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토)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
누가복음 14장 1~14절
안식일의 치유 1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3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초대받은 자들에게 7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초대한 자에게 12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묵상하기
1. 바리새인의 지도자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그곳에 누가 있었으며, 어떤 논쟁이 있었는가? (1~6절)
2. 예수님은 잔치의 비유를 가르치셨다. 비유의 내용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주고자 하신 교훈은 무엇인가? (7~14절)
3.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당신은 이웃에게 얼마나 베푸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을 확신함으로 오늘 실천할 일은 무엇인가?
길잡이
이전에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 받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바리새인의 지도자가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 앞에 수종병 든 사람이 있었다. 수종병은 배와 다리 등 신체 부위에 체액이 고여 심하게 부풀어 오르는 질병으로, 당시 사람들은 완치할 수 없는 질병이었기에 신의 형벌로 여겼다. 아마도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데려다 놓은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보고 율법 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 지, 그렇지 않은 지 물었다. 그런데 그들은 답하지 못했다. 그들의 전통에 의하면 긴급한 상황에는 안식일에도 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쟁점은 이 환자를 고치는 것이 긴급한 상황인가라는 점이다. 결국 긴급하지 않다고 답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서 잠잠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 환자를 고쳐 집으로 보내셨다. 그런 다은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에게 다시 질문하셨다. 만일 그들의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다면 안식이라 해도 끌어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들은 아무 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율법의 형식에만 매여 있을 뿐 율법의 참된 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다(1~6절).
예수님은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경쟁하고 있었다. 이를 본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처음 두 가지는 초대 받은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고, 다음 두 가지는 잔치를 베푼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1)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마라. 왜냐하면 나중에 더 높은 사람이 들어오면 자리를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2)잔치에 초대를 받았다면 차라리 끝자리에 앉아라. 주인이 보고 더 합당한 자리로 옮길 것이며, 사람들 앞에서 존귀함을 인정 받게 될 것이다.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것은 주권자 되신 하나님의 몫이므로 늘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높이는 자를 낮추시고 스스로 낮추는 자를 높일 것이다.
(3)누군가를 초청할 때 멋이나 형제,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만 초청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하늘의 상급이 없다. (4)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초대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초청해 대접하면 그들은 갚을 수 없을 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그의 선행을 보고 부활할 때 갚을 것이기 때문이다(7~14절).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잔치에 초대하라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당신은 이웃에게 얼마나 베푸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을 확신함으로 오늘 실천할 일은 무엇인가?
기도
늘 가난한 자와 연약한 자에게 우리의 시선이 맞추어지게 하시고 하늘 나라에서 칭찬 받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삶속으로
어느 날 한 남자가 새로 산 차를 몰고 좁은 주택가 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골목에서 한 소년이 불쑥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남자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이 소년은 느닷없이 돌을 던졌다. 화가 난 남자가 차에서 내려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정말 못된 아이구나! 차 수리비가 얼마나 드는지 알아?”
그러자 소년이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어떻게 해야 될 지 몰라서 그랬어요. 제가 돌을 던진 것은 아무도 차를 세워주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아까 형이 휠체어에서 떨어졌는데 부축할 힘이 없어요. 제발 부탁인데 형을 휠체어에 다시 앉혀 주시면 안 될까요? 떨어지면서 많이 다친 것 같아요.”
남자는 골목으로 가서 소년의 형을 부축해 휠체어에 앉혔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주었다. 이렇게 소년을 도와준 후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는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된다. 차를 수리하지 않고 타기로 한 것이다. 왜 이런 결심을 했을까?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주위도 둘러보자는 다짐의 상징이었다.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과 주변을 살펴볼 줄 아는, 그래서 그들을 조금이라도 섬기고 도울 줄 아는 여유와 마음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