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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Nov 07. 2015

방글라데시 대참사, 우리랑 다를 게 뭔가

최소 1134명 사망한 라나플라자 참사 1년, 그곳에 가보니

2014년 4월.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2년간의 방글라데시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1년 만에 우리는 2주간 짧은 여정으로 지난 4월 1일 다시 방글라데시를 찾았다. 2주간 쉬지 않고 방글라데시 남북을 왔다 갔다 한 탓에 체력은 바닥이 나 있었다. 평소 비행기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데 어찌나 피곤했었는지 비행기에 타자마자 우리 둘은 곯아떨어졌다가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해서야 잠에서 깼다. 꿈만 같았던 2번째 방글라데시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은 16일이었다. 짙은 안개로 예정보다 조금 늦어져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온 시간은 오전 9시 반쯤. 인천 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세월호 침몰 사고 소식이었다.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는 정부, 답답한 구조작업. 하루하루 너무도 긴 날, 아까운 날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고 슬픔은 분노로, 분노에서 무기력함으로 변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세월호 침몰. 어느덧 8일째 날이 지나가고 9일째로 접어들었다. 더 늦기 전에 다녀온 사진과 메모들을 정리해야 했다. 사실, 이 글을 지금 이 시기에 적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두 번째 방글라데시 여행의 첫 이야기는 세월호 참사와 너무도 닮은 라나 플라자 붕괴 이야기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참사   

▲ 라나 플라자 참사 현장. 원래 라나 플라자가 있던 장소.  ⓒ 이혜령
▲ 4월 24일을 노동자 순교의 날로 정하자는 내용의 현수막 13 Apr. 2014  ⓒ 신상미

4월 24일은 세계 최악의 사고인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가 발생한 지 1년 되는 날이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의류공장인 라나플라자 붕괴사고로 최소 1,134명(부상자 25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년 전 방글라데시는 그해 1월에 있었던 총선으로 꽤 시끄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방글라데시를 나는 치를 떨며 떠나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 소식을 들었다.


구조 작업은 너무 더디기만 했고 사망자는 자꾸만 늘어갔다. 실종자 수는 정확한 통계조차 없었다. 붕괴 사고가 일어나고 일주일 후, 사망자 수는 430명, 실종자 수는 150명이라고 밝혔지만 1년이 지나 지금 확인된 사망자만 1,134명이다(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사고 이후 방글라데시 정부가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사고의 원인 몇 가지가 밝혀졌다. 붕괴의 징후가 보여 전날 사람들이 피신했지만, 관리인들은  별문제가 아니라며, 다음날 그들을 다시 사지로 밀어 넣었다. 붕괴 직전의 건물은 수백 개 재봉틀의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붕괴된 라나플라자 건물은 애당초 6층짜리 건물로 시공되었지만, 불법 증축하여 3층이 더 올려졌다.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지만 법규를 무시한 부실시공, 당연시되어온 뒷돈 거래, '괜찮아, 문제없어'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된 '안전불감증'으로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수많은 실종자, 유족과 피해자들에 대한 기약 없는 보상금 문제,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 등 라나플라자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참사 1년, 방치된 사고 현장... 뼈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


▲ 방글라데시 봉제공장 붕괴 현장 동네 꼬마들은 철조망에 개구멍을 만들어 이곳을 드나들고 있었다.  ⓒ 이혜령

방글라데시 수도 도심에서 1시간여 정도 떨어진 사바의 라나플라자에 가기 위해 로컬버스를 탔다. 여행의 끝 무렵이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차를 빌려 편하게 다녀올까, 살짝 고민했지만 원래 계획대로 로컬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있다는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가능한 조심스럽고 소란스럽지 않게 그곳을 가고 싶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엄청난 교통체증으로 2시간이 넘게 걸려 사바에 도착했다.


라나플라자 참사 현장은 사바 행 버스 마지막 종착지의 건너편,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대도로 변에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지나다녔을 것이다. 그렇게 방치된 채 참사의 현장을 마주하는 것은 이들의 일상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붕괴된 건물의 잔해물은 원래 건물이 있던 장소의 뒤편 공터로 옮겨졌다. 현장에서 만난 경찰은 익숙한 듯 마치 가이드처럼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도록 안내해줬다. 그리고 사실상 이곳에서의 모든 조사는 종료되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지만, 그는 자신이 이리로 파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붕괴의 잔해물이 바로 옆으로만 옮겨졌을 뿐,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보였다. 건물 잔해와 뒤엉킨 옷가지와 의류 원단, 작업하던 사람들의 물건으로 보이는 줄자 등 아직도 현장은 수습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다.

