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4월 4일
4월 4일(토)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님
요한복음 19장 31~42절
안식일 준비와 죽음 확인 31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참된 증언과 예언의 성취 35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장례 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묵상하기
1. 안식일을 앞두고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요청한 것은 무엇이며, 군인들이 다른 죄수들과 달리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31~33절)
2. 한 군인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34~37절)
3.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38~40절)
4. 평소에는 신앙을 드러내지 못했던 숨은 제자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헌신했다. 나는 주변의 시선이나 불이익 때문에 신앙을 숨기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 내가 주님을 위해 용기 있게 드러내야 할 모습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죽음이 확인되는 과정과,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는 숨은 두 제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 안식일 준비와 죽음 확인(31~34절)
이 날은 유월절과 겹친 큰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이었기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십자가에 달린 시신들로 인해 안식일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고자 빌라도에게 사형수들의 다리를 꺾어 치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로마 군병들이 다가갔을 때 예수님은 이미 숨을 거두신 상태였기에 다리를 꺾지 않고, 대신에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쏟아졌다. 피와 물이 쏟아졌다는 것은 육체를 입은 참 인간으로서 실제로 죽음을 경험하셨음을 확증한 것이었다.
• 참된 증언과 예언의 성취(35~37절)
군병들이 예수님의 뼈를 꺾지 않은 것은 구약의 예언(출 12:46; 민 9:12)을 성취한 것으로, 예수님이 완전한 유월절 희생양으로서 온전한 제물이 되셨음을 보여준다. 또한 옆구리를 찌른 행위 역시 스가랴 12:10의 예언이 정확히 응한 것이었다.
• 예수님의 장례(38~42절)
예수님의 장례는 뜻밖에도 공회 회원이자 은밀한 제자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 치러졌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신앙을 감추고 있던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한 후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고 용기를 내어 대중 앞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요셉은 담대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고, 일찍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왕의 장례에나 쓰일 법한 엄청난 양의 향품(몰약과 침향 섞은 것 백 근쯤)을 가져와 예수님을 최고로 예우했다. 이들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방부 처리 없이 향품과 함께 시신을 세마포로 쌌으며, 안식일이 임박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가까이에 있는 한 번도 사람을 장사한 적 없는 새 무덤(마태복음에 따르면 요셉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을 안치했다.
평소에는 신앙을 드러내지 못했던 숨은 제자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헌신했다. 나는 주변의 시선이나 불이익 때문에 신앙을 숨기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 내가 주님을 위해 용기 있게 드러내야 할 모습은 무엇인가?
기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고 그 사랑을 세상에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삶속으로
요한복음에서 니고데모는 세 번 등장한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3장), 그는 밤에 찾아왔다. 예수님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낮에는 올 수 없었다. 그는 산헤드린의 지도자였고, 예수님과의 만남이 알려지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혼자 왔다.
두 번째로 그가 등장했을 때(7장),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보낸 하속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산헤드린이 들끓었다. 그때 니고데모가 한마디 했다. "우리 율법이 사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가 행한 것을 알지 못하고서 심판하느냐?" 직접적인 변호는 아니었다. 법절차를 언급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다. 동료들은 비웃었다.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물러섰다.
세 번째로 그가 등장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이다.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셨다. 제자들은 흩어졌다. 이것은 가장 위험한 시간이었다—예수님의 추종자로 알려지는 것이 가장 큰 대가를 요구하는 때. 그런데 니고데모는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한마디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백 리트라의 향품을 들고 왔다. 왕의 장례에 쓰이는 엄청난 양이었다. 이제 숨기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정성껏 감쌌다.
니고데모의 믿음이 자랐다. 밤의 은밀한 질문에서, 법적 절차를 언급한 조심스러운 변호를 거쳐, 공개적인 장례 헌신으로. 그를 바꾼 것은 살아서 기적을 행하시던 예수님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이었다. 죽음보다 더 큰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믿음은 지금 어느 시간대에 있는가? 밤에 혼자 찾아오는 믿음인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하는 믿음인가, 아니면 백 리트라를 들고 나아가는 믿음인가? 십자가는 숨은 제자들을 밖으로 불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