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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진저 - 누가복음 11장 37~54절

매일성경, 3월 15일

by 양승언

3월 15일(토) 화 있을진저

누가복음 11장 37~54절


바리새인의 정결법 37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바리새인의 외식 39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42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외식하는 자에게 임할 화 45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비난 53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묵상하기

1. 바리새인 중 한 명이 점심식사에 예수님을 초대했다. 집에 들어가셨을 때 어떤 일이 있었으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대해 어떻게 지적하였는가? (37~44절)


2. 예수님이 바리새인에게 하신 말씀을 한 율법교사가 듣고 있었다.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이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답하셨는가? (45~52절)


3. 바리새인에게 겉은 깨끗하나 속은 더러운 잔과 대접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당신은 신앙의 외적 모습과 내적 모습이 균형이 잡혀 있는가? 혹시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길잡이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의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자고 초청했다. 바리새인들은 식사하기 전에 항상 손을 씻는데, 예수님은 씻지 않고 식탁에 앉으셨다. 당시 손을 씻는 것은 위생상의 문제도 있지만, 정결 예식의 일환이었다. 부정한 것을 만진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부정하게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만 율법은 제사장만 손을 씻도록 명했는데,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구전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적용했다(37~38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더러운 잔과 대접에 비유하셨다. 겉으로는 정결하고 경건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부정하고 추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했지만, 겉만 중시하고 속을 무시함으로 외형과 내면 모두 창조하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님은 외면 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정결해 지길 원하신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임한 화를 선포하셨다. “화 있을진저”는 슬픔과 탄식, 사랑과 안타까움이 섞인 외침이다. 그럼 왜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임했는가? 예수님은 몇 가지 예를 제시한다. (1)식물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버렸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취지를 무시한 채 조항에만 치중했다. 십일조를 얼마나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지만, 정작 십일조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2)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는 것과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을 즐겨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주는 인기, 명예를 탐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인정은 외면하고 있었다. (3)바리새인들은 평토장한 무덤 같았다. 평토당한 무덤은 표시가 되지 않는 무덤을 뜻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곳에 무덤이 있는 줄도 모르고 밟고 지나간다. 그들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에는 부정한 것들로 가득 차 영적으로 죽은 상태와 다름 없었다(39~44절).

예수님의 말을 들은 율법교사는 자신들을 모욕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율법교사들에게 임한 세 가지 화를 선포하셨다. (1)율법교사들은 사람들에게만 어려운 짐을 지우고 본인들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도 지키기 어려운 율법을 사람들에게 행하도록 요구했다. (2)율법교사들은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의 만행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창세기에 기록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역대기하에 기록된 순교자 사가랴의 피까지 이 세대가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3)율법교사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45~52절).

예수님이 식사를 마치고 바리새인의 집에서 나오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항의하며 여러 가지를 따져 물었다. 물론 이들의 질문은 악의적으로 예수님을 비난할 근거를 찾기 위해서다(53~54절).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외적 모습을 중시하면서도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잃어버렸다. 예수님은 둘 다 놓쳐선 안된다고 강조하신다. 당신은 신앙의 외적 모습과 내적 모습이 균형이 잡혀 있는가? 혹시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기도

우리 안에 위선적인 모습이 없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삶속으로

인디언들은 넓은 광야에서 말을 타고 열심히 달리다가 어느 순간에는 말에서 내려 자기가 달려온 뒤쪽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한참을 서있다고 한다. 말이 너무 힘들어 할까 봐 쉬는 것도, 물론 자기가 너무 지쳐서도 아니다. 너무 빨리 달려와 자신의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까 봐 잠시 멈추어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는 것이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말과 행동, 생각과 삶이 일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따라서 때로는 멈추어 서서 자신은 생각과 삶,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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