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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언 Feb 01. 2020

마스크는 잘 착용하고 있나요?


1347년 흑해에서 출발한 12척의 제노바 상선이 시칠리아 메시나 항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선단의 선원들은 대부분 사망한 상태였으며, 생존자 역시 고통 가운데 죽어가고 있었다. 시칠리아 당국은 해당 선단을 즉시 항구에서 떠나도록 명령했으나, 그들이 떠난 직후 주민들 역시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죽어갔다. 그렇게 유럽에 상륙한 페스트(훅사병)은 하루에 8km를 퍼져나갔고, 불과 3~4년만에 북극까지 전파되고 유럽 인구의 3분의 1를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온 가족이, 한 마을이 순식간에 사라지가 하면, 환자들을 돌보던 의사들과 시체를 처리하던 장의사들도 죽어갔다. 이 때부터 의사들이 코부위에 방향물질을 넣은 새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창궐하는 페스트에 정부는 속수무책이었고, 수많은 돌팔이 의사와 가짜 치료약, 주술사들이 범람했다. 로마 카톨릭도 페스트를 하나님의 징계로 보고, 페스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한다며 공로와 헌금을 강조했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결국 성직자들의 권위는 땅에 추락하고 말았고, 그렇게 페스트는 전대미문의 악몽이 되어 전 유럽을 휩쓸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가 쓴 <페스트>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전염병이 만든 세상의 부조리와, 이에 무릎 꿇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무기력했던 정부와 달리, 의료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페스트와 싸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의사 리유와 기자 랑베트의 대화가 나온다. 의사 리유는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럼 성실성이란 대체 뭐지요?"라고 랑베르가 되묻자, 리유는 이렇게 답한다.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식당과 카페를 비롯해서 가는 곳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무실에서도 사용할 마스크를 주문했다고 한다. 그럼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병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남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내가 병에 걸렸을 경우 옮기지 않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분명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의학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성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전염병처럼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는 많은 문제들의 대안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성실에 있지는 않을까? 오늘 하루 다른 사람을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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