▲ 라나 플라자 붕괴 현장 라나 플라자 붕괴 현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  ⓒ 이혜령

각종 철조망으로 사고 현장을 보존(?)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잔해물 속을 뒤집고 있었다. 처음에는 실종자의 가족들인가 했지만,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잔해더미 속에서 팔 만한 것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자 아이들은 흩어졌다. 아이들에게 "무얼 하고 있느냐"라고 묻자 아이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질문을 바꿔 "무엇을 줍느냐"라고 묻자 달려와 철근 덩어리를 내 앞에 던졌다. 그새 다른 놈이 달려와 철근을 들어 보이며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철근을 주워 무엇을 할 거냐"라고 묻자, "철근을 팔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아이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잔해더미 위에 서 있었다.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데 한 꼬마애가 우리를 부른다. 꼬마의 손에는 사람의 뼈가 들려 있었다.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뼈를 요리조리 돌리다 멀리 허공으로 던져버렸다. 라나플라자 참사 현장에서 아이들이 실종자의 뼈를 가지고 논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경찰의 말과는 달리 잔해더미 속에는 여전히 실종자들의 유해와 많은 증거물이 남아 있을 것이다.


부정부패와 비리로 가득한 나라 방글라데시, 우리랑 뭐가 다른가


▲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 희생자 추모비 2013년 4월 24일, 라나 플라자 참사 이후,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이혜령

누군가는 참사의 현장에서 잔해물을 뒤져 고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고 현재도 진행 중인 참사의 현장이다. 현장을 보존해야 할 정부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으며 라나플라자 참사 복구와 피해 성금으로 모인 돈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라나플라자 참사 이후 작업장의 안전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자 방글라데시는 지난 7월 노조 형성의 자유를 포함한 노동자 권리 향상을 위한 노동법을 개정하였다. 최저임금도 3,000따까(한화 4만 원)에서 5,300따까로 올랐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노조 형성을 방해하는 공장주들에게 끊임없는 폭력과 살인 위협, 성적 협박을 받고 있다. 그리고 최저임금이 77% 대폭 인상되긴 했지만, 최저생활 기준에 미치지 않으며,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라나플라자 참사에 연관된 27개 대형 의류 브랜드 업계는 유족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을 아직도 지급하지 않았다.


내가 만났던 방글라데시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라지만, 방글라데시라는 나라 전체로 본다면, 부정부패와 비리로 가득한 나라다. 라나플라자는 법규를 무시한 부실시공과 뒷돈거래, 안전 불감증, 불안정한 시스템 등의 측면에서 볼 때 이미 예정되었던 인재였다. 사건을 수습하는 정부는 너무도 무능해 보였고 한심스러웠다.


▲ 라나 플라자 참사 현장 붕괴된 건물의 잔해  ⓒ 이혜령

라나 플라자 참사 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그로 인해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제2의 라나플라자, 제3의 라나플라자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오락가락 갈팡질팡하는 정부, 작동하지 않는 재난 대책 시스템, 책임 전가, 원칙보다는 관행, 안전 불감증, 유언비어, 부주의하고 선정적인 보도 오보·편파 보도, 종북 선동 및 미개한 국민이라는 피해자를 향한 손가락질. 최근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면서 내가 한심하다고 느꼈던 방글라데시의 시스템과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이 상황 그리고 시스템을  바로잡을 힘은 우리에게 있다.
그 힘의 시작은 공감과 분노에 있다. 남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처럼 느낄 줄 알아야 하며, 부당함에 대한 화, 분노를 느낄 줄 알아야 한다.

분노하는 것은 미개한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미개한 것이다. 사회는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을 건강하게 표출하게 하여야 하고 이러한 목소리를 모아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조차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누르고 있는 이 사회가 정말 건강한 것인지 묻고 싶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으로 큰 기적을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포스팅은 오마이뉴스에도 중복 게재된 글(2014년 4월 25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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