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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Mar 06. 2021

젊음은 언제나 슬램존 안에

젊음은 언제나 슬램존 안에 (Feat. Story Of The Year)                


메탈 공연에는 어김없이 슬램이 있다. 스탠딩석 한복판에 둥그런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치는 놀이다. 모든 관객들이 슬램을 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메탈 공연에는 슬램을 하는 공간이 반드시 있다. 처음 슬램을 목격한 건 1999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내한공연을 왔을 때였다.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밴드였기 때문인지 SBS <한밤의 TV연예>에서 그들의 공연 실황을 리포트로 내보냈다(그때는 그들이 누군지도 몰랐다). 오프닝 음악이 나오고 그들이 연주를 시작하자 관객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빈 물병이 관객들의 머리 위를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객석을 나눈 펜스가 들썩였다. 패널 중 한 명이 말했다. “어어, 저거 위험해 보이는데요?” 패널만 놀란 건 아니었다. 처음엔 패싸움이 난 줄 알았으니까. 메탈 음악이라곤 들어본 적도 없던 시절 슬램에 대한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는 걸 보면 당시의 장면이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당시의 패싸움이 슬램이라는 걸 알려준 건 1년 뒤 6집 앨범으로 컴백한 서태지였다. 2000년 10월 4일 MBC <섹션 TV연예통신>에 출연해 록음악 공연에서 재밌게 노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며 밴드 멤버들을 앞세워 시범을 보여준 것이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 큰 감흥은 없었다. 그걸 대체 무슨 재미로 하는지 여전히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경험한 슬램은 그로부터 4년이 흐른 뒤, 홍대 클럽 쌤에서 열린 공연에서였다. 수능이 끝난 뒤 맞은 연말이었다.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뭘 할지 고민하다 커뮤니티 공연 정보란에 들어가 서핑을 시작했다. 그때 라인업에 나비효과와 스키조가 적힌 공연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급의 밴드 두 팀을 클럽 공연에서 한 번에 볼 수 있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공연장으로 가기 전 회원들에게 공연장에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매너들에 대해 물어봤다. 슬램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같이. 그때는 이미 메탈을 접한 지 4년이 넘은 때였으므로 슬램에 대한 충격과 이질감은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한 동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3 어린양이 슬램에 처음 도전하는 게 귀여웠는지 순식간에 여러 댓글이 달렸다. 많은 조언들이 있었는데, 결국 요지는 다들 비슷했다. 하이힐과 안경은 무조건 벗을 것. 금속이 달린 장신구는 착용하지 말 것. 그리고 절대 팔꿈치를 들지 말 것. 나는 거기에 “아아, 결국 축구랑 똑같네요?”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겪어보니 정말 축구와 비슷했다. 아무리 규정을 숙지해도 의도치 않은 반칙이 나온다는 점에서.        


슬램은 무대에 스키조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막상 사람들과 뒤섞이니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왼쪽 디딤 발이 살짝 꼬여서 중심을 잡으려고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드는 순간 뭔가 푹신한 베개 같은 게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윽! 하는 남자의 소리. 내 팔꿈치가 누군가의 배를 친 것이다. 음악소리 때문에 대화가 불가능한 환경임에도 남자의 신음소리는 꽤 명확하게 들렸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이고, 어쩌지? 죄송합니다! 라며 사과할 틈도 없이 수많은 어깨들이 치고 들어왔다.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결국 공연 내내 내가 때린 남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날 자정, 커뮤니티 후기 란에 글이 올라왔다. ‘슬램 할 때 기본 매너도 안 지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듯요’ 읽어보니 몇 시간 전에 내 팔꿈치에 맞은 그 남자였다. 그냥 모른 척 지나칠까도 잠시 생각했으나 분명 인간이 할 짓은 아닌 것 같아 남자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정중히 사과했다. 남자가 사과를 받아주며 조언 한 마디를 건넸다.               


“잘 모를 때에는 가장 노련해 보이는 사람을 따라가세요.”      


슬램존 안에는 반드시 노련한 리더가 두어 명 씩 있다. 일종의 지휘자다. 그들이 공간을 벌리고 어깨를 부딪치는 타이밍을 정리해준다. 사람이 넘어졌을 때는 주도적으로 스크럼을 짜 보호해주고 유실물이 생겼을 때 서로서로 알리는 역할도 한다. 그들과 최대한 가까이 있으면 넘어져도 보호받기가 쉽다. 그러니까 슬램존의 그 남자는 슬램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적응하는 팁 하나를 알려준 것이다.      


