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역에서 만리동까지 걸었습니다

by 일로

독립문역에서 내렸습니다. 크게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이곳에서 길이 세 갈래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독립문을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금화터널-신촌 방면, 북쪽으로는 사직터널-광화문 방면, 그대로 직진하면 서울역 방면이죠. 그래서 여기에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론가 가기로 정하면 나머지 두 길은 갈 수 없으니까요. 때때로 어디로 갈지 오랫동안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뭘 먹을지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중대한 고민이죠. 끝내 결정하기 어려울 때는 좀 더 과감하게 결정하려 노력합니다. 그것을 선택한 결과의 그다음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어찌 됐던 그곳엔 그곳에서만 볼 수 풍경이 존재하니까요. ‘아, 오늘 산책은 최악이었어’라고 자책하면서도 ‘그래도 안 해본 선택을 해서 괜찮아’라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선택하지 나머지 코스를 향한 미련은 없어지지 않겠지만요.


저는 그걸 환상으로 채우는 편입니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가려고 마음먹은 곳이 아니면 누군가의 블로그를 일일이 뒤져가며 여행후기를 찾아보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가보니 별로라는 진실을 알게 될 바에는 더 확실한 환상을 품는 게 좋아요. 환상을 오롯이 환상으로 남겨놓는 것도 나름 재미있습니다. 요즘엔 유튜브에서 그 환상을 채웁니다. 뉴욕이나 도쿄의 거리를 걸으며 주변의 풍경을 담아내는 채널들을 통해서요. 그 채널에서 주인공은 길거리지 유튜버가 아닙니다. 따라서 여기가 좋다 싫다 논하지 않죠. 유튜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거리의 풍경을 담아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나서부터는 제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취미생활이 됐습니다. 언젠가는 한겨울 홋카이도의 선술집 거리나 아바나의 광장을 보여주는 채널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제가 가본 곳들보다 가지 못할 곳들이 지구상에 대부분일 테니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독립문 아래 서서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바로 옆 큰길이 통일로라는 사실이 생각났어요. 통일로는 내가 사는 곳에도 놓여 있는 도로입니다. 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고양시 삼송동과 관산동을 지나 파주를 거쳐 판문점까지 갈 수 있죠. 크게 보면 전라도 목포부터 신의주의 중조우의교까지 통해 있는 길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목포의 앞바다와 신의주 앞 압록강이 자연스레 떠올라요. 만약 저 길이 하나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이북의 냉면과 서울 시내의 평양냉면들을 비교하면서 먹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생각해보니 순간 냉면이 먹고 싶었습니다.

일단 1번 국도를 따라 가보기로 했습니다. 통일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여러 가지가 떠오르게끔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따라가 보면 또 재밌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어요. 이대로라면 어차피 서울역으로 빠질 게 빤하니 끝까지 통일로를 따라가진 않겠지만. 일단 적당한 샛길이 나올 때까지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독립문에서 출발해 서대문역 가는 큰길을 따라가니 왼편으로는 새 건물들이, 오른편으로는 오래된 건물들이 대비돼 있었습니다. 안산 자락에 걸친 크고 작은 주택단지들까지 시선 안에 담으면 그 대비는 더 극명하게 갈렸어요. 그 대비가 이 구역에 어떤 흐름을 만들어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건너편에는 새로 단장한 스타벅스와 서브웨이가 있는데, 제가 서 있는 이 길에는 몇십 년 된 한의원과 중국집이 있습니다. 그 대비가 생경하면서도, 오히려 도시생활의 풍요로움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분명 오래된 가게가 주는 운치와 맛이 있으니까요. 물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분들의 입장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요.



