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입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추석 연휴의 서울은 늘 한가합니다. 시국이 그래서인지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 간 걸까’하고 걱정은 되지만요. 아마 누군가는 고향에 가고 다른 누군가는 집에서 간만의 휴식을 즐기고 있을 겁니다. 주택가 근처인 이 효창공원역 앞은 그 평화로움을 만끽하기 좋은 곳입니다. 그래도 추석이니 나와서 놀아보자는 홍대 앞 번화가나 가족 단위 고깃집이 몰린 먹자골목 같은 번잡함우 전혀 없었거든요.
그나저나 이곳에도 경의선 숲길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연남동에만 나 있는 숲길인 줄 알았는데 말이죠. 연남동처럼 길이 크게 나 있진 않지만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기엔 충분해 보였습니다. 때마침 화단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니 여기가 숲길의 종착점이었나 봅니다. 이정표를 보니 경의선 숲길이 효창공원에서 홍대입구역까지 이어져 있다고 쓰여 있었어요. 역과 역 사의 거리를 생각하면 약 4~5km쯤 될 텐데, 생각보다 무시 못할 거리였습니다.
숲길 옆에는 작은 음식점과 카페들이 늘어서 있었어요, 휴무인 곳이 많아서 조금 아쉬웠지만요. 그럼에도 문을 연 가게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주로 와인 바와 카페들이었어요. 평화롭게 야외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 여유로움에 젖어들다가도, 주제넘게 명절에는 그래도 쉬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쉴 수 없는 상황이니 명절에도 기어이 일을 하고 계신 거겠죠. 사장님들에게는 휴식도 곧 비용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가게들의 뒤편이 유독 눈에 들어왔어요. 가게들의 뒤편이 골목이 아니라 바로 숲길과 마주했거든요. 그 모습이 조금은 생경했습니다. 사실 가게들의 뒷모습은 잘 노출되지 않으니까요. 직원들에게 가게 뒤편의 공간은 일종의 도피처입니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고생스러운 이야기를 한다거나, 잠시 바깥바람을 쐬는 일들을 그곳에서 하죠. 때때로 화풀이도 그곳에서 하고요. 이곳들은 식당의 뒤편이 모두 공원으로 노출돼 있으니 주제넘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가게들은 도로변과 숲길 양 옆에 전부 공간을 내서 테이블을 내놓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잠시 숨을 곳은 필요할 텐데 말이죠. 그 구조를 곱씹을수록 괜히 저도 고단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일까요. 가게들은 예뻤지만 딱히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덥석 들어갔겠지만 말이죠. 저도 공휴일에는 잘 쉬지 못하거든요. 쓸데없는 감정이입이라고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게 제 성격입니다. 이렇게 된 거 날씨도 좋은데 밖에서 여유를 즐겨보자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쉬는 법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하면서요. 사실 전혀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유럽의 몇몇 나라들은 정말로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독일에 휴식권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는 걸 안 건 대학시절이었습니다. 보쿰에서 3년을 살다 온 친구로부터였죠. 친구는 공휴일 전날에는 무조건 먹을 걸 사놔야 한다면서 그 이유를 제게 설명 해줬습니다. 독일의 가게들은 나라에서 지정한 영업시간을 넘기면 제재를 받기 때문이라면서요. 찾아보니 실제로 독일에는 1956년 제정된 '영업시간제한법'이 있었습니다. 공항, 터미널, 대형 쇼핑센터, 관광특구 등을 제외하면 모든 상점은 일요일과 공휴일에 문을 닫아야 하죠. 법을 위반하면 과태료가 부과될 수도 있습니다. 24시간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할 자유가 보장된 한국의 사회적 환경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그게 가능한 건 1919년 제정된 바이마르 헌법 때문입니다. 현 독일 기본법은 자국 국민의 휴식권에 대해 명시하지 않았지만, 1919년 헌법에서 몇몇 기본권을 계승하고 있죠. 휴식권도 그 중 하나입니다. 조항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39조 [국경일, 일요일, 안식일]
일요일 및 국정의 축일은 안식 및 정신 고양의 날로서 법률상 보호된다.
재밌게도 바이마르 헌법을 모델로 삼았다는 한국의 헌법은 휴식권이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휴식에 관한 조항은 오직 근로기준법과 관련 시행령에만 명시돼 있죠. 사업자 번호를 가진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직, 자영업자들에게는 휴식에 관한 법률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도 엄연히 일이라는 걸 하는 데도요. 이들은 어디서에도 자신들의 쉴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너희들은 사업자니까 쉬든 일하든 알아서 해라’라고 얘기하는 게 끝이죠. 그들에게 보장된 건 오로지 쉬지 않고 24시간 일할 수 있는 자유뿐입니다. 장사하는 집에서 태어나 다 자랄 때까지 가게 평상에서 지내온 저는 가끔 그런 세상이 가끔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이는 곧 아이들이 자랄 환경과도 결부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정을 꾸리지 않으려는 이유기도 하죠. 한 세대가 지났지만 단 하루도 가게를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아빠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자유를 겪어야만 하는 아이들의 삶은 여전히 변한 게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끔 모두가 평등하게 쉬는 일상을 꿈꿉니다. 실현 여부와는 관계없이요. 나른한 일상을 즐기는 것도 시민으로서의 권리일 테니까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듯, 일이 있는 모든 곳에는 휴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시대가 실제로 도래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지금 제게 주어진 이 휴식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숲길을 벗어나 효창공원 방면의 오르막길로 향했습니다. 표지판을 보니 쭉 올라가면 효창운동장이 나온다고 되어 있었어요. 새롭게 조성된 역 부근 거리와는 다르게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래된 거리의 풍경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등학교 앞 분식점과 아주머니들이 자주 드나드는 뽀글이 파마 전문 미용실과 복덕방이 콕콕 박혀있는 길이요. 너무 오래돼 음울하지도, 너무 새로워 생경하지도 않은 그 모습이 좋았습니다. 추석 연휴라 그런지 길거리가 한층 나른해 보여서 더 걷기 좋았어요. 왜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잘 없는 걸까요. 선거철만 되면 모두 짜기라도 한 듯이 근처에 지하철을 내고 인구밀도 가득한 상권을 조성하고 대규모 대단지 아파트를 조성하겠다고만 말합니다.
