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도할 때 조심해야 할 점 중 하나는 영적인 것만을 기도하려는 태도다. 우리 안에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구분하여, 영적인 것은 좋은 것이며 육적인 것은 나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먹고 사는 문제를위해 기도하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플라톤 주의에서 비롯된 것이지, 기독교가 주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 땅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것을 위해 적극적으로 구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럼 왜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있다면, 식사 기도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 힘으로 노력해서 얻은 음식인데,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까?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결코 한 끼 식사도 할 수 없다고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 기도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양식을 위한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진실한 기도를 드리기 위함이다. 정작 마음 속에는 B에 대한 갈망 뿐인데 하나님께 억지로 A를 열심히 구한다면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라면 무엇을 더 원할까? 마음에도 없는 공허한 메아리와 같은 미사여구보다는,서툴지만 마음이 담긴 내면의 소리를 더 원할 것이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우리 안에 마땅히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속마음 그대로"임을 기억해야 한다.
"소음은 듣지 않으려 할 때 가장 크게 들린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코끼리를 10초 동안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더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억누르고 다른 기도만을 한다면, 오히려 나머지 기도들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안에 있는 필요와 갈망을, 그것이 무엇이든지 솔직하게 하나님께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바른 기도를 드리기 위함이다. 기도할 때 조심해야 할 점 중 하나는 정답만을 기도하려는 태도다. 아이러니하게도이런 태도는 오히려 바른 기도를 드리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우리 안의 생각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바르게 고쳐 주신다. 꽁꽁 숨겨진 생각보다는 솔직히 드러난 마음이 더 다듬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고 사소한 문제보다는 크고 중요하고 의미 있는 문제를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작은 어려움이있을 때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큰 시련이 닥쳐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위험이 더 크다. 따라서 기도가 너무 고상해지면 안된다. 육적인 필요에서부터,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적극적으로 구할 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작은 일로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위엄보다는 우리의 체면 때문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