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가 쓴 ‘광기의 역사’를 보면, 17세기에 광기의 정의는 지금과 다르다고 한다. 17세기적 광기의 정의는 창녀, 종교인, 장애인 및 기타 다양한 사람들을 다 광인으로 간주한 것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노동 인력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광기에 대한 정의는 생산에 기여하느냐, 아니냐는 관점에서 본 것이다. 실제로 이들의 심리상태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구타를 위주로 한 엄청난 치료(?) 끝에 많은 이들은 노동현장으로 재흡수되었다. 그리고 진정한 소수의 광인들만 남게 되었다.
지금도 17세기적 광기의 정의는 산업 현장에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회사 내에 뭔가 '이상한 부장님'이나 '이상한 이사님'이 존재한다. 그들은 한 때는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 생산성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기능 제공이나, 운영 등의 아랫단 일은 거의 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전략 수립이나 의사결정, 비전 제시적인 고급 노동에도 참여하지를 못한다.
이들은 점점 거의 아무 회의에도 부름을 받지 못한다. 간혹 회의 초청을 받더라도 단체 공지 같은 일회성 회의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일에 성과를 내어도, 그 보고를 받아줄 사람이 잘 없고, 그 보고 일정 자체가 사라져도 주변에서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런 이들은 회사에 출근해서도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잦고, 또 혼자 산책을 하거나, 회사 부속 피트니스 센터, 도서관에 가서 앉아 있기도 한다.
이들은 지금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때 이들은 독창성이 있는 인력, 새로운 접근을 하는 인력, 유니크한 인력 등등으로 포장된 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자기들이 받는 월급 대비, 생산을 꽤 잘해 냈기 때문이었다.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사람들, 임원직에서 짤리는 사람들 상당수가 마지막 해에 상사나 회사로부터 듣는 말이 있다. ‘쟤, 뭔가 좀 이상해...'라는 말이다.
그는 정말 이상해진 것일까? 마땅찮게 바라보는 상사의 눈에는, 그의 생산성이란 것이 그 자리를 탐하는 많은 후임들에 비해 떨어진 것이다. (생산량이 같아도, 급여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우 또한 포함된다.) 그래서 그동안 그를 지탱해 온 장점과 특질, 독특성 등이 갑자기 '이상함'으로 개념 치환되는 것이다.
우리는 푸코가 진단한 17세기를 아직도 어느 정도는 살고 있는 듯하다. 다만, 우리의 산업사회가 푸코의 17세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 17세기적 가치인지 못 알아차리도록 그럴듯하게 조직 개편을 하고, 서로 아주 세련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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