비즈니스 타운을 따라가니 먼발치에서 경찰청과 남산타워가 보입니다. 이 길을 쭉 가면 서울역이 나올 게 뻔해 충정로 방향으로 살짝 길을 틀었습니다. 충정로와 서울역 뒤편 동네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거든요. 그건 그렇고 중간에 쉴 곳이 마땅치 않아 고생 좀 했습니다. 카페가 죄다 닫혀있었어요. 근처가 모두 비즈니스 타운이라 그런지 카페도 식당도 전부 닫혀 있었거든요. 심지어 스타벅스조차도 모두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스타벅스조차도 이곳에서는 주말 영업이 잘 안되나 봅니다. 반대로 나머지 닷새 동안 벌어들이는 수익이 있기 때문에 문을 닫을 수 있는 거겠죠. 그만큼 세가 비싸겠지만, 그럼에도 가게가 유지되는 이유를 실제로 체감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모 언론사에서 대학생 인턴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걸 직장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체험할 수 있었던 최초의 경험이었죠. 처음 경험하는 비즈니스 타운의 식사시간에서 제일 충격적인 건 식사와 주문이 모두 미친 듯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동기들과 김치찌개를 먹으러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앉으라고 한 자리에 이미 김치찌개가 끓고 있었어요. 우리는 분명 “일곱 명이요!”라고 말했을 뿐인데 말이죠. 미국식 테일러리즘이 한국에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죠. 미국의 공학 기술자 프레더릭 테일러가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고안한 이론입니다. 노동자들이 최대로 일할 수 있게 동선을 짜는 동시에 휴식시간이나 식사시간 등은 최소화합니다. 심지어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담배를 피우는 시간마저 분초 단위로 쪼개 관리하죠. 당연히 식사를 제공하는 취사장과 식당도 공장의 리듬을 따라가게 됩니다. 모든 것이 표준화, 동시화의 이름 아래 진행되죠. 비즈니스 타운 전체가 거대한 공장이 되는 셈입니다. 21세기를 맞은 지 한 세대가 지났음에도 우리가 사는 방식은 여전히 근대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컨베이어벨트가 컴퓨터와 마우스로 바뀌었을 뿐이죠.


다시 일어나 걸었습니다. 육교를 건너 내려가는데, 손기정 체육공원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기념관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이 근처인지는 몰랐어요. 바로 표지판을 보고 기념관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보건고등학교 방향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생각보다 언덕이 엄청 가팔랐어요. 언덕 중턱에 다다를수록 도시의 소음은 멀어지고 조용한 다세대 주택들과 오래된 여관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적을 즐길 여유가 없었어요. 얼굴에 쓴 마스크를 바닥에 던지고 싶을 정도로 숨이 찼거든요. 이건 제가 평소에 운동을 안 한 탓일까요? 아니면 34도까지 올라갔던 한낮의 열기 탓일까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손기정이라는 이름이 제게 인내를 줬어요. 단지 이름 세 글자를 떠올렸을 뿐인데 그냥 참고 걷게 되더라고요. ‘쉬지 않고 42.195km를 달린 사람도 있는데, 너는 고작 언덕 하나를 오르지 못해서 내려간다는 거냐’ 생각하니 멈출 수가 없었나 봐요. 그게 아니었다면 '에이씨, 안 가!' 하면서 내려갔을지도 모르죠.


가까스로 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앞에는 러닝 러닝 센터라는 이름의 건물이 보였습니다. 안에 러닝머신과 실내에서 달릴 수 있는 장비들이 가득했어요. 러닝 러닝이라는 이름은 영어로 Running Learning인데요. 그 말장난이 귀여웠습니다. 이렇게 센스 있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 대체 누굴까 싶었어요.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주위의 아파트들이 있고 주민들이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달리기를 싫어합니다. 고통을 참아가면서 악으로 깡으로 목표점을 찍어야 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아마 학교나 군대에서 설정한 목표에 따라 강제적으로 뛰어야만 했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한 번은 부대에서 특급전사 비율을 60%로 늘리겠다며 달리기 연습을 시킨 적이 있었어요. 3km를 12분 30초안에 뛰어야 했죠. 보나마나 이렇게 뛰어봐야 더 무거운 거 짊어지고 달리게 할 게 뻔한데, 왜 이렇게까지 뛰어야 하나 싶었죠(전역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에라 모르겠다'하고 힘을 뺀 채 걷고 뛰고를 반복했죠. 체력측정 따위 그냥 의식하지 않고요. 그때 도로에서 본 하늘과 숲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조직의 요구 없이 혼자 오롯이 뛴 유일한 경험일 겁니다. 자유인이 된 지금은 전혀 달리지 않으니까요.

자연히 의식의 흐름은 손기정 선생의 인생으로 옮아갔습니다. 그는 과연 오롯이 자신을 위해서 달려본 적이 있을까? 뛰면서 봤던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건 뭘까? 개인의 역사를 좋아합니다. 공동체로서는 전혀 쓸모없는 형태의 기억들 말이죠. 누군가는 이걸 추억이라고 부를지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기억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려 하는 건, 개인의 기억이 공동체의 필요성에 의해 납작 눌려버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손기정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을 수도 있겠죠.


