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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노트

동물권을 넘어 혼종정치공동체로

수 도널드슨ㆍ윌 킴리카의 『주폴리스』

by DAPLS 이혜령

기존의 동물권 운동은 주로 동물 학대 금지, 착취 중단, 보호의 필요성 등 도덕적ㆍ윤리적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동물권 철학자인 도널드슨과 다문화와 시민권 연구자인 킴리카는 『주폴리스』에서 동물권 이론과 시민권 논의를 결합해 동물권 논의를 급진적으로 확장한다. 그들은 동물이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객체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는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을 펼친다.


그들은 기존 동물권 운동이 동물의 기본적 보호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인간과 동물이 맺고 있는 복합적인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동물도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물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재구성한다. 이 책의 핵심은 인간과 동물이 단절될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단순한 보호를 넘어 정치적 참여와 권리 부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있다. 책에서는 이를 통해 “비착취적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복잡하게 연결된 공존의 그림”을 제시한다.

도널드슨과 킴리카는 기존 동물권 논의가 주로 고통받지 않을 권리,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 등 ‘소극적 권리’에 집중해 왔으나, 이러한 접근만으로는 인간과 동물이 현실적으로 부딪히며 공존하는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이에 따라 동물을 사육 동물, 야생 동물, 경계 동물 세 가지 범주로 나누고 각각의 법적·정치적 지위를 제안한다.


예를 들어, 사육 동물은 인간의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없으며, 인간 사회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인간 사회의 일부로 존재하는 만큼 시민권을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인간의 간섭 없이 살아가는 야생 동물은 주권을 가지고 그들만의 영토와 주권을 보호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시 내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경계 동물에게는 ‘주민권’을 부여해 일정한 보호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논의는 단순한 동물권 확장을 넘어, 인간 중심적 정치 이론을 해체하고 인간과 동물이 함께 구성하는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 즉 주폴리스(Zoopolis) 개념으로 구체화된다.


특히 이 책이 제안하는 “경계 동물” 개념은 현대 도시 환경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길고양이, 비둘기, 너구리 등 인간 사회에 깊숙이 녹아든 동물들은 기존의 ‘야생/사육’ 이분법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계 동물은 “존재 자체가 불법”으로 간주되어 법적·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배제되어 왔다. 저자들은 이들이 인간 사회의 일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주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도시의 동물들을 단순한 관리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주체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처럼 『주폴리스』는 기존의 시민권 이론을 동물에게까지 확장한다. 현대 정치에서 시민권 개념은 주로 인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으나, 저자들은 시민권 확장이 노예 해방, 여성 참정권 부여, 장애인 권리 운동 등을 거쳐 이루어졌음을 상기시키며, 이제는 동물도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토착민과 이주민이 서로 다른 시민권 모델을 적용받듯이, 동물도 각자의 생태적ㆍ사회적 위치에 따라 차별적인 권리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폴리스』는 기존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과 톰 레건의 동물권리론을 넘어, 동물과 인간 사이의 적극적 관계를 강조하며 동물을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니라 협상과 공존의 주체가 되는 실천 가능한 정치적 모델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현재 법적으로 동물은 여전히 ‘물건’으로 취급되며, 사육 동물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개념은 기존 법체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동물이 법적 시민으로 인정될 경우 노동, 복지, 보호의 기준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야생 동물의 주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


더 나아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예를 들어, 사육 동물의 시민권을 인정할 경우, 육식 산업은 필연적으로 존립이 불가능해진다. 인간의 식문화, 경제구조, 법체계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동물권 보호를 위한 법적ㆍ사회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과 비교할 때, 시민권ㆍ주권ㆍ주민권의 도입이 실제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존의 동물권 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다.


결국 『주폴리스』는 단순한 동물권 이론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새로운 사회를 구상하는 미래적 프로젝트이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동물권 문제를 정치적 프레임에서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독자에게, 『주폴리스』는 도전적이고도 중요한 비전을 제시하는 책이다.

p.75
우리 이론의 바탕은 정의의 핵심 목적 중 하나인 취약한 개체 보호에 있다. ‘나’라는 존재가 된다는 것, 즉 경험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특정한 종류의 취약성을 나타내며, 취약성은 불가침 권리의 형태로 다른 이의 행동으로부터 특정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p.174
대부분의 관계에는 도구적인 면이 있고, 타인의 존재를 총체적으로 도구화하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이용은 서회적 상호 교류의 일부이고 특정 조건에서만 착취로 변질된다.
p.185
사육 동물은 이미 인간과 함께 사는 사회에 있고, 그들이 정의의 조건에 따라 함께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인간과 사육 동물이 ‘자기만의 공동체에서’ 따로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혼종 공동체에서 번영할 수 있는 역량 이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p.357
현재 존재하는 국가의 경계는 정복, 식민화, 강제 동화로 부당하게 설정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는 부당했던 정착 행위가 정당한 권리가 되었다. (...) 영토에 관한 타당한 정치 이론이라면 사람들이 현재 어디에 살고 있는지, 지금 있는 공동체와 국가의 경계는 어디인지 등 현장의 사실에서 출발해야 하며,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모두 고려하는 정의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p.378
야생 동물 보호 시설은 어설프게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개별 동물이 원한다면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도록 자극을 주는 다양한 환경으로 설계해야 한다.
『주폴리스』

수 도널드슨ㆍ윌 킴리카 지음 | 프레스탁, 2024
사회학 | 544쪽
#동물권 #혼종정치공동체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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