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엘리의 “혐오정동과 분단된 마음 정치학”(2018)을 읽고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일상에서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따금씩 분단의 현실을 날카롭게 자각하게 하는 순간이 온다. 지난 12월 3일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지난 수요일(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갑작스레 “북한 공산”이라는 적을 호명하며 분단의 현실을 드러냈다. 그의 발언은 한국 사회에서 ‘분단된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김엘리는 “혐오정동과 분단된 마음 정치학”(2018)에서 ‘분단된 마음’이라는 개념을 통해 '빨갱이', '종북게이', '종북페미' 같은 혐오표현이 단순한 차별을 넘어 분단 체제를 지속시키는 전략으로 작동한다고 분석한다. 12·3 비상계엄 선포에서 등장한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과 ‘종북 반국가 세력’이라는 표현은 분단 담론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사태가 ‘젠더화된 정상 국가 만들기 기획’ 혹은 ‘안정적인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김엘리가 지적한 대로 이는 "전통적인 가정 가치가 보존되고 젠더질서가 잡힌 사회모델"을 지향하는데, 윤 대통령이 내세운 '자유 헌정질서' 수호라는 명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자신의 정치적 실패에 대응하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로,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을 ‘종북 세력’으로 규정하고 분단을 안보위협으로 프레이밍하는 방식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분단 정치의 한 형태이다. 그러나 그 시도 자체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는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종북’ 프레임은 아직도 유효한 정치적 도구인가?, ‘종북’ 담론이 정치적 수단으로써 한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는가?, ‘종북’ 프레임의 현재적 실효성과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한국 사회의 어떤 변화를 반영하는가? 등 이와 같은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
계엄발언 이후 한 라디오에서 진행자는 비상계엄 이후 비상계엄에 대한 다양한 반응에 대해 이전 비상계엄을 직접 체험한 세대와 아닌 세대 간 인식의 차이로 이야기하며 계엄령에 대한 젊은 세대의 안일한 역사의식을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를 비쳤다. 과연 비상계엄을 직접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간의 인식 차이가 존재하는가? 이를 단순히 ‘분단된 마음’의 세대 간 차이로 설명될 수 있을까? 또한 ‘분단된 마음’은 단순히 보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보수 진영이 '종북'이라는 프레임을 활용한다면, 진보 진영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분단된 마음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12·3 친위쿠데타 사태는 우리에게 ‘분단된 마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갈등을 넘어, 우리 사회가 여전히 안고 있는 분단의 상처와 그 현재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세대와 이념을 넘어 우리 모두가 ‘분단된 마음’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담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