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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길벗 소로우 May 16. 2019

바다

어느 직장인의 바다와 죽음에 대한 묵상

우리는 시에서 운영하는 공동묘지로 향했다.

알베르또는 관 속에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아버지는 가난한 노동자였다. 그는 몇 주 전 맹장염이 발병했었다.

아버지는 민영의료보험이 없었다. 그래서 민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민영병원은 의료보험증이 없는 사람은 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구청 보건소에 갔다. 보건소는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고 싶으면, 대기자 대장에 이름을 적어두고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대장에는 수개월치 대기자 명단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1주일 전, 알베르또는 아버지가 맹장염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첨부터 매우 침통했었다. 그는 아버지와 영영 헤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알베르또의 아버지가 입원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뛰었다.

나는 보건소에서 수술받기가 어렵다면, 우리 회사에서 지원하는 직원 의료보험으로 아버지를 좋은 병원으로 모시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건 아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회사 의료보험은 본인, 배우자, 자식들만 커버했다. 부모님은 제외였다.

브라질은 의료보험을 가진 사람이 그 보험 네트워크 체계에 들어와 있는 병원만 갈 수 있었다. 보험증이 없는 사람에게는 진료를 어떻게든 거부하곤 했다. 의료보험이 없다는 것 자체가 그 환자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다. 현금으로 지불하겠다고 해도 그들이 현금결제를 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하여튼 인근 병원에는 다들 병실이 없다고 했다.

발병 후 1주 지나 알베르또의 아버지는 집에서 두 시간 떨어진 곳, 보험이 없어도 병실을 주겠다는 인도적인(?) 병원을 찾아냈다.
그리고 입원하자마자 그의 아버지는 죽었다. 이미 복막염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시에서 할애하는 유료 묘지는 좁았다. 딱 관 하나 들어갈 만한 너비였다. 알베르또는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하고 울었다. 가난한 아버지는 맹장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문을 간 직원들과 나는 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오고 있었다. 뒤에 앉은 누군가가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 여자는 교령술을 시행하는 혼합 종교의 일원이었다.  떠나간 사람은 잊어야 한다. 그런데 애닯게 떠나간 사람은 다시 불러내서라도 보고 싶다. 그것이 브라질에서 혼합종교가 발달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보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했다. 나는 20대 때 같이 캠핑을 갔다가 물에 빠져 죽은, 내가 인공호흡으로 끝내 살려내지 못한 친구 JH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녀는 JH의 인상에 대해서 내게 몇 마디 물었다. 그리고 JH가 자신에게 말을 걸면, 내게 바로 알려 주겠다고 했다.

차 안에서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바다로 가고 싶다고. 몇몇이 더 동조했다. 자기들도 바다로 가고 싶다고.
나도 그때는 갑자기 정말 바다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차를 돌려서 모두 바다로 가자고 했다.

"바다로 가자. 우리 모두. 회사로 가지 말고 바다로 가자."

나는 누군가 한 명만 더 바다로 가자고 말해 주길 바랬다. 그러면 우리는 진짜 바다로 갈 수가 있다.
알베르또는 그 차에 타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회사 사무실 앞에서 내렸다.
거의 저녁이었다. 직원들은 각자 짐을 챙겨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엑셀과 숫자, 그리고 메일이 가득한 나의 시푸른 찬 바다로 다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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