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적 역사 공감: 제주포럼 특별상영회 <사령관의 그림자>
다니엘라 푈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사령관의 그림자>(2024)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소장이었던 루돌프 회스의 아들 한스와 손자 카이, 그리고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아니타와 그녀의 딸 마야의 현재를 교차적으로 비추며, 가해자의 후손과 생존자의 후손이 짊어진 죄책감과 트라우마 등 국가폭력의 세대 간 영향을 담아낸다.
지난 29일 제주포럼과 연계하여 4‧3 관련 기관은 이 작품의 특별상영회를 개최하며, 다른 홀로코스트 소재 영화와 달리 생존자와 가해자 자녀들의 현재의 이야기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이날 상영회에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이스라엘 대사였다. 팔레스타인의 상황과 국내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가들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대사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등장에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의 등장이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놓았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상영회와 대사관의 참여는 부적절했다. 이는 단순히 한 편의 다큐멘터리 상영을 넘어선 문제로, 영화의 메시지가 역사적 복잡성을 윤리적‧도덕적 서사로 축소하고 정치적으로 소모될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4‧3과 연계된 행사가 아닌가....
영화의 시작과 끝의 배경은 이스라엘 사막으로, 이곳은 유대인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인 동시에, 현재 팔레스타인의 억압 현실이 공존하는 장소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삭제한 채, 홀로코스트의 피해와 가해자의 속죄의 장소로만 부각되었다. 이는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유대인=이스라엘이라는 단순한 구도를 만들고,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영화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윤리적 성찰의 감동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적 정당성을 은연중에 뒷받침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영화는 역사적 현실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면서 영화적 감동을 ‘용서’와 ‘화해’의 윤리로 봉합하여 정치적으로 소모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아니타가 그들을 마주했을 뿐 용서와 화해라는 단어로 뭉뚱그릴 수 있을까?
또한 루돌프 회스를 유대인을 벌레 죽이는 박멸했던 ‘괴물’과 아버지라는 ‘인간’의 이중 이미지로 보여주면서 ‘인간 안의 괴물성’을 탐구하지만, 그 이상의 정치적 맥락이나 사회적 책임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국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역사적 질문을 제기하거나 정치적 복잡성에 개입하기보다는, 스펙터클의 이미지로서 단순히 ‘응시’하도록 만든다. 사회적 관계가 이미지로 매개되는 스펙터클 사회에서 <사령관의 그림자>는 역사적 진실을 윤리적 감동으로 대체하고, 역사적 책임의 무게를 가볍게 소비해 버리는 스펙터클의 윤리로 환원되는 위험을 드러낸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영화 상영과 이스라엘 대사의 등장은 역사적 책임과 정치적 현실에 대한 무관심과 윤리적 무감각을 드러낸다. 이는 과거의 홀로코스트 피해에는 깊은 공감을 표하면서도 현재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과 학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선별적 공감’이라는 모순을 보여준다. 현재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령관의 그림자>와 같은 작품을 단순히 ‘화해’와 ‘용서’의 이야기로 소비하는 것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현재의 학살을 은폐하거나 정당화하는 위험을 내포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음에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행사를 진행한 것이 내심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