인과 기독교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분들을 위해 쓴 글입니다. 읽기 전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종교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 아닌가요? 성경에는 너무 비과학적인 이야기가 많아요.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않는 이야기를 어떻게 믿죠? 종교는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나, 미신이 난무하던 시대에나 통용되던 이야기 아닌가요. 앞으로 과학이 더욱 발달하면 아무도 종교를 믿지 않을 거예요. 


현대사회는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달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학기술의 발달은 결국 종교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이 기독교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까요?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반드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과학과 신앙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종교 사상가들과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갈등이 존재해 왔고, 이런 갈등은 앞으로도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을 지키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학문에 전념하는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학이 발달할수록 종교가 쇠퇴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종교를 갖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전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총지휘자인 프랜시스 콜린스는 원래는 무신론자였지만 게놈 연구과정에서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언어를 배우는 데 세계 6개국, 2천 명의 과학자가, 10년을 꼬박 밤낮을 쉬지 않고 매달렸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고작 우리 몸을 창조할 때 쓰였던 책의 첫 페이지만 보았을 뿐입니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영원한 우주에 대한 과학적 믿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우주는 항상 존재해 왔기 때문에, '창조'는 최첨단 지식과는 공존할 수 없는 신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우주에 어떤 시작점, 즉 빅뱅이 있었다는 주장이 점차 많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공인되었습니다. 우주의 시작점이 있다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기독교의 창조교리와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과학과 신앙이 반드시 대립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현대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우주 속에서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흔적을 발견해 가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과학적 방법으로 모든 것을 설명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 과학적 방법은 자연현상의 원인을 밝히고 설명하는데 유용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과학적 방법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우정, 꿈과 이상을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윤리나 정의의 개념을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인간이 나무나 돌덩이보다 존귀하다는 사실을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노벨 의학상을 받은 피터 메더워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학이 대답할 수 없고, 또 아무리 과학이 진보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물론 과학적 방식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노력도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들을 신경화학적 작용의 결과로 보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떨까요? 영국의 이론물리학자로 저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을지 결정할 때,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뇌의 작용으로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선택은 개인이 가진 유전자 정보와, 그가 자란 환경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결정론은 삶과 사회윤리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유전자의 산물이라면, 개인의 행동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우정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이 사실을 과학적 방식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존재함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진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이 행하시는 일 역시 과학적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철학자 엘빈 플란팅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로등 아래가 다른 곳보다 밝으니 잃어버린 자동차 열쇠를 꼭 그곳에서 찾겠다고 고집을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열쇠를 찾기 힘드니까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만 찾겠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한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믿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는 주장 뒤에는 "기적을 행하는 신적 존재는 없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전제한다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기적을 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려고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학의 법칙(중력)에 의하면 사과가 땅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무에 올라가서 사과를 땁니다. 그럼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과학의 법칙이 깨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럼 과학의 법칙과는 다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사과를 지배하는 과학의 법칙을 넘어선 누군가가 개입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들어와 개입할 때 일어나는 것으로, 이를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초자연적이라는 말은 자연을 거스르고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질서라는 의미입니다. 


과학의 법칙은 이상적 조건 아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기술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다른 요인의 개입이 전무하다는 가정하에 작동하는 것이 과학의 법칙입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중력의 법칙은 어떤 외적 존재의 개입이 없을 때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인 것입니다. 따라서 과학과 기적은 서로 상충되지 않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학은 신의 자연개입 가능성 문제에 대해 어떤 판정도 내릴 수 없습니다. 과학은 신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과학자로서 이 문제에 왈가왈부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이런 기적들을 기록해 두었을까요? 주전자에 물이 끓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누군가 왜 물이 끓는지를 물었을 때 다양한 설명이 가능합니다. 열에너지가 어떻게 운동에너지로 바뀌어서 물이 끓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는 답변도 가능합니다. 전자가 과학적 답변이라면, 후자는 인격적 답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진술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은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인격적 진술입니다. 즉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기적을 자연질서의 '일시정지'로 여깁니다. 자연을 지배하는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현상을 기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적을 자연 질서를 '회복하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애초에 하나님은 질병과 굶주림, 죽음이 없는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죄를 범하였고 이 땅에는 악과 고통이 생겨났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고통과 아픔, 죽음과 파멸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로 인해 파괴된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이 재창조하실 세상의 모습이 어떤 지를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언젠가 예수님은 모든 아픔과 슬픔, 눈물과 죽음이 없는 세상을 만드실 것이며,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행했던 기적은 앞으로 그가 행하실 일들의 예고편인 것입니다.


과학과 신앙은 결코 대립하지 않습니다. 신앙을 지키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학문에 전념하는 과학자들이 많이 존재하며, 무신론자였다가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 신앙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늘날 과학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지만 여전히 종교는 쇠퇴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적 사고와 방법론은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과학이 자연세계를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훌륭한 도구가 되지만, 인간세계의 모든 것을 과학적 사고와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시도는 인간의 사상을 제약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이 행하시는 역시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부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_ 이사야 35:5~6


작가의 이전글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지옥에 보내는 신이 어디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