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길벗 소로우 Jul 24. 2022

MZ세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 142호 (‘22.7-8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MZ세대의 특징일까?


다음 설명은 어느 세대의 특성이라고 한다. 어떤 세대일까?

“기존 가치와 관습에서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이며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집중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독특한 자신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이들은 엄숙주의를 거부하고, 재미를 추구하며, 자연에의 욕구가 있으며, 나이나 성 등의 경계를 애써 구분하지 않고, 새로운 테크놀로지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를 누린다.”

전형적인 MZ세대 모습 아니냐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는 1990년대에 등장해 지금 40대 후반, 50대로 살아가고 있는 X세대의 특성을 말한 것이다(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최근 자주 거론되는 MZ세대에 대한 키워드는 모바일,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SNS, 넷플릭스, 구독과 배송, 중고거래, 영끌 투자, 암호화폐, 워라밸, 다양한 액티비티, MBTI 열광 등이다. 이 특징들을 보면 50대인 나도 전형적인 MZ세대인 것 같다. 나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노트북을 쓰고 있고, 이커머스에 소비하는 돈이 일 년에 수백만 원은 된다.(IT 기기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SNS에 푹 빠져서 내가 올린 포스팅의 ‘좋아요’를 세면서 흐뭇해하기도 한다. 넷플릭스를 정기 구독하고, 카카오 선물함에는 생일에 받은 선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구독형 앱 서비스도 여러 개를 쓰고 있고, 중고거래 앱으로 다양한 물건들을 내다 팔았다. 비록 잘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워라밸을 추구해왔으며, MBTI를 보면서 우리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는 도대체 왜 이럴까 살펴본다. 아! 나는 정말 MZ세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MZ세대의 특징이라 손꼽는 것들이 정말 세대의 특성일까? 20여 년 전 ‘X세대’가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등을 살 때 당시 어른들은 그런 걸 왜 사냐고 물었다. 요즘 기성세대가 MZ세대 직장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관점들, 이를테면 야근과 주말 특근을 싫어하고 자기 일만 끝나면 퇴근하고 싶어 한다거나, 부서 회식을 싫어한다는 것도 사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나도 사원 때는 회식이 진짜 싫었다. MZ세대가 회식 싫어한다는 것도 딱 맞는 말이 아니다. 상사만 없으면 자기들끼리 맛집 찾아다니고 잘들 어울린다.

 

세대론과 마케팅

 

다른 세대도 한번 살펴보자. ‘베이비부머 세대’가 과연 있을까? 베이비부머는 미국에서 시작된 세대 개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병사들의 귀환과 더불어 결혼이 늘고, 미국의 인구가 팽창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을 여러 나라에서 수입해서 썼다. 요즘은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 이런 표현을 흔히 볼 수 있지만 30~4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있다’는 표현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베이비부머’는 각 국가별로 시기적 일치성이 없는 세대다. 요즘 말하는 ‘스마트폰 세대’보다 더 연식의 오차가 심하다. 미국, 유럽, 한국, 일본, 베트남, 중남미, 중동은 전쟁을 경험한 시기가 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늘어난 시기는 1953년 남북한이 정전을 선언하고 약 20년 후다(인구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1969~1972년 출생자들이다). 남한에 70년대생이 많은 것을, ‘종전 직후의 인구 팽창’이라는 미국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와인 세대라는 말이 등장한 적이 있다. (WINE-Wisely Integrated New Elder). 와인처럼 ‘인고의 세월을 지나 숙성된 과정을 거친 중노년층’이라는 개념으로 쓰였다. 당시 웰빙 바람이 불면서 좀 더 폼나게 먹고 폼나게 마시자는 소비 심리와 연결되어 와인 소비량이 갑자기 늘어났다. 값도 비쌌다.(20년 전 맛 좋은 칠레산 와인 한 병에 3만 5천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2만 원이면 살 수 있다. 당시 물가를 감안하면 지금보다 몇 배 비쌌다고 봐야 한다.)

와인 사업이 돈이 되자 대기업들도 와인 수입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와인 열풍과 더불어 한 전자회사는 받침대가 와인 잔 모양을 닮은 고가의 TV를 디자인하고 ‘보르도’라는 프랑스 와인을 제품명으로 붙여 크게 히트를 쳤다. 나중에 와인 잔이 아니라 경복궁 처마의 곡률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았다고 스토리를 덧붙이긴 했지만, 사실은 당시의 와인 마케팅 열풍에 편승한 면이 적지 않았다.

