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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Nov 10. 2015

반복되는 인재, 사고가 아니라 살인

방글라데시 | 의류공장 화재 참사

방글라데시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의류 수출국으로, 의류산업은 매년 220억 달러(약 23조 원) 규모에 방글라데시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60%는 유럽으로, 23%는 미국으로 수출된다. 방글라데시는 '한국'을 모델로 삼아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꿈꾸며 1980년대부터 섬유산업을 키워오고 있다. 수도 주변으로 밀집된 4,500여 개의 의류공장에는 360만 명의 노동자가 고용되어 있고 대부분이 여성 노동자다.


노동자 대부분은 착취에 가까운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온갖 병을 얻기도 하고 끊이지 않는 사고 속에서 한순간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희생과 노력은 실종되고 '기적'만 남은 '한강의 기적'처럼 이곳의 사정도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 나오는 1960~70년의 서울 청계천 일대 봉제공장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2012년 11월 25일 수도 다카 근교 의류공장 밀집 지역인 아슐리아에 위치한 타즈린 패션 8층짜리 건물에서 불이 났다. 당시 8층짜리 공장에는 1,150명의 노동자가 주문 납품일을 맞추기 위해 야간작업을 하고 있었다. 화재 경보가 울렸지만, 공장 매니저들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작업을 하라고 지시했다. 비상구는 없었고 창문마저 쇠창살로 막혀 있어 탈출은 불가능했다. 대부분이 잠긴 문 앞에서 압사되거나 질식하거나 불에 타 숨졌다. 옥상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불길을 피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24일 저녁 시작된 화재는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진압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망자가 9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수색이 진행되면서 100여 구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됐다. 화재로 11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00명 이상의 사람이 다쳤다. 이 화재는 방글라데시 의류업 사상 최악의 화재 사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2013년 1월 26일 다카 북서쪽의 모하마드뿔에 있는 의류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7명이 숨졌다. 지난 타즈린 공장 화재에 이어 다시 발생한 화재로 분노한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항의하고 안전조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회 각계에서는 의류공장의 안전기준에 대한 비난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3년 4월 24일 다카 근교 사바 지역에 의류공장 건물이 무너져 1,100여명이 넘는 인명을 앗아갔다. 붕괴 징후가 보여 전날 사람이 피신했지만, 공장주는 노동자들을 다시 공장으로 돌려보냈고 다음 날 재봉틀의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건물은 붕괴되었다. 붕괴 사고 3주가 지난 5월 13일, 당국은 생존자 수색작업 중단을 선언했다.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는 1,136명으로 전 세계 의류산업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작업환경 개선 요구...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  라나플라자 건물 잔해와 뒤엉킨 옷가지와 의류 원단, 노동자들이 쓰던 줄자 등이 아직도 수습되지 않고 붕괴 현장에 흩어져 있다.  ⓒ 이혜령


2012년 11월, 수많은 희생을 낸 아슐리아 지역 봉제공장 화재 이후, 열악한 작업환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저임금과 공장의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세상이 변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 게 없어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류공장의 화재로 또다시 노동자 7명이 숨졌다. 그리고 반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1,136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플라자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모두 '예견된 인재(人災)'라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타즈린 공장 화재의 경우, 화재 경보가 울렸지만, 공장 매니저들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작업을 하라고 지시했고, 처음 불이 시작된 곳도 불법으로 적재되어 있던 방직물이었다. 그리고 사바의 라나플라자 봉제공장 사고 역시, 붕괴의 징후가 보여 전날 사람들이 피신했지만 "셔머샤 네이(문제없어)"를 외치며 다음 날 그들을 다시 사지로 밀어 넣었고 붕괴 직전의 건물은 수백 개의 재봉틀의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붕괴된 라나플라자 건물은 애당초 6층짜리 건물로 시공되었지만, 불법 증축하여 3층을 더 올린 것이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이 사고나 화재에 대한 예방책 없이 열악한 작업환경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법규를 무시한 부실시공, 당연시되어온 뒷돈 거래, '괜찮아, 문제없어' 등과 같은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된 '안전 불감증', 사회적 책임을 상실한 글로벌 대기업, 무관심한 소비자. 그 누구도 이번 참사의 비난을 피해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형참사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사건·사고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2013년 10월 8일 가지뿔, 방글라데시 수도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이곳 산업단지 아스와드 의류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최소 10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탈출 도중에 다쳤다. 창고로 옮겨붙은 불은 물과 소방장비가 부족해 상당 시간 동안 진화되지 않았다. 화재 당시 직원 대부분은 퇴근한 상태였지만, 2층에서는 170명의 직원이 남아서 초과 근무를 하고 있었다.


