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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Mar 13. 2024

토스트, 그 욕망의 피라미드

그린사람: ㅅㅂ


그 영상을 봐선 안됐다. 백종원 씨가 예능 MBC<마이 리틀 텔레비전> 나와 토스트를 만드는 유튜브 클립을. 하필 다 만든 토스트를 만든 뒤 컴퓨터 책상에 앉은 뒤였고, 먹으면서 보려고 켠 유튜브 연관 동영상에 그의 토스트 만드는 썸네일이 올라와 있었다. 


왜일까. 칼로리가 높을수록 조리법이 간단한 이유는. 땅콩잼을 식빵 위에 바른다. 바나나를 썰어 위에 올린다. 초콜릿을 썰어 위에 뿌린다. 모차렐라 치즈를 위에 뿌린 뒤 버터를 녹인 프라이팬에 올려 굽는다. 그러니까 필요한 재료는 땅콩잼, 바나나, 초콜릿, 모차렐라 치즈, 버터. 축복인지 저주인지 그 모든 재료가 우리 집 냉장고 안에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욕망의 피라미드가 쌓이기 시작했다. 구운 빵은 두 개. 한 개는 땅콩잼을 바르고 다른 하나는 누텔라를 발랐다. 바나나를 썰어 그 위에 올린 뒤 모차렐라 치즈를 위에 뿌렸다. 이미 구운 빵이기 때문에 버터로 한 번 더 구우면 빵이 질겨질 거 같아 패스. 대신 딸기에 찍어먹으려고 산 연유를 꺼내 포개진 빵의 바깥 면에 발랐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에서 20초. 도대체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걸 만든 걸까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손바닥만한 빵 위에 토핑을 너무 많이 올린 건 아닐까 걱정했으나 욕망의 탑은 무너지지 않은 채 견고했다. 단지 흘러넘쳤을 뿐. 손으로 먹는 건 무리다 싶어 가위로 4등분을 한 뒤 한 조각씩 입에 넣었다. 흘러내린 토핑들을 조각 위에 주섬주섬 올린 채. 그걸 다 먹고 내가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다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예전에 지인으로부터 “유혹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유혹에 넘어가는 것뿐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분명 책의 구절 같은데, 아무리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아 내게는 그저 그가 한 말로써만 기억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 같은 중생이 유혹에서 벗어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그걸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문제는 유혹이 군대와 같다는 사실이다. 둘 다 상대를 굴복시킨 이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수습은 온전히 패배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 덕에 꼬임에 넘어간 우리는 늘 대책 없는 현재를 목도하게 된다. 대개 그 모습은 퉁퉁 부은 얼굴과, 깨질 것 같은 두통과, 한층 늘어난 뱃살이다. 철저히 이성으로 무장했다고 믿는 일상 옆에는 언제나 그것들을 대책 없이 만들 유혹들이 넘실댄다. 빠져들 것들을 아예 주변에 두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술은 애초에 집에 들이지 않고, 게임에 빠질까 봐 일부러 사양이 한 단계 낮은 노트북을 쓴다. 하지만 버터나 땅콩잼을 냉장고 안에 두지 않는 삶이 대체 가능하단 말인가!      


최근에 만난 대학 동기는 (나처럼 후회하는 대신) 유혹을 기꺼이 받아들인 케이스다. 1년 만에 만난 그는 이전보다 훨씬 얼굴색이 좋아져 있었다. 얼굴만 좋아진 게 아니라 한층 굵어진 어깨와 허벅지가 불쑥 눈에 들어왔다. 반년 전부터 자전거를 타고 금강 일대를 트래킹하기 시작했단다. 자정에 소시지에 생맥주를 시켜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아 술을 끊은 건 아니었다. 그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자신은 술을 마시기 위해 운동을 하는 놈이라며 선수를 친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어쨌거나 술 안 마시고 운동 안 하는 나보다는 분명 그가 더 활기차고 건강해 보였다. 의사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빠져들 유혹, 작정하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때로 부럽다. 그 뒤에 올 책임들을 온전히 감당할 자신이 있는 듯 보인달까. 그건 자신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안다는 의미기도 할 테고. 자신의 욕망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려면 일단 유혹에 빠져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수 있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욕망의 피라미드를 한 번 더 쌓아보는 건 어떨까. '다 됐고 어쨌거나 먹은 만큼 운동하면 되는 거 아냐?' 라며 오늘도 빵에 땅콩잼을 바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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