알고 보니 와인 세대라는 용어의 출처는 한 광고회사였고, 같은 기업 계열이었던 일간지에서 이 세대에 관한 특집기사를 많이 실은 것으로 밝혀졌다. 2 이후 자유무역협정으로 수입이 늘면서 와인 가격은 빠르게 하락했고, ‘와인=고급문화’라는 등식이 깨졌다. 그러자 기업들은 와인 이미지를 차용한 마케팅을 중단했다. 프리미엄 마케팅을 하기에는 와인이 더 이상 고급 음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MZ세대는 해외에선 찾아볼 수 없는 세대론이다. 오직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MZ세대론은 대부분 소비와 관련이 있다. 공유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중고 제품을 소비하고, 경험 위주의 소비를 하며, 사회적 가치에 부응하는 스토리가 있는 상품을 좋아하고, 개념 소비를 한다고 정의한다. MZ세대가 되려면 이런 식의 소비를 더 자주 하고, 이런 데 돈을 더 많이 써야 한다는 얘기다. 유행하는 소비 패턴을 따를수록 MZ세대로서의 고유 특질은 더 농후해진다. 달리 말해, 소비 능력이 없는 사람은 MZ세대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 와인 세대와 마찬가지로, MZ세대론의 등장이 ‘돈’과 관련 있다는 얘기다.

 

경제적 관점에서  세대론

 

마케팅과 광고가 없다면 세대론이 횡행할 수 있을까. 세대를 구분하면 가공의 집단이 만들어지고, 집단 간의 이격이 세상의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이쪽 세대는 저쪽 세대를 동경하거나 반발 또는 경멸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쪽 세대도 그런 움직임이 있다. 그런 역동적인 충돌이 영리한 사람들에게는 돈벌이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몇 년 전 등장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 또한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점점 더 소비 개념으로 치환되는 것을 본다. 소확행이란 말에는 이런 속삭임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사냐? 그때그때 돈 좀 쓰면서 살아, 네가 이 정도 쓸 자격도 없는 거니? 사고 싶은 거 당장 사고, 좋은 여행지 가서 맛있는 것 먹고, 예쁜 디저트바에 가서 음식 사진도 찍으라고!’ 이런 소확행들은 스마트폰에 잠시 머무르다 인스타그램으로 직진한다.

MZ세대에 관한 수많은 보도를 보면서, 내가 생각한 MZ세대론은 이러하다. ‘뭔가 더 팔고 싶어서 밀레니얼 세대라고 명명을 해봤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돈이 별로 없네. 아이쿠, Z세대랑 얼른 붙여버리자!’ 밀레니얼 세대에게 경제력이 좀 더 있었더라면 Z세대가 이렇게 빨리 도래하진 않았을 것이다. 또 Z세대가 돈이 좀 있었더라면 밀레니얼 세대에 묻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등장하고 얼마 되지 않아 Z세대와 통합되었는데, 노령화되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왜 아직도 건재한가?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제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최근 좀 떨어지긴 했지만) 베이버 부머 세대에겐 자산가치가 상승한 부동산과 주식, 곧 수혜가 임박한 연금자산 등이 있다. 그 뒷세대는 부동산도 금융자산도 없고, 소비력도 약하다. 40대 초반의 소비 패턴과 소비 여력이 20대와 현저히 달랐더라면, 세상은 그들을 MZ라는 동일 세대로 묶지 않았을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세상은 빠르게 판단했다. Z세대의 운명도 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20년의 세월을 묶어서라도 뭔가를 어떻게든 좀 더 팔아보고 싶은 사람들, 지식이나 이론을 팔고 싶은 사람들은 새로운 세대론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그러니깐 스물두 살부터 마흔두 살까지가 겉보기와는 다르게 사실은 단일 세대이며 공통된 경험과 공통된 가치를 가진 하나의 전형이라는 이론이다.

이 세대론은 마치 유럽경제연합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통합된 MZ세대가 있으면, M세대의 전유물이든 Z세대의 전유물이든 경계를 넘어서 얼마든지 유통시킬 수 있다. 심지어 MZ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요즘 MZ세대가 쓰는 물건이라며 소비를 권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연식으론 MZ세대에 속하는) 당사자 중에도 이렇게 묶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보다 20년이나 더 산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세대라고 우기는 게 싫은 20대도 있고, 그간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의 20대에 비해 어떤 경제적 성취나 차별화된 특질이 없는 현실이 서글픈 40대도 있다.