2014년 1월 9일, 방글라데시 남부 항구도시 치타공에 있는 수출가공공단(EPZ)에서 수당 삭감에 반발한 노동자 5,000여 명이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실탄을 발사해 시위에 참여한 20세 여성 노동자 1명이 숨졌고, 경찰 5명을 포함한 20여 명이 다쳤다.


라나플라자 대참사 이후, 최저임금은 3,000따까(한화 4만 원)에서 5300따까(한화 7만 원)로 올랐다. 바뀐 최저임금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수당을 축소 지급해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  라나플라자 참사 현장에서 남아있던 성조기 패치  ⓒ 이혜령


라나플라자 대참사 이후, 떠나는 기업들


방글라데시 정부는 지난해 7월 노조 형성의 자유를 포함한 노동자 권리 향상을 담은 노동법을 개정하고 최저임금도 77% 인상했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노조 설립을 방해하는 공장주들에게 끊임없는 폭력과 살인 위협과 성적 협박을 받고 있다. 그리고 최저임금 역시 최저생활기준에 미치지 않으며,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2013년 하반기 다카 경제연구소 CPD가 도시에서 기초 생활을 위해 필요한 최소 금액을 6,450따까(한화 8만 5000원)로 산정했다).


참사 후, 글로벌 의류기업은 전혀 다른 행로를 걷고 있다. 30여 개의 유럽계 기업 다수는 사고 재발 방지와 의류 산업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안전협약' 가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일본의 유니클로와 미국의 월마트 등은 자체 안전기준을 고수하겠다며 방글라데시의 노동안전협약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체 안전기준에 따라 안전성을 평가하겠다는 것으로, 기업의 자가점검은 관리운용의 효율화를 위해 느슨하게 진행될 우려가 있다.


한편 미국의 월마트와 월트 디즈니는 거래 중단과 철수를 결정했다. 실제로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참사 이후, 많은 글로벌 의류 기업들은 베트남과 캄보디아,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시키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을 눈감아오다 이러한 대형 참사가 일어나자, 비윤리적인 경영에 대한 자각이 아니라 '노동 착취 상품'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타격을 줄까 두려워 빠르게 발을 빼고 있다.


'언 발의 오줌 누기'와 같은 근시안적인 해결책이 아닐 수 없다. 글로벌 의류 기업들이 철수한다면 수많은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질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여 만든 제품들은 '임금착취와 열악한 작업환경'이 없는 곳에서 만들어진 옷이라고 새로운 광고를 내며 이미지를 새롭게 덧칠할 게 뻔하다.


우리는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워하고 진심으로 슬퍼하지만, 우리가 쓰고 있는 물건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불편해한다. 작업장 환경개선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이들의 외침에, 화재와 붕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우리는 침묵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라나플라자 참사는 '왜 소비자가 착한 소비를 해야만 하는지, 왜 소비자가 똑똑한 소비를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오늘도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수많은 개도국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열악한 근로조건 아래에서 인권이 상실된 채 방치되어 있다. 어쩌면 우린 '몰랐다'는 순진한 핑계로 혹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으로 제2, 제3의 라나플라자의 참사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업이 착한 경영을 하고 사회적 책임을 할 수 있도록 견제하고 격려하는 것은 소비자, 우리 모두의 몫이다. 불편하지만 우리의 관심이 모여야 제2의 라나플라자 참사를 막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포스팅은 오마이뉴스에도 중복 게재된 글(2014년 5월 11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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