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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May 12. 2022

불의를 향한 분노의 연대

책 <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 같은 것은 없다. 의도적으로 강요한 침묵, 듣지 않겠다는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 - 아룬다티 로이 p.280


위로는 건네는 책들이 있다. 다정한 글과 따뜻한 메시지에서 온기를 느끼고 위로받는다. 하지만 전혀 다른 류의 글에서도 위로를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로 여성학 관련 도서다. 솔직히 이전까지는 폭발할 듯한 분노만 느꼈을 뿐 위로와 같은 느낌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를 읽으면서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이 이전의 책들과는 달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마 나의 위치나 환경이 변해서인 것 같다. 예전보다 더 여성이 겪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눌 일이 많아졌고, 그만큼 공감과 더불어 답답한 상황과도 많이 마주해야 했다. 책장을 넘기며 얼마 전 답답했던 대화가 자꾸만 떠올랐고, 책은 그때 하지 못한 나의 말과 분노를 대신 전해주었다.


분노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길이라는 것이므로. 우리가 할 일은 분노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p.28


<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는 ‘남성은 안전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남성도 괴롭힘을 당할 수 있고, 안전에 대해 우려한다. 하지만 여성의 우려와는 다르다. 진짜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인해 여성의 삶이 얼마나 제한되고 구속받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 오해로 인해 택시에서 투신해 목숨을 잃은 여대생 소식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여대생 대 택시 기사의 편으로 의견은 양분화되었지만, 왜 여대생이 그토록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토론되지 않았다. 데이트 폭력과 불법 촬영 등만이 여성의 삶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은 매일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지만, 너무 잦아 망상처럼 치부된다.


“불의를 향한 분노는 나를 움직이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건 그 자체로 지속되는 감정은 아니죠.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전환되어야 해요. 분노가 촉매는 될 수 있어도 그것에만 기대서는 움직일 수 없어요.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파괴적으로 변하니까요. 그게 사랑이 중요한 이유죠. 사랑은 우리가 가장 아끼는 것, 갈망하는 것으로 우리를 데려다줍니다.” p.375-376


많은 여성들은‘안전하게 집에 머물러 있어라’, ‘밤늦게 다니지 말아라’등 여자의 행동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말을 일상에서 매일 듣고 경험한다. 여성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남성도 안전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남성들이 있다. 그럼 이야기는 종료됐다. 자신은 여성 혐오자나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남성 카르텔은 여성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나오는 분노를 부인하는 방식으로, 여성을 입 다물게 하는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


‘분노는 위험, 불공평, 불의로부터 우리를 가장 잘 보호해주는 감정이다.’(236쪽)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제약하는 폭력과 불의에 분노해야 하며,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분노를 우리는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바로, 그곳에서부터다.


p.140

시간이 지나면서 젠더에 대한 태도도 진보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 진보가 얼마나 확실하지 않은 것인지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깨닫기 전까지는 나 역시 분명 그렇게 믿었다. 원칙적으로 성평등과 성역할 유연성을 지지하는 많은 남성이 실천에 어려움을 겪는다.


p.379

우리 모두는 우리가 믿는 것을 믿을 권리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명백한 차별에 마땅한 이름을 부여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온정적 성차별은 여전히 성차별이다. 종교적 성차별은 여전히 성차별이다. 이 둘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서 작동하지만,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향해 나선형으로 뻗어나가며 역동적이고 복잡한 차이와 지배를 형성한다.



<우리의 분노는 길을 만든다>

- 소라야 시멀리 | 류기일 | 문학동네, 2022

- 분야/페이지 | 사회과학 > 여성학 / 5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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