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는 코치

03 2018년 12월, 2026년 1월의 코치

by DAPLS 이혜령

이번 코치 방문은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다.

처음 코치를 찾았을 때만 해도 비엔날레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고, 특별한 계획이나 큰 기대 없이 도착했다. 전시는 ‘목적지’라기보다 우연히 마주한 이벤트에 가까웠다. 당시 비엔날레의 주제는 “Possibilities for a Non-Alienated Life(소외되지 않은 삶의 가능성)”으로, 자본과 제도, 경쟁 중심의 구조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질문했다. 특히 여성과 퀴어의 서사를 드러낸 작업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배제된 목소리를 공동체의 장으로 다시 불러오는 그 실천적인 모습들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때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적 장으로 변모한다는 점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과 현대 미술이 겹쳐지며, 도시가 품고 있던 중첩된 기억이 현재로 끌려 나오는 듯했다. 작품들은 전시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코치의 골목, 창고, 공공장소 등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고, 주민들 역시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며 전시의 일부가 되었다. 전시는 작품을 ‘보는’ 행위뿐 아니라, 도시를 걸으며 몸으로 감각하게 했다. 그 경험은 코치를 다시 찾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사이 나는 오래도록 고민해 온 공부를 시작했고, 이번 방문은 석사논문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앞두고 떠나온 여정이었다. 다음을 위해 오롯이 쉬며 머리를 식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동안 밀도 높게 공부해 온 것들을 예술 작품의 메시지와 교차시키며 스스로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텍스트로만 접하던 세상의 원리들을 현장의 감각으로 다시금 되새겨보는 재확인의 시간이 되었던 셈이다.


이번 주제 “For The Time Being”은 시간, 신체, 공동체적 기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몸을 기억과 노동, 변화의 장소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해, 관객들이 발 딛고 있는 물리적, 감정적, 문화적 공간에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마침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와도 맞닿아 있어, 이론적 관심과 현장의 경험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컸다. 2018년에 경험했던 감각과 기억들이 이번 전시 주제와 맞물리면서, 수많은 사회적 과제가 논의되는 예술장에서 그 실천들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몸으로 감각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코치는 오랜 해상 무역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가 교차해 온 도시다. 세월을 품은 식민지 시대 건축물에서 작가들은 퍼포먼스와 장소 특정적 작업을 통해 공식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하층 카스트, 노동자, 여성, 장애인, 퀴어의 서사를 ‘지금 여기’로 불러온다. 이는 우리가 서 있는 ‘지금’이라는 시간이 단절된 순간이 아니라 얼마나 두터운 시간의 층위 위에 놓여 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 감각이 단순히 관람에 머물지 않았던 것은 이번 비엔날레가 완성된 작품의 스펙터클 대신 제작 과정과 협업의 구조, 변화와 미완성을 포용하는 유동적 운영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운영 방식 덕분에 관객은 시각적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의 공기, 소리, 질감까지 감각하며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코치 비엔날레는 예술적 재현을 넘어 존재와 관계, 그리고 공동체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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