그나마 이들이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공통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적인 박탈감과 불공정에 대한 반감 아닐까 싶다. 20~30대 청년 세대의 경우 앞선 세대와의 자산 격차가 심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세대 내에서도 부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직장 생활에 입문조차 어려운 젊은이들이 세대 내 기회 불평등, 소득 불균형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채용과 인사 관련 일을 하는데, 90년대 이후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 격차가 꾸준히 커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최근 초임 사원의 첫해 연봉은 2500만 원부터 700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능력에 따른 차등 임금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신입사원의 역량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역량에 따른 임금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무경력자의 초임이 두 배 이상 차이 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출발선이 다른 달리기 경주에는 참여하기가 싫어지기 마련이다. 점점 협소해지는 취업 기회는 오히려 프리미엄 청년 취업 시장을 만들어내면서 청년 세대 내 소득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세대론은 남을 재단한다

 

MZ세대에 대해 말들이 많다. 당사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남들이 더 난리다. 20~40대 초반까지 한자리에 모여서 우리 MZ세대는 이러이러하다고 목소리 내는 것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몇 년 전 소위 밀레니얼 세대 열풍이 불었을 때, 나는 회사에서 만난 젊은이들에게 밀레니얼이냐고 물었다. 내가 주로 들은 대답은 “나이로는 맞는데, 신문과 TV에서 말하는 그런 집단적 특질은 자신과 별로 안 맞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나이 많은 사람에게 전했더니, 이런 답을 들었다. “밀레니얼 세대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집단화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개인주의가 강하다. 그게 바로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이다.”

세대를 규정하는 행위는 세대 간 반목과 단절을 조장한다. MZ세대론은 당사자들을 배제한 상태로, 젊은이들을 자꾸 타자화시킨다. 마치 별종인 것처럼. 본인도 스타벅스 가면서, 스타벅스 들어가서는 “여긴 역시 MZ들이 많네…”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소비 촉매로서의 레토릭인 MZ세대론을 거론하며 기업은 MZ세대의 트렌드와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MZ형 상품을 기획하고, MZ형 가격 정책과 결제 방식을 도입해 물건과 서비스를 계속 팔 것이다. 사회학자, 경영학자, 데이터 분석가, 심리학자들은 MZ세대를 이해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거나, 사업 기회를 놓치거나 아니면 급변하는 사회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말하면서 책을 팔고, 강의료와 인세를 받고, 인터넷에서 클릭 수를 얻어갈 것이다. 그러다가 MZ세대보다 더 사업성 있는 집단이 만들어져 누군가가 ‘심봤다!’를 외치는 순간, 새로운 세대론이 또 자리 잡을 것이고, MZ세대는 빠르게 사라져 갈 것이다.



우리 아이가 네 살 때, 나는 매일 밤 아이를 침대에 누이고 토닥토닥 재웠다. 그런데 아이는 쉽사리 잠들지 않고 계속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 같이 놀자 졸랐다. 그럴 때 나는 종종 아이에게 거짓말을 했다. 밤이 되면 거실에 도마뱀이 나타나는데, 네 방으로 못 들어오도록 아빠가 나가서 잡아야 한다고. 아이는 자기 방에 도마뱀이 들어오는 건 싫지만 착한 도마뱀도 가끔 있다면서 이렇게 부탁했다. “아빠, 착한 도마뱀은 예뻐해 주고 나쁜 도마뱀은 혼내줘.” 난 그러겠노라고 약속한 뒤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와서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쉬었다.

우리 집 거실로 쳐들어온 도마뱀은 정말 있었던 것일까? 아이의 행동을 바꾸고, 내가 휴식을 누린 걸 보면 도마뱀은 분명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도 나도 실제로는 한 번도 거실에서 도마뱀을 마주치지 못한 걸 보면, 착한 도마뱀이든 나쁜 도마뱀이든 그 어떤 도마뱀도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십수 년 전 우리 집 네 살짜리 아이에게 내가 들려줬던 도마뱀 이야기를, 지금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지갑을 열라면서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집값은, 왜 단순한 소망을 가진 이에게 불쾌감을 주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