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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Mar 05. 2022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야기

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

내 목숨이 위험에 처하고 나의 땅과 후손이 위험에 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해하는 것, 이건 의무 아닐까? 어떤 말로 이 세상을 정의할 수 있을까? p.74


몇 개월이면 끝이 보일 줄 알았던 코로나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를 인류문명에 지구가 보내는 경고라고 말하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사실 이러한 경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산업화 이후 소비적인 인류문명의 영향으로 수많은 생물종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고,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빙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해마다 극심한 날씨로 인한 사람들의 삶은 파괴되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오랜 경고와 전 세계를 멈추게 했던 코로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우리는 멈출 수 있을까?


인류가 동물에 영향을 미친 것은 굶주림과 질병에 맞서 생존 투쟁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이 한계를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며 자신이 도를 넘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p.156


2100년까지 20세기 초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온도가 2℃가 오른다면, 해수면이 56㎝상승해 4,900만 명의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기후위기는 더 많은 홍수와 가뭄, 폭염 등 극심한 날씨를 초래할 것이며, 산호를 비롯한 수많은 생물들을 멸종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다. 수많은 기후위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뉴스가 매일 쏟아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왜 행동하지 않을까? 왜 변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기후위기에 대한 많은 사실들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화산 폭발음을 녹음한 기기에서 소리가 뭉겨져 백색 잡음밖에 들리지 않는 것처럼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는 백색 잡음으로 흩어져버린다.


“그래, 상상할 수 있겠어? 너희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2260년까지도 살아 있을 거라고! 너의 시대를 상상해 보렴. 할머니는 2008년에 태어났는데, 너희는 2260년에도 살아 있는 사람을 알게 되는 거야. 그게 네가 연결되어 있는 시간이야. 250년 넘게 말이지. 그건 너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간이야. 너희의 시간은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누군가, 너희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자 너희가 알고 사랑하는 시간, 너희가 빚는 시간이란다.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어. 너희는 하루하루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단다.”
p.354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설명하는 숫자와 그래프가 내가 아닌 전문가들의 영역이며, 기후위기로 인한 100년 후에 일어날 위험경고는 여전히 우리에겐 시간이 많다는 착각을 들게 만든다. 마치 영원과 같은 100년간의 미래 시간 동안 새로운 기술이 해결해주지 않을까,라는 안일함 기대감도 섞여있을 것이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거대하고 불확실하다는 편견으로 인한 기후위기를 여전히 먼 미래, 먼 나라, 나와는 떨어져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 줌의 과학자들에게 맡기지 말고, 인류가 등장한 이래 지구에 일어나고 있는 최대의 변화에 대해 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건 과학자들이 할 수 있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과학 소통의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통역자가 없으면 그들은 문외한에게 말하는 셈입니다. 선생이 작가이면서도 이 문제들에 대해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학이나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작금의 문제를 이해한 사람이라면 그 무엇도 이보다 중요시하지 않을 거예요.      
p.76


기후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후위기’와 ‘우리의 삶’을 연결하는 사회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구의 건강, 지구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는 수많은 생물의 건강과 인간의 건강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100년 전과 100년 후의 삶을 그리는 상상력 말이다. 무언가를 그릴 수 있다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상상하기는 보다 더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그 해결책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문제 해결에 성공한다면, 석유가 값어치를 잃거나 심지어 금지된다면, 전체 경제의 토대가 허물어진다. 러시아가 무너지고 캐나다 앨버타주가 파산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가 제2의 시리아가 되고 노르웨이가 불황에 빠질 것이다. 이것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석유 생산은 서구의 이익에 주요하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p.232-3


<시간과 물에 대하여>은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사회과학 혹은 기후학을 다루는 과학책이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문학책이면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역사책이자 여행책이기도 하다. 그래프와 수치 등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언어들을 대신해 북유럽과 인도의 신화 이야기, 마그나손의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아이슬란드의 근현대사,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 생물학자였던 외삼촌 존과 멸종 위기에 처한 악어 이야기, 빙하를 비롯한 사라진 것들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수백 년의 세월, 그 속의 다양한 사람들과 수많은 생물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상상 가능하게끔 보여준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상기시키며 우리에게 닥친 위기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저는 어딜 가든 인류 차원에서 이야기합니다. 티베트인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비심 같은 내면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며 오늘날의 현실을 보건대 우리에게는 지구적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낡은 관념, 자신 말고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는 명백한 구별은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이젠 비현실적입니다. 이 세상은 긴밀한 상호 의존으로 엮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지합니다. p.113


<시간과 물에 대하여>를 읽으며 자연과 멀어진 현대 문명의 삶을 경고함과 동시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야기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를 떠올렸다. <오래된 미래>는 오랜 세월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 온 라다크 마을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세계화와 서구식 개발로 인해 파괴되는 환경(빙하) 그리고 오랜 세월 땅과 공존을 이어온 전통적인 삶을 잃고 분열되어 가는 사회 등 우리가 직면한 재앙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희망은 오래된 전통(이야기) 속에 찾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미래>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마을인 라다크를 통해 우리 모두를 생각하게 한 것처럼 <시간과 물에 대하여>의 다양한 이야기가 우리 모두를 연결 짓는 연결성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스어 ‘아포칼립스’의 진짜 의미는 무언가를 ‘폭로’한다는 것이다. 최근 사건들은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폭로하고, 스모그와 스모크(연기)를 폭로하고, 우리의 공급망을 폭로하고, 정부의 능력과 무능력을 폭로하고, 불평등과 특권을 폭로한, 진정한 아포칼립스였다. 이 사건들은 건강이 일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지구 위 모든 사람들의 건강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구 생태계의 건강과도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p.356


지구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지금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눈부신 진보와 모든 업적은 혼돈을 야기한 인류의 치욕적인 실수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어떤 것도 바다에 비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빙하만큼 장엄하지 않고 어떤 것도 한밤의 우림만큼 신비롭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업적을 달성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과학에 눈을 감고 미래 세대의 삶과 행복을 외면했다면 그 업적은 칭송받지 못할 것이다.” (295쪽) 전 세계가 멈춰버린 코로나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다가오는 위기 속에 ‘지구를 망쳐버린 세대’로 기록될지,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한 세대’로 기록될지 말이다.

코로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시간과 물에 대하여>

-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지음 |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2020

- 분야/페이지 | 사회과학 > 환경실태 / 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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