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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ul 18. 2024

홀 서빙도 주방만큼 위험하다


Menu 5. 홀 서빙도 주방만큼 위험하다      


주방이 위험한 건 모두가 상식으로 안다. 하지만 서빙에 도사린 위험요소에 대해선 잘 생각하지 않는다. 서버의 작업 공간도 주방만큼 협소한 경우가 많다. 그 안에서 두세 명이 부대끼며 일한다. 뜨거운 음식을 포장하고 나르면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터진다. 만만하게 생각하다 크게 다친다. 게다가 홀 서빙은 손님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손님이 다치는 순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나 또한 아찔한 순간을 몇 차례 겪고 넘겼다. 주의와 집중. 모든 육체노동의 제1원칙이다. 그간 겪은 몇 가지 사례들을 적는다. 여러분들의 일터에서는 이런 일조차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례 1.      


4년 전 여름, 오후 다섯 시였다. 예상치 못하게 손님들이 들이닥쳤다(왜 준비가 부족할 때만 손님들이 찾아오는 걸까). 손님들에게 물을 내준 뒤, 주방에 주문서를 정신없이 건넸다. 한 번에 17인분을 쳐내야 하는 상황. 내일 다듬을 재료를 사러 간 엄마가 뒤늦게 참전했다.      


반갑긴 한데, 또 반갑지 않았다. 둘이 같이 일하면 동선이 자주 겹친다. 나는 테이블 번호, 빨리 나가야 하는 메뉴 등등을 먼저 파악한 뒤 서빙을 하는 편이다. 엄마는 일단 몸부터 나간 뒤 벌어진 실수를 수습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게 뻔했다. 허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밀린 주문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카운터에 음식이 적체되면 금세 상태가 변한다. 빨리 손님 테이블로 보내야 했다. 너 나 할 거 없이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직진했다.      


그때였다. 엄마가 쟁반을 든 채 주방 쪽을 향해 서 있었다. 나는 바로 뒤에 있었다. “엄마, 나 뒤에 있어!”라고 말하려는 순간 엄마가 쟁반을 든 채 뒤를 돌았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와장창 소리가 났다. 하필 뚝배기. 펄펄 끓는 우동이 내 오른팔로 쏟아졌다. 하필 입고 있던 유니폼이 긴팔이었다. 서둘로 창고로 달려가 상의를 벗었다. 국물이 옷에 달라붙어서 옷이 잘 벗겨지지 않았다. 비명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팔은 이미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여기에 옷을 벗는 과정에서 피부가 다 쓸렸다. 상처를 볼 때마다 통증이 더 느껴지는 것 같아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엄마 대신 내가 다쳐서. 


하지만 안도를 하기에는 가게가 너무 바빴다. 카운터에 밀린 메뉴들을 내보내야 했다. 대충 찬물로 수습하고 카운터로 갔다. 팔을 접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물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미쳤냐며 나를 뜯어말렸다. 결국 일을 접고 동네 피부과로 뛰어갔다. 병원에서는 다행히 1도 화상이라 했다. 그래도 화상 범위가 크니까 주의가 필요하다 했다. 소독을 받고 응급처치로 화기를 가라앉힌 뒤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둘렀다.      


첫날에는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닷새 동안은 머리 감기부터 숟가락질까지 왼손으로 해결했다. 상처가 아무는 나머지 한 달 동안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여자친구(현 아내)와 만나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보면 울면서 당장 때려치우라고 할 게 뻔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게 내 일이니까. 


사례 2. 


우리 매장은 셀프서비스가 아니다. 손님이 별도로 요청해야 필요한 것들을 추가로 드린다. 근데 가끔 서버들 작업공간까지 와서 직접 반찬을 퍼 가는 손님들이 계신다. 그것도 기척 없이. 한 번은 우동을 서빙하려고 뒤를 도는데 뒤에 여사님 한 분이 반찬그릇을 들고 서 계셔서 깜짝 놀랐다. 한 걸음만 더 가까이 오셨다면 아마 여사님이 크게 다쳤을 것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반 시간이 지나도록 잦아들지 않았다. 목이 말랐지만 손이 떨리는 게 티가 날까 봐 그냥 참았다. 지금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는데, 현기증이 날 것 같다. 


그 손님에게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대개 직접 반찬그릇을 들고 오시는 손님들은 심성이 고운 경우가 많다. 내가 일하는 바빠 보여서, 일을 덜어주고 싶어서 작업 공간까지 오시는 거다. 다만 호의와는 별개로 위험한 공간이기 때문에 들어오시면 된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린다. 이 경우 단호함을 담되, 절대 손님이 머쓱하지 않게 대처해야 한다. 


사례 3.      


평소처럼 일하던 중이었다. 테이블을 정리하고 카운터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손님이 카운터에서 계산을 요청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던 중 쟁반과 몸이 붕 뜨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몸이 땅바닥으로 꼬꾸라졌다. 그다음 쟁반과 그릇이 내 얼굴로 쏟아졌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떠난 손님이 바닥에 물을 흘렸는데 테이블을 정리할 때 이를 미처 보지 못했다. 그 물을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 쪽팔림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음식물 쓰레기를 온몸에 뒤집어쓴 건 아무렇지 않았다. 머리가 아니라 등부터 떨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집에 오는 내내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조상신께 빌고 빌었다.


사례 4.      


업체에서 보내주는 도시락 용기는 엄청 날카롭고 마감이 거칠다. 여기에 베이면 칼에 썰린 것만큼 아프다. 포장을 하다 보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손을 베인다. 조심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식당 서버로 일하다 보면 포장 과정에서 꽤 많은 생채기가 생긴다. 밴드를 붙여봐야 아무 의미 없다. 컵도 씻고 손도 씻는 과정에서 다 떨어져 나간다. 겨울에 손을 베이면 상처가 쉽게 갈라지고 터진다. 주방에서 일하나 서버로 일하나 손에 물 닿는 건 똑같다. 식당에서 일하는 순간 고운 손은 없어진다 봐도 좋다. 자기 전에 열심히 핸드크림 바르는 것만이 답이다. 그래봐야 또 썰리고 터지겠지만.      


사례 5.      


대개의 경우 매장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의 거리는 1미터 남짓이다. 70cm 정도로 좁은 가게도 종종 보인다. 우리 매장은 1미터 10cm 정도다. 넉넉해 보이지만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오가기에는 여전히 좁다. 서빙 과정에서 의자나 테이블 모서리에 손이나 허벅지, 옆구리를 부딪치는 경우가 생긴다. 성수기가 되면 슬슬 멍의 개수가 늘어난다. 허벅지에 생긴 건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 하지만 손등에 생긴 건 정말 아프다. 퇴근하고 보면 그 자리는 영락없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그렇게 11년째 멍을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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