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 2025와 『유령 연구』
친구들이 요가를 하러 간 이른 아침, 혼자 커피를 찾아 골목을 헤맸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코치의 구시가지 골목은 고요했고, 문을 연 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높은 담벼락 앞에 서 있던 가드에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안쪽을 가리켰고, 그의 안내를 따라 담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내한 곳은 투숙객의 조식 공간이었다. 조심스럽게 커피만 마실 수 있는지 묻자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그레이스 조의 『유령 연구』를 꺼냈다.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이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이 책은 전시를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텍스트처럼 함께하고 있었다. 『유령 연구』는 한국전쟁과 미군 주둔이 만들어낸 ‘양공주’의 역사를 따라가며, 제국주의와 냉전, 젠더 폭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오랫동안 침묵되어 온 이야기들을 드러낸다. 말해지지 못한 과거를 서사화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저항이라는 점에서, 비엔날레가 다루는 시간과 기억의 문제와도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내가 앉아 있는 공간 역시 조금 다르게 보였다. 조식 공간에는 대부분 서구인으로 보이는 여행자들이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었고, 인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주로 직원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은 실내 자리에 혼자 앉아 있던 나는, 창 너머 풍경을 마치 스크린을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장면은 지금의 순간이면서도 어딘가 다른 시간의 잔상처럼 느껴졌다.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내가 이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속해 있지 않았고, 이 장면이 오랜 시간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코치는 오랜 해상 무역과 식민의 역사를 거치며 다양한 문화와 권력이 교차해 온 도시다. 이 도시가 지나온 시간의 흐름은 거창한 방식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일상적인 장면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속해 있지 않은 채로, 그 장면을 구성하는 여러 존재들 중 하나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아침이었다.