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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Aug 14. 2022

'이야기'할 수 있다면, 슬픔은 견뎌질 수 있다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저는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사건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외면하는 현대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 저는 천안함 사건이라는 렌즈로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고자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의 취약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드러내며 쉽게 답할 수 없지만 중요한 질문을 만나게 해 줍니다. 저는 우리가 그 예민한 질문들을 직시할 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p.16)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사회적 약자의 몸과 건강을 연구하고 차별과 사회적 고립이 사회적 약자의 몸을 어떻게 아프게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의 저자인 보건학자 김승섭 교수의 신작이다. 이 책은 천안함 생존장병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비극에 대한 한국사회의 태도와 트라우마 생존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솔직히 난 이 책의 저자가 김승섭 교수가 아니었다면, 다시 천안함 이야기를 이렇게 빨리 집어 들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분명 어떤 성향의 사람이 글을 썼는지를 살펴보고 조심스레 책을 집어 들게 되었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은 실로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었다. 나 역시 희생당한 장병들에 진심으로 애도했고, 사건이 제대로 밝혀지길 바랐다. 사건 직후 많은 의혹들이 쏟아졌지만, 군의 대처는 신뢰감을 얻기 힘들었다. 그래서 천안함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누군가 사고 원인을 은폐하고 있다고 생각됐다. '너무도 안타까운 희생 그리고 사건을 은폐하는 세력', 한 치의 의혹도 없이 수사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옳은 길이라 믿었다. 하지만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읽을수록 그동안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이고 옳다고 생각하며, 그에 맞는 근거들만 선택적으로 취합하고 선택적으로 공감했던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세월호 생존 학생과 천안함 생존 장병의 고통을 모욕하고 가짜 뉴스에 호응했던 사람들이 어리석은 극소수일 뿐 그러한 현상을 한국 사회 전체로 확대 생각할 수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피해자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저열한 비난을 하는 사람 자체는 소수였을지 몰라도, 우리 편의 고통만을 선택적으로 공감하고 우리 편에 유리한 근거만을 선택적으로 취합하는 성향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p.167-8)


천안함과 세월호는 정반대의 사건이라 여겨지고 있지만 두 사건에는 많은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두 사건은 유사할 수밖에 없지만, 두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왜 그렇게 달랐을까? 정치적으로 예민한 두 사건이었고, 여전히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정치적 이득에 따라 이용하고 있다. 우선 이쯤에서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에 대한 요구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나의 태도’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태도와 시선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자는 것이다.


글을 읽기도 전에 “너는 어느 편이냐”라고 물을 것이 분명한 한국 사회에서 두 사건 모두에서 동료를 잃은 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고, 그 생존자들의 트라우마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어떤 태도로 과거를 살아왔는지 더 잘 알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 과연 받아들여질지 걱정스러웠습니다. (p.260)


네 편 내 편으로 나누는 진영 논리로 “보수는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다는 생존 장병의 말에서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선별적으로 공감했으며, 그래서 한쪽으로는 아예 무관심했다. 어떠한 올바름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나 역시 잊고 있었다. 아니 지우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일하던 동료를 잃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차가운 서해 바다에서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을 잃었던 생존 학생과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던 전우들을 잃었던 생존장병을 모두 만나 그들의 상처를 기록하는 작업을 했던 제가 보기에 이 두 사건은 중요한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트라우마 생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상대 진영이라 여겨지는 피해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진영 논리의 폭력성과 편향적 사고가 만연했던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p.137-8)


‘천안함 침몰 후 58명의 장병이 사건 현장에서 구조되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구조된 생존장병들의 삶에서 천안함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만약 내가 같은 일을 겪었다면 10년쯤 지나면 훌훌 털고 살아가는 게 가능했을까? 나였다면 어땠을까? 한국 사회가 무관심했던 10년이 넘는 시간도 이들의 삶을 치유하는데 약이 된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고립되어 있었다. 가짜 뉴스에 생존장병의 고통은 모욕받았고, 상처는 치료받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괜찮은 척’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말하지 못한 트라우마의 기억은 종종 예고 없이 나타났다.


많은 생존장병이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감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천안함 장병들과 악수를 하는데 가만히 보니 그 남자가 손을 건네는 사람은 모두 사망한 장병들이었습니다. 악수하지 말라고 고함을 치다가 잠에서 깨어나는 악몽이 반복되었습니다. (p.34)


 책에서 들려주는 생존장병의 이야기들은 천안함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과 진영논리에 휩싸여 정작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야 했던 재난 생존자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나와 너는 다른 사람이라고 선을 긋고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작가에게도 천안함 사건은 오랜 시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주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에 발생한 사건을 두고 10 넘는 세월이 지난 현재에서도 연구자가 분석하고 기록할  없다면 과연 언제면 가능한 것인지 이러한 예민한 질문들을 직시할   나은 사회가   있다는 믿음으로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천안함 사건을 시작으로 세월호, 쌍용차 해고 노동자, 성소수자 등 여러 사례의 연구를 함께 제시하며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일’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여전히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목소리 낼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하는지 묻는다.


많은 사람이 가장 아픈 상처를 말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고 억울했는지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지요. 기억하고 말하는 과정에서 다시 경험하게 되는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고, 어렵사리 꺼낸 말에 “네 잘못도 있어”라고 냉담하게 응답하는 세상이 두렵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강요된 침묵으로 위장된 평화는 가장 약한 이를 또다시 피해자로 만듭니다. ‘언어’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그 사건’이 생존자의 몸속에서 여전히 진행 중일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지요. (p.258)


작가가 한 문장 한 문장 힘을 주어 눌러쓴 당부 같은 글에서 어느 한 부분 덜어내기 어려워 글이 길어졌다는 출판사의 긴 책 소개글이 인상적이다. 긴 소개글 마지막에는 책 내용에는 담지 못한 책 표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표지는 재생펄프를 사용하였고 코팅을 하지 않아 물이 닿으면 젖고, 손때가 묻고, 쉽게 찢어질 수 있다고 한다. 다치고 찢기고 울 수 있는 취약함을 담았고,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깊은 슬픔과 분노가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는 근본적인 힘인 것은 분명(p.11)’하지만 더 나은 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너무도 중요하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애도’해야 하고, 참사의 상처와 함께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 기억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p.191)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해주고 그 고통을 비하하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존자의 몸속에서 고통의 에너지로 머물던 사건은 언어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p.259)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사건은 거대한 희생을 겪고도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바꾸지 못해 발생한 미래입니다.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삶을 앗아갈, 아직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참사의 과거일 수도 있습니다”


#김승섭 | #난다, 2022

분야/페이지 | 사회과학 > 인권 /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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