“언젠가 35km쯤 달렸을 때 말이야. 길거리에서 호빵을 팔고 있더라고. 괜히 하나 사서 먹고 싶었는데 말이지. 지금도 그 호빵 맛이 궁금하단 말이야.”


저는 이런 이야기들에 더 눈이 갑니다.


솔직히 이건 제 욕망이 만들어낸 상상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달리고 나면 괜히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집니다. 때마침 편의점이 보이고, 그러면 그 어떤 망설임 없이 뛰어가 하나 사 옵니다. 빵빠레 같은 아이스크림을 제일 좋아해요. 말 그대로 ‘크림’을 ‘아이스’로 만든 느낌의 아이스크림이요. 왜 운동을 하고 나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지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 어느 순간 열심히 운동한 제게 아이스크림이라는 보상을 해 주기 시작했고, 몸이 그걸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운동이 다이어트로 이어지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순간 비즈니스 타운의 그 많은 맛집들과 테일러리즘과 손기정 체육공원이 뭔가 하나로 관통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없이 일하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고, 그렇게 나오는 뱃살을 달리기로 관리하라는 사회적 주문 같달까요. 결국 관리를 한다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뭔가를 더 사 먹게 되는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겠지요.


언덕을 내려가니 차분하고 예쁜 가게들이 많이 보여서 하는 소리였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니 눈에 띄는 라멘집이 보였습니다. 대놓고 유자가 들어간 라멘을 판다고 자신 있게 붙여놓았어요. 바로 앞에서 타락 이야기를 해놓고 라멘이라니. 하지만 결국 망설이다가 들어갔습니다.


가게의 풍경이 독특했습니다. 이전 전파사 가게의 흔적을 그대로 둔 채 가게를 꾸몄어요. 처음에는 금동전기라는 가게가 같은 건물에 또 있는 줄 알고 '입구가 어디지?' 하고 헤매 부끄러웠습니다. 다행히 웨이팅 없이 바로 키오스크로 유즈시오라멘을 골랐습니다. 두꺼운 차슈에 비해 면은 굉장히 가늘었고 동시에 닭과 해산물 육수를 쓰고 있었습니다. 맛을 보니 산미는 잘 느껴지지 않은 유자향이 났습니다. 새콤한 맛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좀 아쉬웠습니다. 동시에 유자즙을 테이블 앞쪽에 따로 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차슈가 압도적이었어요. 벽에 뜬금없이 고깃집 이름이 붙어있던데, 고깃집을 겸하는 라멘집이라니. 손님들은 이 사실을 통해 차슈와 가게의 수준을 결부해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걸 걸고 만들었다는 느낌의 차슈였어요. 지방의 크기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삶고 그슬려 낸 상태였습니다.


사실 타인이 만든 음식을 평가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피자집 아들로 살아오면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배우들 앞에서 팔짱을 끼고 ‘자, 이제 나를 즐겁게 해 봐’ 같은 관객의 느낌이랄까요. 설사 그런 권리가 손님에게 있다 한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아니 그것과는 별개로 맛있는 라멘이었습니다. 결국 하이볼도 추가로 시켜버렸습니다.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여기에도 유자즙을 살짝 뿌려봤어요. 술을 좋아하지 않은데도 단숨에 마실 만큼 맛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내려가니 푸른색 조명으로 꾸며진 서울 스카이워크가 보입니다. 근처 벤치에 앉아 만보기를 보니 18000보를 넘었어요. 발바닥이 아픈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더 이상 걷기는 힘들 거 같아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가고 싶은 데야 차고 넘치게 많고, 어차피 모든 곳을 다 가볼 순 없을 겁니다. 어딘가를 간다는 건 그 너머의 길은 결국 닿을 수 없다는 의미기도 하겠죠. 그렇게 유일무이한 개인들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못한 것들이 쌓여가면서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가지 못한 곳들을 추가로 공략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다른 누군가는 간접경험을 통해 환상을 소비하고 있을 겁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 두 가지 길 앞에서 서성대기보다 과감하게 결정하고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분명 갈림길 앞에서 우물쭈물하겠지만요. 집에 가는 길만큼은 그럴 일이 없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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