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망명과 자긍심>
“모두가 해방되지 않으면, 아무도 해방될 수 없다!”
일라이 클레어는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 젠더 퀴어, 페미니스트, 친족 성폭력 생존자이자, 장애·환경·퀴어·노동운동가 그리고 시인,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그는 앞서 열거된 어느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정의되는 것을 거부한다. 모든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어느 하나로만 그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망명과 자긍심>은 퀴어, 장애, 환경, 페미니즘, 계급, 인종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러한 이슈들이 복잡한 교차성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환경문제와 노동 문제 등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적인 고민이 필요하며 단일 쟁점에 매몰되는 범주화와 범주화의 폭력성에 저항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정의 내릴 수는 없다. 어떠한 정체성도 단독으로 개인을 제대로 소개하기엔 부족하다. 각각의 개인은 성별, 지역과 경험 등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정체성으로 범주화되어 성별, 지역, 장애, 학력,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차별 혹은 타자화되었던 씁쓸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모든 정체성은 안팎으로 복잡하게 얽힌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은 타자화가 아닌 관계 맺기부터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퀴어, 장애, 환경, 페미니즘, 계급, 인종 이슈 등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료 시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p.18
“두 가지 타당한 요구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둘 중 어느 쪽도 충분히 요구하지 않고 있는 거란다.” 우리에겐 나무와 사람 모두를 살리는 경제 체제가 필요하고, 모든 인간의 욕망과 주권을 존중하는 성 문화가 필요하다.
p.43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비장애 몸과 정신의 우월성을 더 강화한다. 또한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인 각각의 장애인을 영감의 상징으로 둔갑시킨다.
p.91
익명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시골 생활의 실상이다. 나는 도시에서 이런 점을 종종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편협함과 폭력에 직면했을 때 익명성은 어느 정도의 보호를 제공한다.
p.129-30
얼마면 흔쾌히 지불하겠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죄책감을 느끼자는 게 아니라, 책임감을 갖자는 것이다. 우리의 무분별한 소비가 어떻게 개벌의 수요와 논리를 만들어내는지, 끝없이 재생 가능한 자원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만들어내는지를 인식하자는 것이다. 나무와 연어가 정말로 다시 재생 가능한 자원이 되려면, 우리는 그것들을 오랜 시간 훨씬 덜 소비해야 한다.
p.218
장애인권 운동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억압적인 체계들을 문제로 지목한다. 요컨대 치료되어야 하는 것은 비장애 중심주의이지 우리의 몸이 아니다.
우리는 의료적 치료보다는 시민권, 동등한 접근,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 독립적으로 살아갈 기회, 장애인을 존중해주는 양질의 보건 의료, 차별이 철폐된 교육을 원한다. 우리는 세계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지, 고립되고 기피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p.220
장애에 가해지는 억압을 외면하고, 비극적이고 무능력한 불구자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시민권보다는 연구에 돈을 쏟아붓는다.
(~중략~) 장애 이미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선 모금 방송이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만약 직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학교에 다니는 장애인, 행복하고 헌신적인 관계를 누리는 장애인, 부모, 교사, 활동가, 연기자, 예술가, 변호사, 목수, 간호사인 장애인 같은 이미지가 풍성하다면, 이 동정 잔치도 지금처럼 심각한 문제가 되진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