슬슬 숨이 찰 때쯤 되니 효창경기장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뭔 차가 이렇게 많나 했더니 jtbc의 촬영 차량들이 많이 보였어요. 출구 쪽에서 어렴풋이 경기장 안을 엿볼 수 있었는데 <뭉쳐야 찬다 시즌2> 촬영 중이었습니다. 직접 관전할 수 없는 경기였지만 어쨌거나 경기가 열리는 날에 오다니. 괜히 가슴이 뛰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축구 경기장을 찾은 게 얼마나 됐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아요. 이렇든 저렇든 이 오래된 경기장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촬영 말고 이 경기장, 쓰기는 할까. 언제부터인가 효창경기장이 매스컴에 등장하는 일이 점점 줄었습니다. 이전 TV 스포츠뉴스 말미에는 항상 배재고나 휘문고의 경기가 효창경기장에서 벌어졌다는 식의 단신 뉴스들이 나오곤 했는데, 이제는 그조차도 나오지 않으니까요. 이러다 나중에는 동대문경기장처럼 조명탑만 덩그러니 남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그 자리에는 또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모이는 뭔가가 세워질지도 모르죠.
바로 옆에 있는 효창공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9월 하순임에도 여전히 날씨가 더워 목이 말랐습니다. 바로 매점에서 이온음료 하나랑 초콜릿 하나를 사서 벤치에 앉았어요. 다행히 습도가 낮아서 나무 그늘에 앉으니 이내 시원해졌습니다. 한쪽에선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터뜨리며 뛰어다니고, 다른 한쪽에선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어요. 편한 복장을 하고 계신 분들을 미뤄보아 데이트나 관광을 위해 타지에서 온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정말 동네 사람들의 휴식 공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스크를 잠시 벗고 이온음료를 마시면서 숲에서 부는 바람을 쐬니 저도 이 풍경 안에 완전히 동화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걸 평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평소에는 거대한 단어를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런 단어들은 늘 오해나 과장을 불러일으키니까요. 하지만 조국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친 김구 선생님께서 뒤에 계시니,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평화라는 거창한 단어를 제 기분에 엮어 써 봤습니다. 이상한가요?
산책 나온 강아지들도 평화라는 말이 뭔지 아는 듯 표정이 밝습니다. 몰티즈, 프렌치 불도그, 포메라니안. 여러 강아지들을 구경하는 건 공원에 오는 재미 중 하나죠. 한편으로는 강아지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밥 먹고, 산책하고, 친구 만나고, 영역표시하고, 집에 와 잠을 자는 삶이요. 오직 그것만으로도 강아지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내일에 대한 불안함이나 자기연민도 없죠. 푹 자고 일어나면 다시 일어나 산책하고, 친구 만나고, 영역표시하고, 집에 와 잠을 자겠죠.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리키 저베이스의 스탠딩 코미디가 생각났습니다. 초반에 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여러 견종이 생겨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설명을 곁들이면서요. 요는 개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임무가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개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설명하는 자리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답니다. 개들이 모인 자리 앞에서요.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차트를 들고 “멍멍이들아! 너희에게 주어진 임무가 뭔지 알고 싶지 않니?”라고 묻는 거죠. 그러면 견종별로 부르면서 차근차근 알려주는 거예요.
‘좋아, 그럼 레브라도?’
‘네?’
‘죽은 오리를 물고 오는 것을 즐기나?’
‘(끄덕거리며) 그런데요?’
‘그게 네 일이야!’
‘신난다, 정말 신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잖아!’
그리고 다른 개를 부릅니다.
‘잭 러셀?’
‘네?’
‘토끼굴을 추격하는 게 좋나?’
‘네’
‘그게 네 일이야’
‘기분 째지네! 오늘 계 탔어!’
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임무가 주어진 듯한 삶을 삽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게 완벽히 일치하는 삶을 살죠. BMTI를 하면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어떤 쓸모가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 채 성인이 되죠. 한참을 지나서도 자기가 뭘 잘하는지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쩌면 영영 모를 수도 있고요.
솔직히 말하면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제 쓰임에 관해서요. 친구들이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는 동안 저는 여전히 뭘 잘할 수 있는지 혼란스럽습니다. 사회생활을 한 이래로 '뭐 먹고 살지?'라는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기약 없이 혼란스럽겠죠. 미래는 늘 불안할 테고요. 어쩌면 너도나도 그 불안함 때문에 휴일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회가 됐는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지금은 평화롭습니다. 이런 평화를 누려본 게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요. 뒤에 계신 김구 선생님이 꿈꿨던 평화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렇든저렇든 명절만큼은 모두에게 평화와 나른함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때로 어떤 답들은 휴식과 나른함에서 오기도 하니까요. 혼자서만 평온한 상태를 평화라 부를 순 없으니까요. 부디 모두가 명절만큼은 푹 쉬기를, 그런 풍경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세계가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