미..믿을지 모르겠지만 싸우는 거 아니다


슬램존 안에서 그들의 역량과 즐거움은 정확히 비례한다. 공간과 타이밍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슬램존은 무정부상태로 전락한다. 이는 슬램존의 무한한 가능성을 죽인다. 사실 슬램존 안에선 그저 슬램만 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때리듯 팔다리를 허공에 휘두르는 모싱, 서로의 어깨를 잡고 뛰어다니는 기차놀이, 영화 속 조폭들이 서로 대치하듯 양 옆으로 벌려선 뒤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월 오브 데스 모두 슬램존 안에서 이뤄진다. 그 외에도 아티스트의 특성에 따라 여러 맞춤 퍼포먼스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슬램은 일종의 단체 놀이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일종의 규칙과 통일된 움직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소속감은 결코 작지 않다. 공연이 끝나고 슬램존이 해체되면 우리는 다시 남이 되어 불특정 다수 속으로 숨어든다. 아는 척은 공연이 끝난 뒤 커뮤니티에서 이뤄진다. 일종의 커뮤니티 정모이기도 한 셈이다. 공연이 다 끝난 날 밤이면 으레 이런 게시글이 올라오곤 한다. “슬램존 우측 슈퍼마리오 모자 쓴 사람 보셨죠? 그게 접니다!” “낮에 삼장법사 코스프레 했던 사람인데, 넘어졌을 때 다들 일으켜줘서 고마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슬램은 200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마지막 날 스토리 오브 디 이어의 무대였다. 지금도 그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다. 처음 그들을 알게 된 건 올란도에서 진행한 MTV 하드 록 라이브 실황을 봤을 때였다. 20분 남짓한 영상이었는데,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밴드 전원이 이단 옆차기로 뛰어 들어왔다. 나중에는 그걸 로도 성에 안 찾는지 앰프 위에서 덤블링을 하기도 했다. 순간 넋이 나갔다. 보자마자 이 사람들이 왜 미국에서 10대들이 제일 좋아하는 밴드 1위를 차지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도 나도 인생에서 가장 젊은 시기였음에도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만들 정도의 열정이 느껴졌다. 그저 보기만 해도 피가 끓어 넘치는 밴드. 그런 그들을 눈앞에서 본 것이다. 한국에서! 심지어 전성기일 때! 그들의 등장을 알리는 오프닝 뮤직이 울려 퍼지자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무대 위 아이돌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마음이란 게 이런 걸까. 그들이 등장했고, 이내 슬램존의 사람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우리 소티. 내새꾸들. 


순간 고민했다. 그냥 선 채로 볼까. 슬램존으로 뛰어들까. 그들의 모습을 최대한 눈 안에 담고 싶은 마음과 지금 이 순간을 미친 듯이 즐기고 싶은 마음이 서로 충돌했다. 그때 보컬 댄이 슬램존을 가리키며 서클핏! 서클핏! 하며 사인을 보냈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슬램존 안으로 달려들었다. 서클 핏은 슬램존 안에서 원을 그리며 달리는 놀이를 말하는데, 바깥쪽 사람들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네면서 뛰어다니는 게 포인트다. 좁은 원 안에서 다들 얼마나 빨리들 뛰는지 그 모습이 마치 텐트 전구를 둘러싼 숲속의 날벌레들 같았다. 그 반응에 댄이 재미가 붙은 듯 보였다. 막판에는 가장 넓은 슬램존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는데, 너무 말을 잘 듣는 나머지 농구코트만 한 슬램존이 생겨버렸다. 그가 이런 건 처음 본다는 듯 웃었다. 음악이 다시 시작됐고, ‘모두 죽자(Let it die)!’ 는 그의 말과 함께 모두 슬램존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치는 모습이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나올 법한 대규모 전투 같았다. 솔직히 그 타이밍에선 뛰어들지 않았다. 다들 덩치는 왜 그리들 큰지. 또 나는 왜 이리 작은지. 이번에 달려들었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한 채 갯벌 바닥에 묻힐 것 같았다.          

     

결국 의도치 않게 서클핏 밖으로 나와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모두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은 채 온몸으로 현재를 즐기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디서 왔든, 그게 누구든 어쨌든 우리는 같은 슬램존 안에서 어우러져 놀고 있지 않은가! 한편으로 그 모습은 도원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 같기도 했다. 지금 이 낙원 같은 순간으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얘기는 조만간 자질구레한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왜 즐거움이 클수록 수습할 게 많은 걸까). 공연이 끝난 뒤 매점에 걸린 거울을 보니 이게 누군가 싶었다. 공연장 바닥이 개펄인 탓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멀쩡한 곳이 없었다.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새 옷을 갈아입어도 펄이 신발과 몸 구석구석에 남아있었다. 결국 변신하기 직전의 샌드맨처럼 지하철 곳곳에 모래를 흘리며 집에 돌아왔다.          


사실 최근 2, 3년 동안은 슬램을 잘 하지 않았다. 최근 열린 페스티벌들이 모두 역대 최악의 폭염 속에서 치러진 탓에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었다. 2018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그 정점이었는데, 그 탓에 평소에 보고 싶었던 일본 밴드 크로스페이스의 무대를 선 채로 부채질을 하며 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일을 시작하면서 운동에 담을 쌓고 지낸 탓도 컸다. 조금만 뛰어도 폐가 터질 것 같은 마당에 슬램존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이따금 가는 클럽 공연에서도 얌전히 앉아만 있다 가는 날이 늘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수습할 방도가 마땅치 않아서다. 집에 가는 길, 땀에 잔뜩 찌든 모습으로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을 때면 괜히 주위 사람들이 시선이 신경 쓰였다. 모르는 사이에 점차 내가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래가 잔뜩 묻은 슬리퍼를 끌며 지하철을 타도 즐겁기만 하던 시절의 자신과 말이다.     


그렇다. 사실 슬램을 할 때 제일 필요한 덕목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용기다. 숨이 터질 것 같은 희열이 온몸을 훑고 간 뒤 감당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상들을 완전히 망각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스무 살 소년소녀처럼.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훌쩍 떠나는 배낭족들처럼. 한 살씩 먹어갈수록 내게는 점점 어려운 일이 돼가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여전히 젊음은 슬램존 안에 있으니까. 내가 젊지 않아도 그 안에 있는 그들은 늘 젊으니까. 지구적 대재앙이 그 모든 즐거움을 빼앗아 간 지금, 언젠가 그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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